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강산

2006. 5. 20. 01:27마음, 그리고 생각


 

며칠간 텃밭 일을 즐기다보니 고달픈 몸에 생기나 불어넣을까 하며 마을 이장과 봄철 배수로작업을 한 김씨를 불러 저녁식사와 함께 소주를 각 일병 하였다.

농촌의 현실과 마을 사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두 사람의 궁둥이가 자꾸 들썩거린다. 이장은 고추만 해도 4만주를 심는 진짜 농부이고, 김씨는 보유하고 있는 농기계만 해도 새로 구입하려면 1억원이 넘는 농기계 부자인 농부이다.

다음 날의 작업이 많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리 저리 뒤척거리다가 이 책 저 책을 뒤적여 보아도 도무지 정신이 집중되질 않는다.

컨박스가 답답하게 느껴져 밖으로 나가니 온통 개구리소리가 세상을 덮었다.

이따금 외롭게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 좀 조용한가 싶더니 개울물소리가 귀를 살살 긁는다.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으로 덮여있어 별이 하나도 없다. 아래로 보이는 몇몇 집은 전부 소등을 하고, 마을 보안등 셋만이 어둠을 지키고 있다.

낚시의자에 몸을 깊숙하게 맡기고 나를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여기 혼자 와 있는가?

나는 정말로 지금을 즐기고 있는가?

나는 앞으로도 계속 텃밭을 가꾸며 나의 삶을 만들어 갈 것인가?

나는 텃밭일, 농촌생활을 박차고 돈 벌이를 해야 옳은 게 아닌가?

나는..... ? ? ? ? ?

내려앉는 눈꺼풀을 비비며 개울로 가 손을 적셔본다.

열 시간이 넘는 쇠스랑삽호미쇠갈퀴질에 열나고 굳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시원하게 풀려간다.


가재 한 녀석이 먹이 찾아 나섰다.

흠! 나 말고 너도 있구나!

개구리소리, 소쩍새소리, 개울물소리는 있으나 들리지 않는다.

적막강산이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들리는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깨었다.

 

고구마, 고추, 토마토 심고 나서 걱정되어 물 뿌려 주느라  애 썼는데 이젠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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