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 22. 17:18ㆍ카테고리 없음
우리의 식탁이 언제부터인지 흥청망청해졌다.
어릴 적의 배 고품이 잊혀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배 고품이 무언지 전혀 모르는 세대가 이미 사십대에 접어들은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지금도 라면 한 끼도 준비가 되지 않아 힘들게 살아가거나 굶으며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거의 잊혀지는 남의 일로 가볍게 보아버리는 세상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식량이 남아돌고, 먹고 남은 음식물이 넘쳐나 온 나라의 도시가 음식물쓰레기의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파트마다 음식물쓰레기통을 경비원들이 특별관리하고, 사람 많이 사는 서울의 뒷골목엔 음식물쓰레기통을 서로 멀리하며 다투고, 이곳저곳에서 부패된 냄새와 구정물이 넘쳐흐른다.
물론 음식물뿐만이 아니다. 모든 쓰레기가 거의 마찬가지이다.
풍요가 낳은 눈살을 찌푸리는 광경이다.
그러한 쓰레기의 발생은 우리의 후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들은 멀쩡한 것들을 쓰레기로 버린다.
음식물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다 먹으면 식료품을 사느라고 지출하는 비용을 아마도 거의 삼분의 일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음식점에서 버려지는 잔반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양은 정확하게 통계가 나온 것은 보지를 못하였으나, 아마 쓰레기가 되기 전 음식물의 양으로 보아서 결식가정과 모든 걸인들의 배를 불리고도 남을 양이 되리라 짐작된다.
왜 음식물 쓰레기가 그렇게 많이 넘쳐흘러 국토를 오염시켜 신음을 할 정도가 되었는가?
첫째, 잘못된 풍요가 제일 큰 원인이다.
잘 살게 되면 무엇이든지 많이 가지고 써야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욕심을 내어 많이 가지니 가진 것이 시들고 썩고 싫증이나니 많이 버리게 된다.
버리는 쓰레기의 규모는 아마도 우리나라가 세계최고인 듯하다.
우리나라는 멀쩡한 아파트에서부터 밥풀 하나까지 버리지 않는 것이 없다.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쪼개서 버리고, 자질구레한 것들은 아무렇게나 버린다.
버림이 곧 부의 낭비임을 잘 모르는 국민들이 이미 되어버렸다.
버리면 또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아주 편하고도 저차원적인 상식이 어리석은 뇌에 꽉차있기 때문이리라.
둘째, 물건을 가치 있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물건이든 고물이 되어서도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면 쉽사리 버리질 못한다.
백년이 넘어도 끄덕 없어야할 집들이 이십년도 못되어 금가고 기울고 주저앉아 새로 지어야 할 판이니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각종의 살림살이들이 구입한지 오래 되지 않아 고유의 기능을 상실하고 천덕꾸러기가 되니 쓰레기로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좀 오래되어도 쓰는데 문제가 없도록 잘 만들은 것들은 대부분 재산적가차가 유지되어 함부로 버릴 수 없을 터인데, 한두 번 쓰고 버리는 정도의 수준으로 물건을 만들어 팔고 그러한 물건을 사기 때문에 그러한 물건들은 세월이 좀 지나면 당연히 쓰레기로 전락이 되어 버려야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셋째, 우리들이 너무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유행이 좀 지나 후진 편에 속하는 멀쩡한 전자제품들이 산더미 같은 쓰레기로 버려진다.
나부터도 문제이다.
성능이 좋아 방방 울리는 고장도 안난 휴대폰과 그래도 쓸만한 전자제품을 몇 개를 버렸다.
유행에 뒤지고 싶지 않은 허영에 덮인 마음 때문에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좀 크고, 퇴색되고, 느리고, 무거우면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 대한민국국민들이다.
