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종주기(2)

2009. 6. 5. 01:16나들이

 세석대피소에서 자기로 예약이 되어있으니 두 번째 날은 시간이 남아돌 것이다.

연하천대피소를 아침 9시 넘어 출발하고 느긋하게 걸었다.

구름에 덮인 능선을 바삐 갈 이유가 없다. 구름이 밀려나면 시야가 트이고, 구름이 몰려들면 희뿌연 세상이다.

시계가 열리지 않으니 저 멀리 아득한 능선의 아름다움과 신선들이 노니는 경이로운 산봉우리들을 볼 수가 없다.

잠시 앞이 열려도 그 때는 숲 속을 걸어가니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여기저기 조금씩 산길을 때리는 빗방울은 신기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바람골을 지날 때마다 길이 젖어있다. 거풍하기 알맞은 곳이다.

   

* 형제봉 바위 위의 형 아우 소나무

* 죽는 것도 아름다움이어야... 그리고, 멋있게 죽어야

* 고난과 행복이 믹스된 친구 

  

 

 

구름 속 능선에서 형제봉을 지나 우리를 맞이한 벽소령대피소에서 스프 한 공기와 차 한 잔 끓여 마시고, 덕평봉을 지나 선비샘에서 1,8리터 물주머니에 집에 가져갈 물을 가득 채웠다. 칠선봉, 영신봉을 지나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다.

구름 속이라 온통 희뿌옇고 안개비가 세상을 덮고 있다. 

친구와 떨어져서 한신계곡에서 폭포들과 노닐겠다는 생각은 잊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날씨가 나쁘니 다른 누가 꾀인 다해도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나이에 극기훈련하여 깡다구를 더 길러야할 이유도 없고, 에너지도 바닥이다.


 산행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모 대학 산림학과 학생들이 단체로 실습을 나와 대피소에서 묵는 바람에 대피소의 취사장이 매우 시끄럽고, 산행예의가 뭔지도 모르는 엉터리 등산객들이 고기 구워가며 떠들며 마셔대는 소주병이 식탁에 즐비하다.

저런 엉터리들은 대부분이 먹어대던 소주와 음료수 병들을 후미진 곳에 버리는 반자연주의족속들이고 나라에 도움이 안 되는 마이너스재산에 속하는 것들이다.

대피소 거실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침상을 배정받고 누워 있다가 7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겨우 준비했다.

밤새 계속 비가내리고 바람이 분다.

다음 날 촛대봉에서 일출을 볼 가능성이 점점 없어져간다.


 오전 5시에 배낭을 정리하여 출발을 했다.

다행스럽게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지리산 정기가 꽉 찬 신선한 새벽공기가 일출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과 전날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삼신봉과 연하봉의 운무 덮인 아름다움에 취하며, 넋 빼고 주저앉는 맛은 맑은 날에 보는 것과는 색다른 것이다.

산은, 지리산은 어느 때고 언제나 좋은 것이니.

 

* 인생의 길 

* 바람불어 추운 곳의 늦게 핀 철쭉이 한층 아름답다

 

* 저 멀리 천왕봉, 그 왼쪽이 중봉 

 

 언제나 북적이는 장터목대피소가 웬일로 덜 북적댄다.

취사장 밖 벽에 붙은 긴 의자에 자리 잡고 식사와 차를 품위 있게 마쳤다.


 제석봉에 널려있는 고사목들은 점차 작아지고 없어지니 특이한 풍경이 예전만 못하다.

아직도 풍성하게 피어있는 철쭉꽃들이 피곤한 다리에 힘을 넣는다.

저 멀리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이지 않아도 이따금 밀려나는 구름 속에 보이는 지리산의 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천왕봉을 뒤로하며 내려오는 중산리 하산코스는 내내 안개속이다.

안개 속에 피어나 청향을 풍기는 함박꽃에 코를 잠시 맡기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천왕봉에서부터 동행한 젊은이들과의 산행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중산리야영장 입구에서 수로에 앉아 얼음같이 찬물에 세족을 하며 발의 피로를 푸는 것도 산행을 마무리하는 기쁨이었다. 

 

* 안개속의 요정이 향내음을 풍기며 피곤한 산꾼을 맞이한다

 

 

*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동행한 산사람들. 하산후의  동동주파티. 행복한 표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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