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단독종주산행

2008. 6. 15. 01:36나들이

 어쩌다 홀로 산행을 하게 되었다.

산꾼 몇 명을 꼬셔보았지만 육십 나이에 미친 짓 왜하냐며 고개를 저으니 할 수 없다.

등산도 낚시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즐기는 맛은 혼자 하는데서 나올게다.

홀로 산행하는 맛은 단독산행을 많이 즐겨본 이만 알 수 있다.

남이 보면 처량하기도 하고 한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없는 호젓하고 어려운 외길 험로를 장시간 홀로 걷는 것은 취미의 틀을 벗어나 도의 길로 가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기도 하며 홀로의 희열을 느끼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예전에는 북한산에 아주 자주 올랐다.

토요일 휴무제도 시행이전에는 토요일 오후에 일을 끝내고 별일이 없으면 직장에서 가까운 구기동으로 향했다.

두세 번 중 한 번이 홀로 산행이었다.

사자능선이나 비봉능선의 바위를 빠짐없이 기어오르내리며 돌아다니다가 깜깜한 능선과 계곡을 홀로 헤집고 다니며 하산하는 맛은 산에 미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일품의 맛이다.

장거리 등산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면 이따금 북한산종주로 대신하였다.


 텃밭생활 오년을 해오면서 즐기던 산행을 소홀히 하였다.

바위타기를 하지 않아서인지 기분 나쁘게 어깨가 아프고, 어쩌다 오른쪽 무릎도 시큰거리는 증세가 있을 때가 있었다.

요즘 몇 번을 두세 시간씩 동네 산(인천 철마산)을 걷고 뛰고 하여 몸에 이상이 있나 점검해보았다.

중단거리 산행에는 전혀 이상이 없을 듯하여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다.


 등산을 즐기는 이들이 설악산 대청봉과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고 나면 산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고, 남한의 1,000 미터 급 큰 산을 거의 모두 오르다시피 하면 스스로 산꾼으로 행세를 좀 하며 다른 이가 그렇게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설악산 서북릉, 공룡릉, 용아릉 등과 덕유산 능선을 남북으로 무사하게 즐기고 나서, 종주산행으로 최장거리인 지리산종주를 한 번쯤 하고나서는 무슨 입신의 경지에라도 오른 듯한 건방져진 마음을 가지게 된다.

지리산종주는 그만큼 산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국내 최고의 종주산행인 것이다.


 지리산을 제일 좋아하지만 너무도 멀리 있어 아쉽게도 설악산 산행횟수의 반도 못 될 만큼 자주 다니지를 못하였다.

산의 맛을 알고 산을 제대로 즐길 줄 안지 30 여년이 되어가지만 지리산 천왕봉을 오른 것은 여섯 차례밖에 안된다.

그리고 지리산 종주는 두 번 하였다.

전에 막연히 맘속으로 환갑 전에 지리산종주를 세 번 이상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아직까지 세 번째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에 지리산종주 때는 야영장비를 갖추고 등산을 하여 배낭의 무게만도 20킬로그램 내외가 되어, 종주 중 난코스를 만나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내려다보면 얼굴에 붙어있는 눈썹이나 콧속에 있는 코털까지도 뽑아버리고 싶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었다.

여럿이 산행을 할 때에는 꾀가 난 산꾼은 쉴 때에 재빨리 배낭에서 간식거리를 꺼내어 일행에게 나누어준다.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없으면 죽는 제일 귀중한 물 만큼은 무거워도 끝까지 사수한다.


 출발 전날 손발톱을 매끄럽게 다듬었다.

그리고 등산용품을 점검하였다.

45리터 배낭, 침낭, 무릎담요, 반바지, 여벌내의와 양말, 여벌 웃옷, 바람막이와 우의, 물통 두개, 장갑, 칫솔, 등산용 칼, 나침반, 지도, 버너, 연료, 코펠, 컵, 숟가락, 스틱, 수건, 모자, 비상 약, 압박붕대, 선 그라스, 카메라, 전화기, 식량 다섯 끼 분량과 간식(햇반, 카레, 분말 스프, 단무지, 장조림, 커피, 인삼차, 육포, 사탕, 초콜릿, 과자 등)을 점검했다.

무게가 13 킬로그램이 좀 넘는다.

물을 채우면 14.5 킬로그램이 된다.

야영장비를 갖추고 다닐 때에 비하면 호강하는 무게이다.

지금은 지리산에서의 야영을 금하고 있어 1인용 텐트를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 배낭의 무게가 줄어 그 만큼 몸이 편하겠지만 텐트 위로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황홀한 낭만의 맛을 빼앗겨 좀 섭섭하다.


