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6. 3. 13:35ㆍ마음, 그리고 생각
동트면서 시작한 새벽일을 마치고 시원한 물 한잔에 온몸이 상쾌하다.
요 며칠사이 아침저녁이 모두 더워 삽질 몇 번에 땀이 흐른다.
한낮엔 최고급 자외선 차단제도 맥을 못 춘다. 자외선은 막으나 더위는 막지 못하고 오히려 더 답답하게 하는 듯하다.
이력이 아직 덜 붙어 강한 햇빛에도 긴팔상의는 이내 벗어던진다.
아침을 먹는데 마누라한테서 전화가 왔다.
대녀 부부와 함께 텃밭으로 가는 중이라고.
신앙심이 창피할 정도 이지만 나에건 대자가 하나 있다.
부족함을 신부님이 특별히 허락하여 영세와 견진 대부가 됨을 허락한 경우다(대자보다 대부인 내가 견진성사를 늦게야 받았다).
대자가 요즈음 꾀가 나서 직장 핑계대고 도무지 텃밭 일을 돕지 않는다.
올핸 텃밭의 수확물을 머리를 몇 번 조아렸느냐에 따라서 주고 안주고 할 참이다.
고추, 감자, 고구마를 수확할 때에 따거나 캐어가는 즐거움만을 주지는 않을 참이다.
마누라의 감찰에 대비하여 컨박스와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땀 흘린 차에 시원하게 목욕하고 로션도 발라본다.
두 부부가 함께 침상바닥에 신문지 깔아놓고 점심을 먹으니 꿀맛이다.
마누라가 정성들여 만들어온 육개장과 밭에서 나온 쑥갓과 상추, 그리고 텃밭 가에서 뜯어온 씀바귀잎사귀가 식욕을 돋우니 모두들 밥 반 공기를 추가한다.
마누라는 텃밭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돌무더기를 보고 한숨을 짓는다.
그리고 거칠어진 나의 손과 들어간 볼을 측은한 눈길로 쳐다본다.
그 넓은 텃밭을 혼자 돌 주워내고, 삽질하여 또 돌 골라내고, 이랑과 도랑 만들고, 등등 하는 일이 모두 혼자 하는 수작업이라는 걸 알고 혀를 끌끌 찬다.
예순도 안됀 나이에 하는 짓이 돈벌이와 상관없이 돈 버리는 일이고, 생전 흙 알맹이 한번 만지며 살지 않던 사람이 몰골을 한심하게 만들어가며 거기다가 히히거리며 별 볼일 없는 텃밭농사와 잡일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 매우 근심스럽고 한심하다는 표정이 뚜렷하다.
텃밭을 디자인하며 멋있게 만들어가는 과정과 완성된 일부를 설명하면 겉으론 고개를 끄덕거리나 이따금 던지는 말이 속내가 다름을 말해준다.
“ 그런 걸 왜 혼자서 몸을 혹사시키면서 하느냐?
꼭 필요한 거라면 일꾼을 부리거나 기계를 쓰면 되지 않느냐?
밭의 모양이고 뭐고 농사시늉만 적당히 하면서 늘어지게 쉬며 즐기다 집에 오면 편하지 않느냐? “
하는 말은 그나마 쉬운 것이지만 ‘속으론 늙지도 않았는데 하는 짓이란 쯧쯧쯧‘하며 나의 친구와 주변사람들의 성공과 편함과 부자 됨과 관련된 이야기를 속에서 나오지 않게 누르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마누라가 나의 하는 짓거리를 싫어하기 보다는 나의 고달픔이 걱정이 되어서이고, 남들의 성공과 축재와 안온한 생활 등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내가 고생하며 부가가치 없는 텃밭농사를 이런 적막강산에 들어와 하는 짓이 측은해 보이기 때문인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강태공 같이 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좋아 텃밭 일을 즐기며 가정의 생계와 관계없이 초야에 묻히기만 하려하는 것이니 마누라의 입장에서 볼 때에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마누라에게 생계책임을 지우고 그에 따라 마누라가 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며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고, 다행스럽게도 마누라의 억척스러움과 인내와 현명함으로 하는 일을 잘 풀어가고 있음을 본다하여 어찌 내 마음이 즐겁고 편할 수만 있겠는가?
대자 부부와 마누라가 텃밭을 떠난다.
땡볕이라 텃밭 일을 전혀 시키질 못하였다.
적막한 시골에 한낮의 땡볕이 모든 시간을 멈추게 하는 듯하다.
선거일을 틈타서 마누라를 데리고 온 대자 부부가 고마워 텃밭을 둘러보아도 쑥갓뿐이 줄게 없다. 상추는 아직 어려 맛이 들지 않았다.
차를 타고 텃밭을 떠나는 마누라의 눈에 물기가 보이는 건 한낮의 강렬한 햇빛 때문인가?
돌아서서 컨박스로 향하는 데 뒷산기슭에 갑자기 안개가 잔뜩 서려있다.
'마음, 그리고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歸村禮讚 (0) | 2006.07.19 |
---|---|
[스크랩] 별 헤는 밤 (0) | 2006.06.29 |
관리기를 안 사는 이유 (0) | 2006.05.22 |
적막강산 (0) | 2006.05.20 |
[스크랩] 난 참 부자다 (0) | 2006.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