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되어가는 눈

2017. 10. 11. 19:21마음, 그리고 생각

 아직 안경을 쓰지 않고 신문을 본다.

어쩌다 사전 볼 때나 팔년 전에 폼 잡느라고 맞춘 폼 없는 돋보기를 꺼내본다.

그런데...

연초에 받은 건강검진에 트루젠의증, 황반변성의증이라 나왔고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게 좋겠다한다.


 이왕이면 망막전문 박사에게 진료를 받고자 특진신청을 하고 예약했다.

안저 안압검사를 다시 또 하고나서 약을 네 번이나 눈에 넣어 동공을 키운다.

삼십분이나 눈감고 있는 것도 좀 신경질난다.

교수방에 들어갔다.

불을 끄고 손전등을 키고 돋보기로 쳐다보며 내 눈꺼풀을 올리고 내리고 동공을 지나 눈알 뒤쪽의 망막을 조사한다.

 

( 망막에 찌꺼기가 좀 꼈습니다.

그거 긁어내야 되나요?

ㅎㅎ 그럴 순 없고...

그냥 놔두어 악화되면 어떻게 되나요?

눈이 멀어 보이질 않지요.

엥? 장님이 되나요? 그럼 어찌 치료~?

ㅎㅎㅎ 그럴 때까지 살면 100 세는 살아야...ㅎㅎ

그럼 눈 영양제를 먹는 건 어떤가요?

먹어서 좋을 수도 있지요.

먹으면 안 먹는 것보다 좋다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럼 어찌하란 말~? 박사님도 약 복용하시나요?

뭐~, 이따금 먹지요. 이것저것 많이 먹기도 하고....ㅎㅎ )

 뭐야? 이거? 검사는 왜 또 돈들이고, 특진료 더 들이고...

안과교수와 농담 따먹기하고 나오니 눈이 더 밝아지는 거냐?

어쨌든 눈이 좀 나빠진 것은 사실이니 눈 관리를 좀 신경 써서 해야 좋겠다.


 텃밭에서 푸르른 애들이나 싱그러운 잡초들, 게다가 뒷산의 싱싱하고 커다란 소나무들을 눈 속에 넣고 있으면 눈뿐이 아니라 오장육부모두가 시원하니 눈 관리가 자동이라 신경 쓸 일이 없는데...

밤에 농막에 들어앉아 책 좀 봐봤자 오래지 않아 눈꺼풀 아래로 처지면서 잠 실컷 자게 되니 눈 관리 신경 쓸 일 없는데...

집에서 지내면 인터넷카페 보랴 인터넷자료 뒤지랴 텔레비전 보랴 잡지나 소설 보랴 정신이 없고, 밖에 나가 돌아다녀도 회색빛천지의 도심에서 보이는 것들이 맘에 들지 않아 쉬이 눈이 피곤해지니 눈 관리가 제대로 되지를 않을 수밖에.

그렇다고 인터넷카페 구경하지 않고, 인터넷 자료 뒤지지 않고, 독수리타법이나마 연습하지 않으면 그나마 모니터로부터의 눈부심을 방지하겠지만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리 따져 봐도 좌우시력 공히 0.7을 유지하면 이 나이에 그래도 상급 수준에 드는데, 그리고 굳이 더 좋게 하려면 불편하지만 안경 좀 쓰면 되는데 쓸 데 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


 앞으로 고물이 더 되어가고, 따라서 성능도 떨어져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이것저것 세세히 따지지 말고 세상의 이치에 순응함이 옳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신체각부에 문제점이 생길 것이고 정신 또한 흐릿해짐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관리를 잘 해도 젊었을 때처럼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며 최상의 관리를 한다하여도 그대로 유지하기 또한 매우 어려울 것 아니겠는가?

신체각부의 노화가 가능한 한 천천히 되도록 주의를 하고 관리를 하면 되는 것이지 노화되는 과정을 안타깝게 여기고 실망할 것까지는 없으리라.


 텃밭에서 늙은 몸을 끌고 다녀도 할 일은 있을 것이며, 호미자루 쥘 힘만 있어도 맛있는 고추는 따 먹을 수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취미농군이 텃밭에서 노는 모양도 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나이에 따라서, 그리고 쓸 수 있는 힘의 크기에 따라서 텃밭의 작물들도 변할 것이며 농사놀이 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2009.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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