*** 종주산행 1일차


 구례구역에 6월 10일 오후 1시 20분 도착, 간단히 점심을 하고 화엄사로 향했다.

여유 있는 산행을 하겠다고 대피소에서 2박을 예약한 관계로 대부분의 산꾼들의 시발점인 쉬운 성삼재를 버리고 고행 길 화엄사계곡을 택하였다.


 화엄사 입구에서 문화재관람료를 3천원 냈다.

절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도 막무가내다.

국립공원입장료가 없는데 절에서 문화재관람료를 절에 들어가지도 않는 등산객으로부터 받는다는 건 아주 잘못된 일이다.

절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는데도, 수많은 등산객들이 부당하다고 항의를 하는데도 절의 부정을 방치하고 있는 나라의 행정 또한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볼 것이다.

절은 등산객들에게 절 소유의 산을 지나가는 일종의 통과비를 받는다고 하여도 그 또한 잘못된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절 소유의 산은 사사로운 절의 소유가 아니라 나라의 소유라고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본의 아니게 화엄사에 시주를 하였으니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마음에 화엄사를 스님들 멱 감는 목간통까지 뒤지며 휘젓고 바쁘게 다녔다.

그리고 국보와 보물을 눈 아프도록 감상을 잘하였다.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얼굴에 땀이 흐른다.

 *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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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자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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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계곡 초입에서 계곡물에 얼굴을 닦으며 10여 분간 시간을 보냈으나 산꾼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홀로 산행을 하겠다고 작심하고 나왔어도 산행 중에 말을 주고받을 산꾼을 만나기를 바라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지리산종주의 기점을 화엄사로 정하고도 모르는 산꾼과의 동행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잘못임을 이내 깨닫고 3시에 홀로 출발을 하였다.


 용소를 가볍게 지나 참샘터까지 단숨에 주파하였다.

탐방로를 널찍하게 큰 돌을 깔아 잘 만들어 놓은 것이 오히려 불만스럽다.

산길을 걷는 멋을 길바닥에 돈을 들여 앗아가 버린 꼴이다.

참샘터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좁고 험한 등산로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자 이내 온몸이 푹 젖는다.

중재에 닿기 전에 구름이 온 산을 뒤덮어 한낮인데도 가시거리가 10여 미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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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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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쉬면 한기가 엄습해와 덧옷을 꺼내 입어야하고, 덧옷 입은 채로 걸어가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몇 차례 옷 입기와 벗기를 거듭하다가 아예 덧옷을 벗고 쉬는 것을 포기하고 내쳐 산을 오른다.

집선대를 지나 한동안 오르니 다시 주변이 밝아지면서 녹색의 시원함으로 외로운 산꾼의 마음을 달래준다.

이름모를 산 새소리에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청량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 살펴보니 함박꽃나무의 희고 깨끗한 예쁜 꽃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반기는 이 만난 김에 잠시 쉬면서 간식을 하고 물도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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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썹바위를 지나면서 윙하고 지나가는 자동차소리를 들었다.

이마의 땀을 몇 번 닦아내니 신작로가 나타나고, 화엄사계곡으로 흘러드는 차가운 개울물이 땀에 범벅이 된 늙은 산꾼을 유혹한다.

내복을 모두 벗고 개울물에 담가 빨고, 짜고, 툭툭 털어서 그대로 입는다.

남방도 빨아 꼭 짜고 털어서 그대로 입는다.

잠시 더 쉬면서 커피 한잔 끓여먹고 싶은 생각이 났지만 몸속으로 들어오는 추위는 바로 출발을 하도록 만든다.

 젖은 옷의 한기가 가시고 몸이 후끈거림을 느끼자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한다.

오후 7시.

저녁 먹고, 차 마시고, 내의 갈아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니 8시 반이다.

 지리산의 모든 대피소는 오후 9시에 소등을 한다.

등산객이 적어 자리가 널찍하다.

잠버릇이 나쁜 나이 든 산꾼을 대피소직원이 알고 고맙게도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넓게 주었다.

다음 날의 산행을 머리 속으로 그리다가 꿈나라로 갔다.


*** 종주산행 2일차


 6시 반에 노고단을 출발하여  돼지령을 지나면서 호젓한 맛을 느낀다.

등산로가 좁아 마주 오는 이가 있으면 산행예의에 따라 길을 내 주어야한다.

그러나 마주치는 등산객이 없으니 산길을 전세 내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조망이 좋지 않다.

임걸령 못 미쳐서 노등산객 네 분을 만났다.

칠팔십 대의 네 분 등산객의 복장과 장비를 보니 모두 고급이다.

무조건 비싼 것이 아니라 그 나이에 어울리는 패션과 기능을 갖춘 고급품을 입고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피아골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하여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여유만만하게 등산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모두 군살이 없고 밝은 얼굴이다.

