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지주대

2010. 7. 18. 18:43농사

 텃밭에 자주 가지 못하니 텃밭은 온통 풀 천지이다.

텃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때에도 작물들이 풀들과 함께 자랐으니 한 달에 한 두 번 가는 텃밭이 오죽하랴!

농사로 돈벌이를 하지 않는 취미농사꾼의 입장에서 볼 때에 텃밭의 잡초들은 아주 좋은 즐길 거리가 될 수도 있다.

풀들을 호미로 뽑아내기도 하고 낫으로 베어내기도 한다. 그도 버티기 어려우면 예초기를 가동하며 텃밭을 돌보기도 한다.

작물들이 자라도록 잡초들을 제어하는 과정에서 취미농사꾼은 땀 흘리며 도시에서 축적된 노폐물을 시원스레 빼내기도 하며 적절한 조절을 하며 운동으로 활용하기도 하니 텃밭의 잡초들이 꼭 귀찮은 존재만은 아닌 것이다.

 


 취미농사꾼의 입장에서는 텃밭의 잡초들은 텃밭농사를 망치게 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텃밭에 잡초들이 있음으로 해서 텃밭농사가 좋은 점도 많다고 본다.

텃밭에 비료, 농약, 제초제, 비닐멀칭을 하지 않는 게으른 취미농사꾼은 잡초들의 도움을 꽤나 많이 받는다.

 잡초들이 텃밭에 있음으로 해서 텃밭의 흙은 부드러워지고 메마름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매년 자라는 잡초들이 죽고 다시 자라고 베어지는 과정에서 척박했던 텃밭의 흙도 별도로 극성스럽게 퇴비를 만들어 주지 않아도 어느 정도 영양가를 포함한 좋은 부드러운 흙이 될 수 있으며, 지표면의 물기가 빨리 마르는 것을 막아주면서 뜨거운 열기를 차단하는 일도 하니 게으른 취미농사꾼은 적당히 인분주만을 뿌려주면서 쉽사리 텃밭을 가꿀 수도 있는 것이다. 거름기가 부족하여 아무래도 보충을 해 주어야 할 형편이 되면 어쩌다 유박거름을 가볍게 뿌려주면 텃밭농사로 소출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게으른 취미농사꾼은 예초기로 허리춤을 넘나드는 거친 잡초들을 베어낼 때도 베어낸 잡초들을 그대로 내깔겨둔다. 텃밭농사 초창기에는 유기농 한답시고 베어낸 잡초들을 한 군데에 모아 쌓아놓고 쌀겨, 인분주, 깻묵가루 등을 뿌리고 섞고 하면서 퇴비를 만들어 쓰기도 했지만 그 또한 귀찮은 일이라 하질 않는다.

텃밭에서 나오는 음식물찌꺼기도 거의 없지만, 있어도 텃밭에 뿌려버리면 그만이다.

텃밭이 넓어 표 나지 않고, 버려진 음식물찌꺼기들은 지렁이의 좋은 먹이가 되니 오랫동안 썩어가는 걸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올해엔 텃밭에서 즐길 시간이 너무나도 없어 텃밭농사에 욕심을 내지 못하였다.

기껏 텃밭에 심은 것은 고추 150 여주, 호박고구마 세 단이 전부이다.

텃밭에서 저절로 자라는 들깨, 상추, 아욱, 그리고 심어놓고 방치되어 바랭이에 휩싸인 부추 등은 관리대상이 되질 못하고 기껏해야 텃밭에서 주인의 입맛을 돋우는 별식이 될 뿐이다.

 


 고추밭에는 으레 고추지주대가 있다.

고추가 자라고 많은 고추가 열려 무거워지면 쓰러지기 때문에 고추지주대를 박고 고추가 쓰러지지 않도록 줄로 묶어 놓는다.

프로농군들이 기르는 고추는 그 키가 거의 한 길이 되는 종자도 많고, 거름을 많이 주니 종자가 어떻든 크게 자라며 많은 고추들이 달리게 되니 뿌리가 제대로 지탱하지를 못한다.

고추 아래에 잡초들이 아예 자라지 못하고, 대부분 검은 비닐로 멀칭을 하니 고추의 뿌리가 단단하게 흙 속에 묻히지를 못하는 듯하다.

 잡초와 함께 자라는 고추는 뿌리가 땅에 깊게 박히기도 하지만 잡초뿌리와 서로 엉켜 튼튼하게 지탱하니 웬만한 비바람이 괴롭혀도 쓰러지지를 않는다.

잡초들 사이에서 자라는 고추라 흙 속의 영양분을 독식하지 못하니 고추의 크기가 작고, 고추의 키 또한 작으니 고추의 뿌리가 충분히 고추의 흔들림을 이기고 지탱하는 것이다.

 고추밭 두둑에 난 잡초들을 뽑아내면 고추뿌리가 지탱하는 힘이 줄어들어 비바람에 텃밭의 흙이 부드러워지고 고추가 이리저리 흔들리면 넘어지기가 쉽다.

고추밭 풀매기를 한 후 장맛비에 고추를 넘어지지 않게 하려면 고추지주대를 박고 줄을 매어줄 수밖에 없다.

 


 고추를 정식할 때에 그 간격을 두 자 정도 띄우고 두둑에 자라는 잡초들을 뽑지 않고 적절히 제어하면 고추지주대가 고추를 고정하게 하지 않아도 고추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취미로 농사를 하는 이들은 텃밭농사에 시도해볼 만하다.

그 대신 게으른 취미농사꾼은 고추 수확을 크게 기대하지 말아야한다. 고추가 작고, 달리는 양도 적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텃밭주인 멋대로 텃밭의 작물을 돌보며 소출을 적당히 얻는 취미농사꾼이 즐겁게 선택할 수 있는 농사방법이 되리라 생각한다.

내년에는 텃밭 고추농사를 모두 고추지지대 없이 할 생각이다.

고추 아래 자라는 잡초들을 고추 키의 중간을 넘지 않게 낫으로 베어주면 된다.


 텃밭 고추농사 칠년 차에 한 번도 농약을 사용한 적이 없다.

제초제 또한 텃밭에 뿌려 본 적도 없으며, 화학비료 또한 준 적이 없다.

그 흔한 농협퇴비도 거의 쓰지 않는다.

더구나 비닐멀칭을 한 적도 없다.

그래도 게으른 취미농사꾼에겐 웃을 만큼의 소출이 있다.

취미텃밭농사를 남이 하는 대로 하면 재미가 반감된다. 이왕이면 게으른 텃밭주인의 취향에 맞추어 색다르게 텃밭농사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텃밭의 땅심이 좋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병충해를 방치할 배짱이 있고, 호미질, 낫질로 손바닥에 굳은살 생기는 걸 즐기는 취미농사꾼이라면 취할 만한 농사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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