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7. 31. 18:49ㆍ마음, 그리고 생각
백수가 되고나서 나 혼자 장보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전에는 휴일에 마누라와 함께 시장을 다녔지만 요즈음은 마누라와는 한달에 한번 정도 꼴로 장보기를 하는가보다.
대개는 일주일에 한번을 장보기를 하니 한달이면 네 번이니 이는 나의 생활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장보기를 취미로 생각하고 즐기고 있다.
남자가 장바구니 들고 마누라 뒤를 쫒아 다니는 꼴을 보면 한심한 사람이라고 여기던 내가 지금은 스스로 시장을 다니니 내 스스로 나를 한심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나의 꼴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아예 장보기를 나의 취미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참으로 취미가 많다. 장보기까지 취미로 하였으니 나의 취미를 나열해 보면 정신이 없다. 텃밭 즐기기(초보), 등산(거의 다람쥐), 골프(싱글 출신 상급자), 목공(거의 목수수준), 낚시(제일 오래됨. 40년을 넘게 즐기고 있음), 사진(그런대로), 당구(300점 짠돌이), 바둑(3급? 지금은 맞수가 없어 거의 안함), 난 기르기(현재는 50여분 정도로 줄었음), 거기에다 장보기라!
나는 취미를 개발하면 그 취미에 관한 책들을 뒤적이며 실습을 하면서 어느 정도 고수가 되기까지 한동안 푹 빠져버린다.
그래야 취미의 맛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즐기고 생활의 활력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월을 지나면서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취미로 추가된 장보기도 예외는 아니다.
신문이나 마누라가 보는 잡지에 실린 장보기에 관한 부분을 빠뜨리지 않고 탐색한다. 그리고 인터넷을 최대한 활용한다. ‘에누리’나 ‘다나와’를 주로 본다. 그래야 어느 특정 ‘몰’에 현혹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장보기 취미에서 비중을 두는 것은 상품의 질과 가격이다.
나는 물건을 살 때에 한번 쓰고 버리는 경우를 제외하곤 항상 거의 최고급의 품질을 선호한다.
좋은 물건은 누구나 살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만족할 만한 가격에 사는 것은 아니다. 각종 정보를 알아야 싸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모르면 항상 손해를 본다. 거기에다 나중에 기분까지 잡치는 경우가 많다.
남자가 쪼잔 하게 시장아줌마나 할머니를 상대로 몇 백 원을 깎으려 흥정할 수는 없다. 안 깎고 기분 좋게 농담하며 돈을 주면 거의 덤을 한 움큼 더 준다. 실없는 농담 한마디에 돈은 달라는 대로 주고 물건은 두 배로 받아올 때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그러한 놀음을 즐기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장보기를 즐길 뿐이다.
마누라가 경제주체가 되고 내가 밥을 얻어먹으면서부터 시간없는 마누라보고 장보기를 하라고 할 수없으니 내가 장보기를 하여야 한다. 어쩔 수없이 내가 장보기를 하여야하니 이왕이면 장보기를 즐기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장보기를 취미로 삼을 수밖에!
