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하다보면 많은 땀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고 놀고먹기 놀이를 해도 푸짐하게 얻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엔 큰 기대를 하였으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는 우스운 결과를 보기도 하며 내깔겨두고 푸대접을 한 작물이 의외의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프로의 농사는 결과가 돈으로 말해주지만 텃밭농사는 얻어낸 결실보다는 과정과 즐김에서 농사의 가치를 산정하고 텃밭을 하는 사람의 주관과 생각에 따라 농사로 얻는 금전적 가치를 아예 외면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올 농사를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 농막의 수도를 끊고, 전기를 단속하고, 밭의 상태를 살피면서 올 한해의 농사는 내 마음대로 잘 즐기고 보람이 있었다고 껄껄 웃었다. 농막, 헛간, 비닐하우스를 살피고 밭에 그대로 놔두었던 백태줄기를 모아보니 두 삼태기다. 양이 작아 도리깨로 타작을 할 수도 없고, 막대기로 적당히 두들겨 패어 콩알을 빼내려 해도 여의치가 않다. 콩깍지가 제대로 말라야 콩알이 잘 떨어질 텐데, 그간 비가 좀 내려 덜 말랐고 줄기에 단단히 붙어있어 이거 참 난감하다. 줄기에서 콩깍지를 몇 번 떼어내다가 떼어내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어서 궁리 끝에 레기를 이용하여 훑으니 좀 편하다.
훑어낸 콩깍지 한 자루를 집에 가지고 와서 어찌 콩을 빼낼까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다가 일일이 콩깍지를 눌러서 분리를 하여 콩알을 빼내는 것이 정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음날 12시간을 밥 먹는 시간, 용변 보는 시간, 차 마시는 시간을 제외하고 몰입을 하고서야 비로소 콩깍지를 모두 떼어내 콩알을 분리하였다! 처음 한 시간은 재미가 있었지만 그 다음엔 싫증이 엄청 났고, 그래서 TV보면서 콩깍지를 까니 할 만하다 싶었지만 또 한 시간 까니 이거 내가 뭐 하는가하며 천장을 바라본다. 아내는 처음엔 백태가 기차게 깨끗하고 좋다고 말하며 차를 대령해 주기도 했지만 슬쩍 쳐다보니 실실 웃는 모양이 내 성질을 돋우게 한다. 내 좋아서 기른 백태를 내 팽겨 칠 수도 없고, 아내에게 성질 낼 일도 아니려니와 공연히 성질을 내어봤자 따슨밥 편히 얻어먹을 수도 없어 이왕 시작한 거 도 닦는 마음으로 콩알을 일일이 빼내자고 다짐을 하고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나는 자연인이다”, “골프”, “당구” 등의 여러 개 프로를 보면서 손을 놀리니 어느덧 12시간 경과! 아주 얇은 라텍스장갑을 끼고 숙달된 손놀림으로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부지런히 놀린 결과 백태 두 됫박이다! 일을 끝내고 보니 목덜미가 뻐근하고, 엄지와 검지가 만지기만 해도 아프고, 머리도 띵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콩깍지를 분리할 때에 떨어진 아주 작은 털 같은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다. 어깨와 허리를 쭉 피면서 콩깍지 까는 일이 무슨 회사 경영하는 일이라도 되는 양 “나도 참 대~단하다” 하면서 일을 마쳤다.
그런데, 도리깨로 할 일을 손가락으로 하고, 밖에서 해야 할 일을 집안에서 한 잘못이 크다. 그러나 하찮은 일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하였고, 별 볼일 없는 일을 도 닦는 일로 가치를 부여했다. 은퇴한 늙은이 12시간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백태 값이 인생의 한 장을 나타내는 멋진 시간을 만들었고, 두 됫박의 백태가 텃밭농사의 진수를 보여주는 주인공이 되었다. 콩깍지가 텃밭의 행복을 불러다 주었고, 텃밭농사는 손에 호미자루 쥘 기운만 있어도 죽을 때까지 누릴 수 있는 삶의 주요부분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이것이 진정 행복이고 출세한 사람의 노후가 아닐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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