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3. 00:24ㆍ마음, 그리고 생각
고해성사를 보았다.
고해성사란 사제 앞에서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는 일이다. 신자의 고백을 들은 사제는 하느님을 대신하여 죄의 용서를 선언한다.
신자가 수시로 볼 수 있는 고해성사와는 다르게 특별히 일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 성탄절과 부활절에 맞추어 공식적인 행사로서 치루는 데 이를 특별히 판공성사라고 한다.
영세(세례)를 받은 지 오십여 년이 되었다. 오래전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심이 깊지도 못하고, 수시로 장기간씩 성당 다니기를 외면한 터라 이제껏 아마도 고해성사를 이십여 번이나 했나싶다.
지은 죄가 없어도 사제 앞에 나가 백여 번의 고해를 했어야 마땅한데 기껏 이십여 번이니 누가 보아도 엉터리 신자가 아닐 수 없다.
고해성사를 보고, 하느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았다하여 법적으로 무죄의 선언을 받는 거와는 다르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죄라고 여기는 것들이 형사상 죄로 규정된 것들에 그대로 해당되는 것들도 아니다.
신자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지키는 것은 아마 거의 모범적인 인간들이 행하는 인간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할 수 있겠으나, 신자로서 본분을 망각하고 생활을 하였다하여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물어야하는 형법에 정한 죄를 짓는 것에 그대로 연결되는 것도 아닌 것이다.
신자로서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고, 그에 따라 하느님이 용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앙의 영역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니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혼동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해를 하는 대상은 십계명에 정한 바에 따르지 않았을 때, 그리고 도덕과 사회규범에 따르지 않음으로서 반성할 일이 생겼을 때 등 신자로서 죄의식을 느끼는 것들이다.
하느님이 정한 십계명을 위반하였다하여 신자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은 아니다. 죄를 범한 신자가 하느님의 품으로 들어가겠다고만 하면 하느님은 신자가 범한 죄를 용서하고 언제나 자비를 베풀고 사랑으로 끌어안는다.
고해를 한 신자는 마음 속 깊이 반성하며, 하느님의 용서에 감사하고, 앞으로는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히 따를 것을 다짐하며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한다.
부활절 판공성사를 보면서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돈다.
나이 들어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아니면 가슴 속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순간적으로 들어서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는 육십 평생 살아온 나날을 판공성사를 보면서 뒤돌아보는데 따른 회한에서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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