농막 빗소리
이십 년전에 산골에 밭을 장만을 하고 농막에서 잠을 잤을 때에는 아주 묘한 기분을 느꼈었다.
한여름을 달구던 뜨거웠던 해가 용두산을 넘어가면 곧바로 어두워져서 송학산 위에서 내려 부는 서늘한 찬바람이 농막을 뒤덮어 긴팔 덧옷을 찾았었다.
산 아래 마을에 집들이 몇 있었지만 농막창에서 바라볼때 보이는 집은 두 채 였었고, 그나마 해지고 한 시간 지나면 바로 소등하여 농막은 그야말로 적막강산 속으로 빠져들었다.
서둘러 농막에 전기를 끌어들여 밤중의 깜깜함을 면하게 되었지만, 오밤중에 농막 홀로 불을 켜고 있을 때에는 사방의 어둠이 농막에 갇혀있는 나를 노려보는 기분이 들어 이따금 머리털이 고추서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칠흑속에서 소나기가 컨테이너농막지붕에 내려 퍼부을 경우엔 잠을 자다가도 요란스러운 굉음에 놀라서 깨었었고, 농막 바로 옆 개울에 흐르는 세찬 물로 돌축대가 무너지는 바람에 새벽까지 잠을 설치며 뒤척이면서 깡촌에 땅을 산 것을 후회하기도 했었다.
급기야 컨테이너박스 위에 슬레이트지붕을 올려 빗소리의 요란스러움을 잠재우고, 돌축대를 보수하였고, 개수대와 화장실을 만들고, 간이목욕공간을 만들고서야 겨우 산중자연 속에서의 고립을 낭만적 사고로 생각하는 여유를 찾았었다.
지금은 컨테이너농막을 개울쪽에서 텃밭의 좋은 자리로 옮기고 헛간,개수대,데크,데크지붕까지 나름 기준으로 제대로 설치하여 나 혼자서 생활하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그렇지만 컨테이너박스 위에 설치했던 무거운 석면슬레이트지붕을 없애고 렉산슬레이트로 설치한 이유로 비내리는 소리는 전보다 한결 크게 들린다.
농막의 방열과 방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니 빗소리의 시끄러움은 소박한 농막에 어울리게 기꺼이 용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둥번개와 함께 농막을 내려치는 호우의 난리스러움은 노상 있는 것이 아니고, 적당한 굵기의 빗줄기는 정화된 시끄러움으로 거북하기 보다는 오히려 냇물 흐르는 평온함같은 느낌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어서 자연에서의 즐길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오늘은 오후내내 비가 내렸다.
오밤중에 농막을 내려치던 횡포스런 소리가 아니고 적당히 굵은 빗줄기로 농막지붕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대지를 촉촉하게 적셨다.
봄파종을 준비해야 함을 알리는 전주곡처럼 연주되는 농막의 빗소리는 씨앗상자를 뒤적이게 하였고, 밭에 나갈 일 없으니 잠깐의 달콤한 오수를 불러왔다.
아직도 대지는 비내림을 갈구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의 대지는 물이 넘쳐도 좋을 만큼 비를 원하고 있다.
농막에 내려치는 빗줄기로 잠을 못자게 만드는 심술궂은 비보다는 대지의 깊은 속까지 촉촉하게 적셔주면서 농막주인의 기분을 평화스럽게 만드는 꼭 필요한 비가 흠뻑 내렸으면 좋겠다.
***과거의 농막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