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머금은 난향
2020. 2. 18. 19:06ㆍ마음, 그리고 생각
설날 전에 꽃망울을 터트린 한란이 대보름에 난향을 흠뻑 풍기고 있다.
텃밭농사놀이에 푸대접받던 난들이 오십여 분으로 몇 년 사이에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주인의 눈길을 끌려고 그러는지 볼품없이 약해져가는 중에서도 때를 맞추어 꽃망울을 터트리며 그윽한 향을 뿜어내고 있다.
예전에는 싱싱하게 번식하는 녀석들을 분주하고, 선물로 보내고, 다듬기에 정성을 다했었지만, 텃밭에서 지내는 동안 제대로 얻어먹지를 못하여 요즘은 개수도 줄고 상태도 형편없다.
주인의 맘이 딴 데에 있어 옳게 보살피지도 않는데, 어쩌다 난향을 맡고서야 부산을 떨며 물주며 거실로 이사시키며 보살피는 게으른 주인을 탓하지 않고 예쁘게 피는 모양이 기특하다.
한란은 세모와 설을 보낼 때에 곧잘 꽃을 피우는데, 한 번 꽃을 피우고 난향을 다 뿜어 시들어 떨어지는 꽃을 주인이 바라볼 때마다 한해가 또 지나고 새해를 맞이하는 세월의 흐름을 생각하게 하는 재주를 가진 기특한 꽃이다.
키우는 난을 불쌍하게 대접하여 미안스럽지만 코끝을 스치며 지나가는 난향에 지나는 세월을 눈 감고 되돌아보지 만을 않고 부실해가는 난분들을 다시금 정주며 보살펴야겠구나 하는 측은지심을 일으켜본다.
내 집에 들어 온 생명들이 생기 있게 잘 살아가야 집에 사는 주인들도 영육이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다시금 생각하는 것은 때를 맞추어 풍기는 난향 덕분일 것이다.
(20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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