남보다 좋고 멋진 것을 가지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남보다 못한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은 경쟁을 유발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반면, 인간의 소유욕에 기하여는 낭비를 불러오고 마음과 세상을 오염을 시키는 부정적인 면이 많이 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성능과 내실을 우선하며 유행을 어느 정도 무시하는 대범함이 쓰레기의 배출량을 줄이고 부의 축적을 가져오는 좋은 생활습관임을 나부터 알아야할 것이다.
넷째, 배 고품을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아이들의 주전부리가 신통치 못하여 언제나 먹는 것에서 부족함을 느껴야했다.
그러나 지금의 2~30대 아래의 세대들은 거의 빈곤이란 단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유치원을 들어가면서부터 남자이이들은 왕자가 되고 여자아이들은 공주가 되어 떠받들어지며, 음식이든 옷이든 부족함을 모르며 세상을 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도 예외 없이 자식들의 풍요를 위하여 희생을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면 너나없이 자신들의 봉급과 능력을 재어보지도 않고 반짝이는 승용차를 사는 정도가 되었다.
자신들의 능력이 모자라면 부모가 그 차이를 메워주는 것이 당연하고 언제나 남보다 많이 먹고, 즐기고, 소유하면서 만족을 느끼게 되는지라 과잉과 과소비, 그리고 버리는 것을 미덕같이 여기니 결과적으로 생활의 곳곳에 멀쩡한 쓰레기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 특히 전란의 아픔을 겪은 세대들의 배고픔과 부족함이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굳이 배우고 맛보아야할 대상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항상 배부르며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최소한 배고픔과 부족함이 인생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를 알아야하고 이해하여야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인생살이 칠, 팔십년에 팔자가 아무리 좋아도 계속 호사를 누리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족함과 풍부함이 무언지 알고 어떻게 사는 것이 만족스런 삶인지를 가슴속 깊이 생각해본 사람은 낭비와 버림을 함부로 하지를 않는다.
그리고 욕심을 제어하며 만족의 눈높이를 스스로의 정함에 맞추어 인생을 살아간다.
풍부한 살림살이와 남으로부터 받는 큰 대접이 바로 삶의 행복과 꼭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넘치는 풍요는 쓸쓸함을 예약한다.
욕심 많은 부자는 언제나 가난하다.
부자이면서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욕심을 적당히 버릴 줄 아는 부자는 진짜 부자이다.
부자가 아니라도 마음 다스려 물심양면으로 부족함에서 만족을 할 줄 아는 이는 마음만은 부자라 할 수 있다.
가난하지만 부자같이 쓰는 사람은 겉은 부자이나 속은 거지이다. 그러한 사람은 조만간 쪽박을 찰 수밖에 없는 부자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한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 풍요로운 복을 타고 태어나지를 못하였다.
풍요로울 때 더욱 아낄 줄 알아야한다.
풍요로울 때 풍요롭지 못할 때를 생각하고 낭비를 하지 말고 모아야 풍요롭지 못할 때에 부족함에도 고마움을 느끼며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마음은 쌀 한 톨도 아까워하고 버리지 않는 마음이 있을 때에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인생살이지만 난 쌀 한 톨을 아끼고 절약하는 마음이 매우 부족하였었다. 쌀 한 톨의 중요함을 알고 난 지금은 이미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고 절약하는 마음이 뒤 늦게야 생겨난 지금의 나를 미워하며 혀를 차야하는 바보스러움을 탓하고 있다.
사람이 횡재를 갑자기 하여서 팔자가 확 달라지는 경우는 지극히 드문 일이다.
월급쟁이의 월급이 아무리 많아도, 농사짓는 사람의 경작지가 제아무리 넓다고 하여도, 사업수완이 좋은 사업가가 몇 년이고 사업경영을 한다고 하여도 재산을 쉽사리 모으지는 못한다.
근검절약이 바탕이 되지 못한 부는 언제고 사라질 부임에 틀림이 없다.
오늘,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려고 아파트의 커다란 음식물쓰레기통을 열어보았다.
지나간 인생살이를 뒤돌아보며 늦게나마 잠시 후회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