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의 성묘

2010. 12. 28. 13:51마음, 그리고 생각

 크리스마스 다음날도 휴일이다.

오랜만에 집에서 뒹굴뒹굴 늘어지다가 마누라와 함께 나갔다.

마누라는 가게에 손님이 별로 없다는 소리를 듣고 느닷없이 교외로 나가자고 한다.

일요일 오후 4시가 넘어 갈 데가 어디 있겠나?

인천대교를 타고 영종도와 을왕리 해수욕장을 다녀오는 것?

아니면 대부도를 휘익 돌고 조개칼국수를 맛나게 먹고 오는 것?

강화도를 돌아 나오다 대명항에 들러 매운탕 좀 먹어봐?

암만 생각해도 일요일 오후 미어터지는 차량행렬로 쉽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일단 고속도로에 접어들면서 생각을 좀 해본다.

어디 가려고 일정을 짜고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나가봤자 개고생이 뻔하다.

지난번에 장모님 기일을 그냥 넘긴 것이 마음에 걸리고 있던 터라 마누라가 깜박깜박 조는 틈에 장모님이 누워계시는 모현리 천주교공동묘지로 향했다.

용인 풍덕천 사거리는 언제나 체증이 걸리는 곳이지만 이건 뭐 말이 안 된다.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롯데마트가 풍덕천 사거리에 있어 교통체증을 더욱 심하게 만들고 있다.

십리도 되지 않는 거리를 한 시간을 넘겨서야 벗어났다.

수지지역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참 대단하다. 지옥이나 다름없는 풍덕천 사거리를 매일 드나드는 사람들은 저절로 도가 닦일까? 아니면 악만 남을까?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살지 못할 곳이다.

그런대도 아파트 숲으로 사방이 둘러싸이고 그런 아파트 값이 엄청나게 비싸니 말이다.

 

 해가 지고 나서 도착한 공동묘지 입구의 꽃집에 주인도 없다.

그 대신 꽃다발 가격이 적혀있어 마누라는 그대로 돈을 지불하고 한 다발 가지고 나온다.

장모님 계신 곳에 도착하니 비석의 글씨도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

제사 올리지 못한 처남이 먼지 다녀간 흔적이 있다.

죄송스럽지만, 내년에는 처남의 사정이 좀 더 나아져서 장인장모님의 기일이나마 제사를 제대로 올릴 정도가 되도록 해주십사하고 엎드려 빌어본다.

마누라의 속마음도 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잠시 머물다 되돌아오는데 웬 시커먼 사람 둘이 산악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오밤중에 공동묘지에서 담력훈련이라도 하는 걸까?

겨울철 밤중에 성묘하다 별 것을 다 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사람들이 담력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체력훈련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묘현리 천주교공동묘지에는 귀신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묘역에 누워계신 분들은 모두 천사이기 때문이다.

 

 깜깜한 공동묘지 길을 돌아 내려오는 마누라의 얼굴이 밝다.

제사 지내지 못한 죄로 밤중에 받은 벌이 마누라의 가슴을 짓눌렀던 죄송스러움을 걷어내어서일까?

'마음, 그리고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첩장을 보내며  (0) 2011.03.14
연하장 단상  (0) 2011.01.27
국민연금을 받다  (0) 2010.01.02
휴일 즐기기  (0) 2009.12.14
환갑  (0) 2009.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