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4. 19:33ㆍ마음, 그리고 생각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좀 그치나싶어 호미 들고 텃밭에 나가 고추이랑에 난 풀 뽑다보면 얼굴에 줄줄 흐를 정도로 내린다.
어느 정도 비가 와야지 너무 심하게 쏟아진다.
적당히 내리면 비 맞으며 텃밭의 풀 뽑는 것도 할 만하다. 이왕 젖은 몸 아예 더 비 맞으며 시원하게 풀 뽑자고 텃밭에서 나뒹구는 꼴이 되기도 한다.
흠뻑 비 맞으며 땀 흘리고 난 뒤의 개울물에서의 찬물 목욕은 텃밭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텃밭에서 풀 베고 뽑으면서 땀을 흘리는 것만으로는 아무리 소출을 많이 얻는다 해도 즐겁지 않을 것이다.
땀 흘리는 여러 가지 과정을 즐기고, 땀 흘린 후의 시원한 맛을 느끼고, 텃밭에서 자라는 여러 작물들을 정성껏 돌보고 난 뒤의 소출의 귀중한 맛을 제대로 알 때에야 텃밭의 즐거움을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폭우로 비 맞으며 텃밭을 돌볼 수가 없다.
우산 쓰고 장화 신고 텃밭을 순찰하면서 폭우로 잘못된 곳이 없는가를 살펴본다.
순찰하면서 부추 베고, 풋고추 따고, 들깻잎 따고, 파 한 뿌리 캐고, 상추와 쑥갓 조금 따고, 제 멋대로 난 미나리와 박하 잎 몇 장 따서 그릇에 담는다.
그릇 가득 담긴 야채와 지난주에 캔 감자 두 개 씻어 투박하게 잘라 밀가루 조금 넣어 잘 섞은 다음 작년에 만든 풋고추절임 통에서 국물을 몇 술 따라 대강 간을 맞추어 부침개를 지진다.
그리고는 자기 농막에 갇혀 걱정스레 하늘 쳐다보고 있는 친구를 청한다.
부침개를 부치는 프라이팬이 작아서 부침개는 찻잔 바침 크기로 부쳐진다.
작게 먹으니 오히려 큰 부침개보다 더 먹게 된다.
억세게 내리는 비로 농막에 들어앉아 부침개를 지지며 한잔 술에 한담을 나누는 것도 텃밭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각별한 재미이다.
부침개는 기름에 부쳐서 만드는 빈대떡이다. 기름에 부치지 않으면 빈대떡을 만들 수 없겠지?
빈대떡은 녹두가루로 전을 부쳐 만든 음식이다. 녹두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전은 빈대떡이 아닐까? 빈대떡이 아니면 부침개도 아니다?
채소류나 고기류 보다 녹두가루나 밀가루나 감자가루 등이 많이 들어간 부침개를 일반적으로 빈대떡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채소류나 고기류 등이 많고 곡물가루가 적게 들어가 기름에 부친 전이 제멋대로 떨어지지 않고 모양 좋게 붙어있는 음식을 부침개라고 하는 것이 맞는 걸까?
텃밭에서 부침개를 부치니 빈대떡신사가 생각난다.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밖에서 매를 맞는데.................에헤헤헤.....와하히히.........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에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
그렇다!
돈 없는 신사가 돈 걱정 하지 않고 먹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대폿집에서 빈대떡을 먹는 것이다.
그렇다!
돈 없는 백수가 돈 걱정 하지 않고 먹고 즐길 수 있는 것이 텃밭에서 빈대떡을 부쳐 먹는 것이다.
하여간 텃밭에서의 생활은 비가 억수로 내려도 마음이 부자 되는 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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