이십년 후에 나는 어떤 등산을 하게 될 것인가를 잠시 생각해보면서 인사를 올리고 노루목까지 쉬지 않고 갔다.


 잠시 주저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예전 두 번의 지리산종주 때에 반야봉(1,732미터)을 가보고 싶은 마음을 일행들의 반대에 부딪혀 접었던지라, 아쉬운 걸 푸는 기회다 싶어 이 번에는 꼭 반야봉에 오르리라 일정을 잡았다.

그러면서도 갔다 올걸 뭐 꼭 가야하나 하는 자문에, 지리산 서부에서 제일 높은 봉인데 그리고 그 이름도 般若봉인데 반야낙조를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이번에도 못 가보면 아마 죽을 때까지 못 갈지도 모르지 하는 자답을 하면서 배낭을 짊어지고 반야봉으로 향하였다.

 20여 분을 오르다 오십 초반의 산꾼 한 명과 마주친다.

“고생 많으십니다!”에 “즐거운 산행입니다”로 인사를 하고보니 어? 이 친구 맨몸이네?

 숨을 일정하게 고르며 꾸준하게 오르는 것, 몸 상태에 템포를 맞추어 무리하지 않게 전진하는 것이 장거리 등반의 기본임을 초보자처럼 새기며 이마에 두른 수건을 벗어 젖은 땀을 짜내는데 활짝 핀 철쭉이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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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도 닦는 마음으로 반야봉을 오르는 산꾼을 반기느라고 일부러 뒤 늦게 핀 철쭉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반야봉에 오르니 지리산 수백 개의 작고 큰 능선과 계곡이 부옇게만 보인다.

부처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서 온갖 분별과 망상에서 벗어나 본래의 참모습을 알게 되더라도 온 세상이 밝게 그리고 명쾌하게 보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반야봉은 산꾼에게 이르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고, 잠시 정좌를 하고 만물에 고마움의 인사를 한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냥 내려갈 수 없어 바위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나뭇가지 받치고 자동촬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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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오는 중에 사십 중반의 산꾼을 또 한 명 만났다.

“수고 많으십니다”에 “반갑습니다”하면서 보니 어? 이 친구도 배낭이 없다?

갈림길 도착전 100여 미터 지점 길옆에 아까 그 친구 배낭이 벌러덩 누워져있다.


 올라갈 때 만난 산꾼은 배낭의 분실을 대비해서 남이 볼 수 없는 곳에 모셔놓고 반야봉을 갔다왔으니 똑똑한 산꾼이다.

 내려올 때 만난 산꾼은 어느 누가 무거운 배낭 어찌하랴하며 마음 턱 놓고 길가에 던져놓고 편히 반야봉을 오르니 참으로 우직하고 속 편한 산꾼이다.

 나는 무엇이냐?

그 무거운 배낭을 신주단지 모시듯 정성을 다하여 몸에 지니고 땀범벅이 되며 다시 되돌아올 반야봉을 올랐으니 아주 미련한 산꾼이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를 나누는 삼도봉에 도착하니 오전 9시 30분이다.

화개재와 토끼봉을 지나면서 등산로 주위의 이름모를 산나물, 약초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다음번 숙박장소인 세석평전대피소까지는 슬슬 놀면서 가도 충분할 듯하니 말이다.

 명선봉을 오르는데 오른쪽 무릎에서 불쾌한 통증을 느꼈다.

지리산 오기 전 다섯 차례의 워밍업을 동네 산에서 하였는데, 두 번째 워밍업에서 나타났던 가벼운 통증이 네 번째 워밍업에서 없어진 관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기분 나쁘게도 하필 이번 종주산행에서 나타날게 뭐람!

어쩌랴? 산행의 템포를 줄이고 조심스레 걷는 수밖에!


 연하천대피소에서 점심을 해 먹고 차를 마시며 한참 늘어져본다.

몇몇 산꾼들이 점심 해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오른쪽 무릎을 마사지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이상이 없는 듯하여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삼각봉을 지나 형제봉에서 사진을 찍느라 잠시 쉬고 벽소령대피소에서 배낭을 풀고 10여분 쉬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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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거리산행에서 다리에 이상이 나타났으니 비상사태이다.

무리하지 말고 살살 달래고 조심하여야 되니, 건방떨며 종주주파시간을 재어보는 미련한 짓은 생각도 말아야한다.

덕평봉아래 선비샘에서 좋은 물맛을 한참동안 즐기고 물통 둘을 가득 채웠다.

물통 하나는 아내에게 통째로 가져다 줄 생각으로 마개를 한 번 더 조였다.

