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의 텃밭방문

2006. 8. 5. 10:30마음, 그리고 생각



 

서울의  한 친구가 제 돌밭을 방문했습니다.

전화로 행정구역과 지번을 묻고는 중간에 길 안내도 없이 용하게 찾아왔습니다.

새벽부터 햇살이 뜨거워지기 전까지 일하고, 시원하게 목욕하고 난 뒤라 침상에서 편히 누워 소설책을 보다가 깜박깜박할 때에 반가운 손님이 꿈결에 나타났습니다.

거지같은 차림새로 내가 사는 텃밭이지만 이곳저곳을 설명하며 자랑을 해 봅니다.

아껴두었던 감자 두 이랑을 해 지기 전에 둘이서 열심히 캐었습니다.

줄기가 삭아 없어지고 잡초에 뒤덮인 지 두 주일이 넘어서인지 이따금 썩은 감자가 나왔습니다.

감자에 상처가 없어야 저장이 잘되는지라 조심하며 땀을 흘렸지요.

땀을 한 됫박씩 텃밭에 뿌리고 나서야 시원하게 목욕을 하였습니다.

해가 서산에 넘어가자 텃밭 쉼터에 파라솔 펴고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삼겹살과 묵은 김장김치를 곁들여 소주잔을 기울이며 인생사를 이야기 했습니다.

바로 딴 풋고추, 들깻잎이 된장과 어울려 이따금 양념을 더하니 술맛이 좋았습니다.

저는 텃밭에서 혼자 지낼 때 술을 거의 마시질 않습니다.

그러나 반가운 벗이 옆에 있으니 안마시고는 못 배기지요.

자정이 훨씬 넘고서야 밤하늘이 있음을 알아봅니다.

벗과 함께 보는 밤하늘은 더욱 더 푸근한 어둠입니다.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그리고 뿌옇게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 !

별들을 바라보며 어린 아기가 되어 봤지요.

마당의 잡초에 내린 이슬이 오락가락하는 우리들의 발목을 적십니다.

머리가 알딸딸해지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쉼 없이 흐르는 개울물소리에 잠이 들고, 서늘한 산골의 밤공기에 이불을 찾고, 아랫집 토종닭의 꼬끼오 소리에 잠을 깼지요.

온천지가 안개로 덮인 새벽!

엄청 더운 여름날을 예고합니다.

더위와 벗 덕분에 오늘은 일을 할 수 없으니 늘어지게 놀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난 밤 저녁 먹고 남은 밥에 부추와 깻잎, 그리고 풋고추를 잘게 썰어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비벼 적당히 아침을 때웠습니다.

해장국을 끓이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숨기고 맛있는 듯 먹은 제가 미웠습니다.

아침나절부터 찌는 더위에 마냥 누워있을 수는 없어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동편 작은 산 너머 잘 지은 별장 셋과 깨끗이 정돈된 텃밭들을 구경하였지요. 별장은 멋지고 좋았으나 텃밭은 아무래도 잡초 우거진 제 돌밭이 훨씬 좋게 보입니다.

점심은 별식으로 하였지요.

감자, 호박, 부추, 파, 깻잎을 좀 투박하게 썰어 밀가루 조금 넣어 범벅을 하여 부침개를 만들었지요. 벗이 가지고 온 고급포도주에 기가 막히게 코디가 되며 맛을 부렸습니다.

에라! 

마신김에 소주 한 병 추가!

크~으 좋다!

내친김에 거추장스런 옷 벗어던지고 이 번 장마에 돌출된 개울 바위에 기대어 온몸을 적셨습니다.

시원한 물세례에 세상이 발가벗은 우리들 세상이 되었습니다.

마냥 좋아 몇 차례를 개울물에 드나들었습니다.


한 여름의 하루해가 길지를 않았습니다.


제 텃밭에 찾아온 벗이 즐거웠었기를 기대해봅니다.

 

* 사진 1 : 프로를 닮은 아마의 고추밭

          2 : 내멋대로 풀 고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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