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6. 13:22ㆍ마음, 그리고 생각
우리나이로 칠순을 맞이하고는 옛 선비처럼 從心所欲不踰矩를 떠올렸다.
그런데 좀 지나다보니 과연 내 자신이 그러한 글을 큰소리로 말할 수 있나?를 생각해보며 건방진 마음이 나이 들어 조신하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7년 전에 급성 허리디스크파열로 큰 수술을 하고도 텃밭에서 육체노동을 적당히 하는 데에 별 불편이 없이 지내왔고, 달리기를 제외한 등산, 골프 등의 운동을 하는 데에도 지장이 없어서 건강 체질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렇지만 작년에 만 칠십의 나이가 되었을 즈음에 전립선비대증으로 약의 단위를 높여 먹는 것이 싫고 나중의 부작용을 우려해 아예 크게 비대해진 전립선조직(120그램)을 홀렙수술로 제거하고 나서는 건강이 내 스스로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노후이후의 인생살이를 어찌 운용할 것인가를 좀 더 깊게 생각하는 계기를 맞이하였다.
칠십이 넘으면 대부분 여러 가지로 예전과 다르게 될 것이다.
* 각종 모임에 나가는 일이 차츰 없어진다.
나가보아도 예전처럼 재미도 없고, 뜻이 맞는 또래 이상의 친구나 회원들을 만나기도 어렵다.
*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모험을 하지 않게 된다.
지금의 상태에서 지내는 것도 버거운데 잘못되어 환경이 악화되는 일을 나이 들어 만들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니 늙으면 행동반경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 돈쓸 일이 점차 줄어든다.
부자들도 늙으면 대부분이 더욱 자린고비가 되어가는 데, 부자 아닌 이들이 어찌 늙어서 돈쓰는 일을 늘릴까?
그러니 늙으면 부자나 거지나 마찬가지로 거지가 된다는 말이 맞는 말이고, 대부분의 늙은 부자는 혼자서 쓸쓸한 부자이지 물심의 나눔에 인색하니 돈의 효용을 잊게 되고 남으로부터 부자로 인정도 못 받게 된다.
같은 또래가 줄어들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놀려면 행동거지와 사고가 젊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젊은이 보다 더 돈을 써야 겨우 받아주고 대접받을 수 있는데, 돈을 안 쓰면 소외되니 늙어서 돈을 안 쓰면 부자이든 가난하든 갈 데가 없게 되는 이유이다.
* 할 일이 없어진다.
마음만 청춘이면 뭐하나?
바쁘게 움직이며 돈 들여 할 일을 만들고 싶어도 몸이 안 따라주면 할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환갑 넘어 몸이 부실하여 행동반경을 좁히고 돈 쓰는 일 또한 피하니 집에서 하릴없이 지내고, 밖에 나가봤자 돈 안들이고 다닐 수있는 동창회, 동우회나 기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몸, 마음, 돈쓰기가 고루 갖추어지지 않는 한 늙으면 할 일이 점차 없어질 것이다.
* 그 외에 여러 가지로 서글퍼지는 현상들과 달라지는 것들이 많은데, 그 것들은 대부분이 건강, 마음, 돈쓰기의 감소 등으로 비롯되는 것일 게다.
겨울이 겨울날이 아니다.
푸근한 것이 봄철과 다름이 없다.
골프부킹을 해놓고 또래 동반자를 구성하려 이 늙은이 저 늙은이들에게 바삐 전화를 했다.
“감기가 들어서...”, “손자손녀 놈들 봐야....”, “거긴 너무 비싸니 토탈비용 15만 원 이하인 데로 부킹해봐라!” 등 피함과 거절의 이유도 가지가지이고, 몇 놈은 아예 전화도 안 받고 문자나 카톡도 받지를 않는다.
카톡이나 문자를 받은 기록이 있는데도 응답 없이 씹어 먹는다!
에구!
농한기 틈내어 잔디 좀 밟으며 소리도 질러보려 했는데 이도 어렵다!
몇 놈은 나보다 네댓 배 부자 놈인데 나보고 15만원 넘는 건 내달란다.
돈 많은 놈이 강원충청권 싼 골프장만 가겠단다.
그럴 때 응하면 내가 마음이 가난한 부자 세 놈 태우고 내 차로 모셔야 된다.
이런 썅!
요즘은 농한기다.
나 같은 엉터리 농사를 하는 농군이 농한기라 한가하다는 표현을 하기는 쑥스럽다.
그렇지만 얼어붙은 텃밭에서 언 땅 헤집을 수도 없으니 추운 컨테이너농막에서 지낼 일 또한 없다.
요새는 나와 손주 때문에 치다꺼리하느라 심신이 피로해진 아내눈치를 슬금슬금 보아가며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집에 와 있는 손주하고 놀기도 한다.
그러면서 미리 확보해 둔 자재들을 이용하여 만들 건조장, 닭장, 샤워장 등을 구상한다.
또, 부족한 공구와 부속자재 등을 일거리 늘리는 나를 걱정하는 아내 모르게 인터넷을 통해 살금살금 구매하고 있다.
그리고 최고의 농사놀이로 추구하고 있는 자연재배농법에 관한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익히고 있다.
그리고 밭의 디자인을 다시 하면서 머릿속으로 삽질과 곡괭이질을 하면서 그 모양에 따라 추가로 심을 나무와 꽃들을 살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름 생산적인 작업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결국은 돈 만 쓰고 과실은 없는 일이다.
그래도 농한기에 머리나마 바쁘게 돌리며 기름칠을 하는 일이니 정신건강측면에서는 엄청난 수익을 볼 것이다.
농번기에 육체적으로 할 일이 많고, 농한기에 정신적으로 바쁘게 지내니 늙어서 맹하니 지내며 힘 빠질 일이 없다.
그래서 늙어서도 텃밭을 하는 것은 참으로 잘 선택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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