선비샘과 칠선봉, 그리고 영신봉 구간은 평지를 만나도 속도를 높이지 않고 그야말로 조심산행을 하여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세석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대피소 소등시간인 밤 9시 전에 여유시간이 한 시간이라 바쁘게 저녁식사와 차 마시기를 끝냈다.

 세석대피소 또한 등산객이 적고 자리를 아주 널찍하게 배정받아 기분이 좋았다.

대피소 밖은 손이 시릴 정도로 추운데 안은 난방이 잘되어 침낭을 풀어헤치고 잠을 잘 정도였다.

침상위에 매어놓은 빨랫줄에 땀에 젖은 옷가지를 널어 말리니 배낭이 그 만큼 가벼워져 기분이 좋다.

간식과 과자류의 봉지도 버릴 곳이 없는 지리산인데 옷에 젖은 땀을 말려버리니 무거운 눈썹 수 억조만큼이나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밖은 세찬 바람이 불면서 지나가 대피소의 창문을 뒤흔들고 있다.

이틀 동안 흐린 날씨에 산행을 하였는데 내일은 해를 볼 수 있으려나?

멋진 지리산 일출을 기대하면서 눈을 붙인다.

 

*** 종주산행 3일차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눈 비비고 배낭을 다시 꾸리고 4시 30분에 세석평전을 지나간다.

세석평전은 10여 년 전에 비하여 엄청나게 자연의 상태로 복원이 되어가고 있다.

하늘은 어슴푸레하지만 구름 한점 없이 맑다.

 5시에 촛대봉(1,703.7미터)에 도착하여 일출을 제대로 볼 자리를 잡았다.

촛대봉에는 일곱 명의 산꾼들이 올라와 옷깃을 여미며 추위에 떨면서 천왕봉너머 붉게 달아오르는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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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천왕봉 오른 쪽으로 태양이 떠오른다.

가슴이 콩콩 뛴다!

일출의 과정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기원을 한다.

이제까지 보아온 지리산 일출 중에서 최고의 멋진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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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홀한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해가 다 떠오르고 나서도 10여 분간 촛대봉에서 홀로 있었다.

세석평전의 넉넉한 품을 뒤로하며 삼신봉을 거쳐 연하봉(1,667미터)에서 잠시 쉬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아침을 해 먹고 잠시 늘어져 본다.

장터목은 사시사철 언제나 등산객으로 붐빈다.


 장터목을 출발하여 제석봉의 불에 탄 고사목지대를 지나 천왕봉 정상 직전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여기서도 철쭉이 반긴다.

철이 지나 뒤늦게 핀 꽃은 더 아름답고, 보고 지나는 이에게 아쉬움을 주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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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시 20분에 최고봉인 천왕봉(1,915.4미터)에 도착하여 지나온 종주구간을 넋을 빼고 뒤돌아본다.

그리고 웃어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기에 아득히 먼 노고단이 지척으로 보인다.

이번에 원을 풀은 반야봉이 탐스러운 모양으로 이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고, 또 보고, 지리산 산군들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취하고 나니 속세를 향하여 떠나기가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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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또 생각을 한다.

어디로 갈 것이냐?

중봉을 지나서 대원사지구로 갈 것이냐?

다시 제석봉으로 내려가 백무동으로 편히 내려 갈 것이냐?

아니면 문창대를 지나 중산리로 갈 것이냐?

가고 싶었던 지리산 최장의 계곡인 칠선계곡은 출입이 금지되어 갈 수는 없고....

 편한 코스를 싫어하는 못된 등산습관과 무릎이 걱정스러운 점을 감안하여 중산리로 내려가는 것을 택하였다.

천왕봉에서 법계사를 통하여 중산리로 하산하는 코스는 경사도가 좀 심하여 지친 등산객들을 괴롭히기 일쑤다.

마지막 코스라고 풀어지면 안 된다.

조심스레 하산을 하면서 천왕봉 쪽으로 자주 고개를 돌린다.

 

 * 남강 발원지인 천왕봉 아래의 천왕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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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자 좀 주세요 하며 내 주위를 돈다. 과자는 다 먹고 없다! 나무 열매나 따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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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위를 지나 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다리가 엄청 편해지고, 무릎도 아무렇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다.

환갑 전 지리산 종주 3회가 이루어지는 기분을 마음껏 만끽해본다.

 아내에게 지리산단독종주를 이상 없이 끝내었음을 알렸다.

아내의 문자메세지 왈 “경하드리옵니다 마마~~!!!” ㅎㅎㅎ

 귀가하는 열차에서 다리를 보면서 한 생각이 스쳐간다.

 

 * 지리산 단독종주산행(장장 50여 키로미터) 수훈갑 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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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전에 가을철 단풍을 몰고 한 차례 더 뛰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