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농기구

2008. 7. 3. 00:25농사

 텃밭농사 오 년을 하는 중이다.

갖고 있는 밭은 1300여 평이지만 호미길이 지나는 텃밭은 300여 평도 못된다.

나머지는 텃밭하기가 힘겨워 매실 100여 주와 서너 종류의 유실수를 몇 개씩 심었고, 틈나는 대로 조금씩 텃밭을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텃밭에 경운기나 관리기는 당초부터 없다.

처음 텃밭을 일굴 때에 관리기를 하나 마련할까 했지만 밭이 돌투성이라 이웃 농사꾼도 경운 좀 해 달라고 하면 외면하는 정도였으니 관리기를 살 마음이 들지 않았고, 취미농군에게 농지원부가 있다 해도 농기계에 붙은 보조금은 10 년을 기다려도 차례가 오지 않을 것이 뻔한지라 아예 관리기 사기를 포기하였었다.

게다가 무경운 자연농법으로 즐기는 취미농사를 하는 입장에서 경운기를 살 이유 또한 없었다.

 텃밭에 박혀있는 굵은 돌과 작은 돌을 골라내며 땀 흘리면서 밭 만들다보니 육체노동도 제 좋아하는 경우엔 즐길만한 운동이라는 걸 알았고, 호미질과 낫질에 부응하여 생기는 진한 맛 풍기는 농작물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농사의 기쁨을 알만도 하였다.

더구나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 비닐멀칭을 전혀 쓰지 않는 엉터리 자연농법에 의한 멋대로의 농사로 예상 이외의 소출을 얻을 때에는 농사의 대가가 된 듯한 기분이었고, 예상에 못 미치는 한심한 작황에는 남 보기 창피하지만 적게 달린 열매도 귀히 여겨 쓰다듬으며 다음 해를 위한 농사공부를 다시 하였다.


 취미농군이지만 텃밭에 농기구가 이것저것 꽤나 많다.


 호미만 해도 다섯 자루다.

작고 끝이 뾰족한 호미, 크고 날카로운 호미,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호미, 오 년째 땅을 파서 끝이 뭉툭해진 호미, 선호미 등인데, 고물 호미 하나를 제외하고는 호미 날이 언제나 예리하게 서있다.

호미의 한쪽 날을 줄과 숫돌로 갈아 낫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기도 한다.

텃밭에 잡초가 언제나 자라고 있으니 북을 주거나 잡초를 잘라낼 때 편하게 쓰기 위함이다.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호미 아랫날은 칼날과 똑같다.

그걸로 작물의 아랫부분 흙을 쓱쓱 긁으면서 북을 주면 웬만한 잡초는 모두 잘린다.

 선호미는 북주기와 두둑 만들 때 많이 쓰지만 굵은 잡초줄기 밑을 찍어서 잘라낼 때에 편하다.

날이 서 있어야 망초, 달마중, 명아주 등을 토벌하기 쉽다.


 낫은 네 자루다.

조선낫, 왜낫, 미니 낫, 나뭇가지치기용 낫(무기 수준) 등이 있다.

요즘같이 잡초의 줄기가 억세지 않을 때는 주로 왜낫을 쓴다.

미니 낫은 바랭이가 억세게 뻗을 때 줄기 아랫부분을 베어내는데 아주 유용하다.

 풀베기작업량이 많을 때는 예초기를 사용하니 낫날에 녹이 슬 때도 많다.


 호미와 낫 이외에 삽 두 자루, 괭이, 곡괭이, 쇠칼퀴. 쇠스랑, 갈퀴, 모종삽 두 자루, 어린 잡초 긁어내는 호미낫(?), 마늘 캐는 쇠꼬챙이 둘 등

텃밭의 농기구는 모두 스무 개가 넘는다.

 

 텃밭에서 일하다보면 농기구를 여기저기 놓게 되고, 그러다보면 정작 써야할 때에 농기구를 찾지 못하여 허둥댈 때도 많다.

그래서 잠시 쉴 때에도 농기구는 눈에 잘 띄는 곳에 놓거나 귀찮아도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농기구의 보관 장소는 네 군데이다.

농막 옆 차광막 앵글에 삽, 괭이, 선호미, 쇠갈퀴, 갈퀴 등 키 큰 놈들을 걸어놓고,

개수대에 붙은 창고에 쇠스랑, 곡괭이, 낫 등 무겁거나 날이 서서 위험한 놈들을 보관하고,

텃밭의 돌탑외등 아래 구멍에는 모종삽, 쇠꼬챙이, 미니 낫 같은 작은 놈들을 넣고,

비닐하우스 안의 문 옆에는 호미들을 걸어둔다.

종류별로 보관 장소를 정해놓고 써야 허둥대지를 않고 관리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관리기나 경운기를 쓸 일이 없을 것이니 텃밭을 하는 한 손때 묻은 텃밭의 여러 농기구와 함께 지내야한다.

즐거운 텃밭생활을 하는 텃밭주인은 농기구를 엄청 아낀다.

언제나 제자리에 놓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날을 갈고 닦아 농기구가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도록 한다.

텃밭생활 하다보니 농사하기 전엔 생각지도 못한 낫 갈고, 호미 갈고 하는 별스런 일도 많이 한다.


 텃밭에서 맛있는 농작물을 거두는 건 아무렇게나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텃밭을 만들고, 씨 뿌리고, 보살피는 데에 온갖 정성을 다 하여야 하고, 그에 더하여 귀한 농작물을 아끼는 마음이 기본으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얻은 소출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마음이 같이 있어야 한다.

자연의 맛이 듬뿍 담긴 귀한 농작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텃밭주인의 정성이 함께 할 때에 만들어 지는 것이리라.

 텃밭 가꾸는 마음으로 호미자루를 다시 한 번 쓰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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