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8. 12. 21:04ㆍ마음, 그리고 생각
장마 뒤의 한낮의 고요.
삼복더위에다 마을이 작아서인지 도무지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한밤중만 적막을 느끼는 게 아니라 한낮에도 오밤중 못지않은 고요가 텃밭을 감싸고 있다. 아니 밤보다 더 조용하다.
장마기간 동안 폭포같이 소리 나던 움막 옆 개울물소리는 수량이 적어지자 소곤대며 이야기하는 아이들 소리 마냥 귓가를 스친다.
선풍기로 살살 바람을 불러오고 침상에 누워 한가로이 책을 펼친다.
몇 장 보지 않아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이럴 땐 낮잠이 보약이니 실컷 자보자하고 마음 놓고 자본다.
이십여 분도 못 채우고 개울물소리에 눈이 떠진다.
엎드리고 눕고 뒹굴뒹굴하며 소설책을 보다가 농사 책으로 바꾸어본다.
올해는 쪽파를 꼭 심어야지 했던 바라 종자를 한 대접 준비했었다.
텃밭의 기후가 산악지대와 같아 알맞은 파종시기를 모르는 터라 두어 번으로 나누어 심어볼 요량이다.
생각한 김에 밭에 나가 쑥갓 심었던 조그만 밭을 쇠스랑으로 몇 번 찍어본다. 대여섯 번 쇠스랑질에 상의 하의 말할 것 없이 땀으로 온통 젖는다.
생각을 바꾸어 잘 익은 토마토를 한 그릇 따서 먹어본다. 흘린 땀을 보충하려면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여야하니 내 텃밭에선 토마토가 제격이다.
오늘도 어쨌든 두 번 땀을 쫙 빼고 두 번 시원하게 목욕을 했으니 일과 끝이다.
저녁나절의 일은 빼먹고 게으름을 부려본다.
그 대신 저녁 먹는 건 좀 호사스럽게 마련해본다.
호박을 썰어 들기름을 좀 치고 새우젓과 풋고추를 숭숭 썰어 넣고 볶는다.
잘생긴 청양고추를 세 개 따서 된장 그릇에 담는다.
마누라가 싸준 김장김치를 꼭지만 잘라 통째로 그릇에 담는다.
밥 한 그릇 반이 없어졌다. 내일 아침은 밥이 반 그릇이다.
요새는 해 뜨기 전후 세 시간, 해 지기 전후 세 시간만 일을 한다. 텃밭농사에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빠진 체중 한관이 회복이 되질 않는다.
텃밭농사 즐기기에 한여름이 복병이다. 취미농사에 무어 힘들게 땀 뺄게 무어람 하며 여름을 지나면 텃밭이 개판되어버린다.
더구나 유기농 한답시고 호미자루 들고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면 텃밭이 온통 잡초에 점령을 당한다. 그러다 한해, 두해 보내다보면 호미와 낫을 팽개치고 텃밭농사를 포기한다. 대부분 프로가 아닌 아마가 텃밭을 너무 크게 잡고 유기농한다고 폼 잡다 일어나는 현상이다.
텃밭의 잡초는 큰 신경 안 써도 될 일이다.
모든 작물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잡초가 작물을 이기게 못하게만 하면 어느 정도( 아마농군의 수준에서 ) 수확을 만족스럽게 할 수 있다.
텃밭의 규모가 즐기는 사람의 체력과 시간투입 등에 비추어 알맞아야 하고, 두 손바닥에 굳은살이 항상 있고, 텃밭노동을 즐겁게 여기면 가능한 일이다.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비닐멀칭 없이도 텃밭농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게으른 텃밭농사인데도 빠진 살이 불지를 않고, 손은 거칠어진다. 팔뚝과 종아리엔 풀독으로 벌겋게 상처가 나고 이따금 벌레에 쏘인다.
텃밭에서 귀가하면 긁어대기 시작한다.
그래도 긁으면서 시원함을 누리는 한여름의 내 텃밭인생!
이 맛은 텃밭이 없는 사람이 절대로 맛볼 수 없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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