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먹기

2009. 1. 20. 23:44마음, 그리고 생각

 우리들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빠르게 식사를 한다.

빨리 먹는 것은 분명 나쁜 점이 많다.

신체적으론 위에 부담을 주기도 하고, 배를 불룩하게 만들게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많이 먹는 사람이 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허겁지겁 짧은 시간에 많이 먹는 사람이 주로 배 많이 나오는 사람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배가 불룩 나오고 얼굴에 개기름이 끼면 부티가 난다고 했다.

지금은 날씬하고 얼굴에 윤기가 흘러야 부티난다의 기본이 되는 듯하다.


 우리들은 어려서부터 빨리 먹었다.

한국전쟁으로 피폐된 살림 때문에 먹을 것이 제대로 없었고,

어른이 되고는 사느라고 바빠서 먹는 시간도 줄여야했고,

좀 살게 되고나서는 더 잘 살기 위하여 뛰는 바람에 느긋하게 먹는 호사를 누려보지 못하였다.

 그렇게 빠르게 먹는 층의 중심이 지금의 오십 중후반 이상의 노년층이다.

그리고 빠르게 먹는 어른들의 가정은 아이들도 빠르게 먹는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이 빠르게 먹는 것이다.


 느리게 먹는 것의 좋은 점을 이해한 가장이 모처럼 느리게 먹으려고 마음먹고 실행을 하려 하여도 잘 되지를 않는다.

그냥 밥 한술 입에 떠 넣고 서너 번 씹어 삼키던 것을 삼십여 회 이상씩 씹기만 할 수 있을까? 먹는 동안 부부, 자식들, 며느리들과 눈만 껌벅거리며 함께 씹기만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씹기만 하는 가족들을 서로 바라보며 즐거워 할 수가 있을까? 그렇게 계속하면 아마도 식구들이 슬슬 피해서 조만간 혼자 밥 먹게 될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식사 중의 대화법을 배우지도 못했을 뿐더러 안다고 한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대화를 하지도 못한다.

모처럼 대화하면 시도 때도 없는, 쓸데없는 잔소리가 되고 마니 그건 대화가 아니고 아랫사람들이 싫어하는 일방적인 훈계나 다름이 없게 된다.


 우리들의 식단 자체가 느리게 먹는 방식이 아니다.

지금은 많은 반찬들을 풍족하게 먹는 가정이 많겠지만, 예전에 몇 가지 없는 상의 음식을 느긋하게 음미하며 느리게 먹는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비싼 한식집에서 여러 가지 코스별로 나오는 궁중음식을 먹어가며 기분 좋게 한담이나 나누는 사람들이 전체국민의 몇 프로나 될까?

가정에서 그런 식으로 갖가지 음식을 조금씩 골고루 먹어가며 여유롭게 재미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분명한 것은 우리들은 역사적으로나 가족적인 면에서 그리고 경제적인 면에서 빨리 먹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빨리 먹는 데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요즘은 웬만한 월급쟁이들은 주5일 근무한다.

사니 못사니 하여도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있든 하루 종일, 일년 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헉헉대며 뛰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주일 중 쉬는 이틀, 잠시라도 바쁘지 않은 날을 잡아 느리게 먹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느리게 먹는 중 식구나 친구들끼리 오붓하게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술을 마실 때에도 소주를 단숨에 들이키지 말고, 좀 좋은 술을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면서 고상하게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쉴 틈 없는 생활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는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언제나 느리게 지내자는 것은 아니다. 뛸 때는 뛰고, 이따금이라도 뒤도 돌아보고 이리저리 생각하는 여유도 부리면서, 그리고 사는 맛이 어떤지 음미도 해가면서 느리게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하며 생각해본다.

 기본은 느리게 먹는 것이다.

느리게 먹을 줄 알고 난 뒤에 느리게 살아보는 것이 어떤지 음미해보는 것이다.

빠름과 늦음이 조화를 이루면 사람 사는 맛과 멋이 생기지 않을까한다.

 설을 맞이하면서 조금 신경 쓰면 좋은 일이 무엇 없을까하며 생각해본 것이 느리게 먹는 것이다. 나이 좀 먹으면 쉽게 실행할 수도 있는 일인 것 같아 그렇게 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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