요새 장보기의 고수가 되어가는 중에 느끼고 터득한 것 몇 가지를 되는대로 나열해본다. 나 같이 장보는 남편들이 참고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장보기 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말 것
(창피를 느끼면서 장보기를 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잡친다. 그렇게 생각되면 마누라가 애원을 하여도 장바구니를 던져버리고 차라리 굶을 일이다)
* 재래시장에서 노점상하는 아줌마나 할머니를 상대로 값을 깍지 말 것
(물건이 나쁘면 사지 말고, 좋으면 두어군데 비교하고 마음편히 살 일이다)
* 싸구려는 사지 말 것
(잘못사면 마누라한테 핀잔만 더 듣는다)
* 주변의 재래시장이 좋다면 농수산물은 재래시장에서 살 것
(대형마트는 포장과 진열로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으나 기본적으로 많이 비싸다. 주차장이 편해 대형마트에 가는 사람들이 공산품의 가격이 싼 것에 현혹되어 장을 보나 농수산물과 의류 등에서 엄청 바가지를 쓰는 경우가 많다)
* 대형마트에서 싸구려 공구류 등을 사지 말 것
(대형마트간의 가격경쟁으로 중국산 싸구려 공구류가 많이 들어와 있다. 전원생활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귀농준비자들이 생활에 필요한 공구들을 많이 사는데, 중국제 싸구려 공구를 사고 후회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번 쓰고 버릴 경우에나 싸구려를 구입할 일이다. 전문점에서 국산으로 좋은 공구를 산다. 굳이 국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좀 더 비싸도 미제나 일제를 산다)
* 대형마트에서 휴지, 세제, 식용유, 통조림 등을 살 때에 덤으로 더 주는 행사를 이용할 것
(경쟁사간의 다툼이 치열하여 이따금 에누리나 덤 행사를 많이 한다)
* 귀찮아도 제품의 용도와 성분표시등의 내용을 알고 살 것
(같게 보이는 제품이라도 질이 틀리고, 그에 따라 가격도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올리브기름 중 퓨어와 엑스트라버진을 구별하지 못하는 주부들이 대부분인데 남자들이 오죽하랴. 아무거나 되는대로 막 사면 돈 주고 쓰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 싼 것을 사지 말 것
(대형마트에는 거의 가격비교표를 붙여놓고 있다. 그 표에 의하여 고객이 싼값의 물건을 골라잡게 유도한다. 그런 건 대부분 마진이 크기 때문에 유도하는 것이다. 눈이 피곤해도 제품의 표시부분을 세세하게 읽어본다. 제품의 질에 분명히 차이가 있다. 질 좋은 제품을 찾는 남편들은 비싼 것으로 살 일이다)
* 백화점에서도 물건값을 깎을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화점에서는 정가대로 팔고 사야하는 것으로 안다. 백화점의 입점상인들은 일반적으로 판매액의 30% 내외의 돈을 수수료로 백화점에 낸다. 그러니 입점상인들은 물건값을 깎아주지 못한다. 깎아 주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금강구두가 백화점에서 철수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입점상인들이 예상외로 물건을 많이 깎아줄 때는 백화점에서 철수 전 단계이거나 오래된 재고를 신품처럼 속여서 파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면 거의 정확하다. 그러나 백화점 직영코너, 가전제품과 보석 등은 판매직원의 재량이 어느 정도 있고 마진이 크기 때문에 얼마든지 깎을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집은 작년에 어느 극성스럽고 재주 많은 아줌마를 대동하고 백화점 에 가서 최신형고급김치냉장고를 인터넷장터[주로 지난 재고를 팔지만 손님을 끄느라고 신제품을 싸게 파는 경우가 많이 있다]보다도 싼 가격에 구입했다. 백화점직영점에서 고가의 물건을 살 때에는 얼굴에 철판을 두르고 흥정을 한다. 깎아주지 않으면 안사면 될 일이다)
* 냉정하게 쇼핑할 것
(요사이 장보기하는 남자들이 많이 늘자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주요고객으로 삼아 그에 따른 마케팅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백화점은 잘생긴 여자들을 점원으로 배치하지만 요즘은 대형마트의 식품이나 잡화코너 까지도 예쁜이로 도배를 한다. 얼빠진 남자들을 겨냥한 상술이다. 초보 장보기 남편들은 물건만 보고 여자를 보지 말 일이다. 그리고 각 코너를 돌아갈 때마다 귀도 막아야 한다. 얼굴보고 몸매보고 귀 열면 카트에 물건이 가득 쌓이게 된다. 그리고 다음달엔 물건은 썩고 있는데 결제를 하여야 한다. 필요한 물건을 알맞은 수량으로 알뜰히 사야한다)
***** 취미는 같이 즐기는 사람이 많아야 더 즐거운 경우가 있습니다. 저 같은 백수로 장보기하는 남자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 혼자 장보기 하는 것은 창피를 느낄때가 많았지요. 이따금 마누라한테 다시 시장바구니를 넘겨주어야 할 텐데 하며 먼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구요. 다행스러운 건 요즈음 장보기하는 남자들이 꽤나 많아졌고, 저는 나름대로 취미삼아 즐기고 있으니 그런대로 재미가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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