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을 보내며

2011. 3. 14. 14:13마음, 그리고 생각

 좋은 일에 남을 초대하는 글발을 청첩장이라 한다.

그러니 청첩장을 보내는 이가 좋은 일을 맞이하여야 하고,

그러한 좋은 일에 남을 초대하고 초대된 이가 응하여 참석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함으로 인해 좋은 일이 더욱 빛나고 가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들의 결혼날짜가 잡혔다.

결혼식은 나와 가족의 좋은 일이다.

그래서 남을 초대하고 초대받은 이들이 많이 참석하면 결혼식장이 빛이 날 것이다.

아들이 나의 경우와 같이 성당에서 조촐하게 친지들 몇 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한 분위기에서 결혼식 올리기를 바랐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어디 그런가?

결혼해서 살 신랑신부가 선택하는 방식대로 결혼식을 할 수 밖에 없다.

 

 남들처럼 일반적인 청첩을 하게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청첩장에 “무 화환 무 축의금”이라고 큼직하게 쓰고 싶었지만

내가 부자가 되지 못하여 그냥 청첩장을 만들었다.

 청첩장 봉투에 받는 이의 주소와 이름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내가 그에게 청첩을 하는 인연이 부족하지가 않은지,

받는 이가 혹 나의 청첩을 불쾌하게 생각하지나 않을 지,

내가 받는 이의 경조사에 결례를 한 적이 없었는지,

내가 앞으로도 받는 이의 경조사를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챙길 자세가 되어있는지

등을 생각하며 청첩장을 받는 이들의 주소와 이름을 하나하나 써 넣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내가 상대방의 경조사에 결례를 했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더라도,

서로 사람의 연을 완전히 끊고 살 수가 없는 경우에는 다시 또 생각을 해본다.

 

 내 아들이 결혼식 올리는 식장이 위치한 도로가 마비되고,

하객이 왕창 붐벼 식장이 도떼기시장처럼 되고,

식장에 축하화환이 넘쳐 쓰레기장이 되어야

내가 남보다 출세한 것이고 그래서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럴만한 자리에 있지도 않고 또, 그런 걸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아들이 사치스럽지 않고, 성대하지는 못하더라도 품위 있는 결혼식을 하고,

나는 그런 자리에서 기왕에 연이 맺어진 이들과 좋은 만남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런 뜻 깊은 자리에 초대할 나의 지인들을

동창회명부나 친목단체명부에서 기계적으로 뽑아서 왕창 청첩장을 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 사는 연을 다시 생각하며 하나하나 청첩장의 수신인 란을 채워갔다.

그러면서 나의 인생을 생각해 본다.

어떤 이의 어떤 경우에는 그래도 서로 잘 살아온 인생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볼품없는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청첩을 받는 이와의 소중한 인연을 떠올리며 웃음 짓기도 했고,

동고동락한 이들과의 추억을 소중하게 다시금 정리해보기도 했다.

 

 청첩장을 보내며 나의 인생을 생각하며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결혼 후에 좋은 가정을 이루기를 빌어본다.

그리고는 자식들이 다 떠나고 난 뒤에 나와 아내 둘이서 살아갈 인생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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