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배추를 거두며

2009. 11. 15. 23:36농사

 직장생활을 하니 텃밭이 부실해진다.

이 주일 만에 텃밭을 찾은 엉터리 농군이 추위에 떨며 바삐 움직여보나 텃밭에서 건지는 소출이 영 형편없다.


 올해는 배추를 백육십여 포기나 심어놓고 벌레를 퇴치하느라 목초액도 간간히 뿌려 배추가 실하게 자라는 듯 했었다.

그러나 배추포기가 한창 자랄 때에 관리를 제대로 하질 못하였고, 일찍 찾아오는 제천 산골짝의 추위를 방비하지 못하여 배추를 제대로 거두질 못하였다.

 적절한 추가시비를 소홀히 하였고, 가뭄에는 적절히 물을 주어야 좋을 텐데 그대로 방치를 하였고, 추위에 대비하여 포기를 묶어주어야 하는데 실기를 하여 얼도록 하였으니 텃밭농사 6년차라 하여도 아직도 초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맛있는 파란 배춧잎을 영하 8도의 11월 초 첫 추위에 사그리 얼려 텃밭에 그대로 내깔겨 버렸으니 신농씨에게 볼기짝 맞을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대로 묵직한 녀석들이 겨우 이십여 포기에 불과하고, 포기가 들은 형태만 갖춘 녀석들이 오십여 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파란 잎을 헤벌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 손바닥만한 것들이 오십여 개라 우리 집 김장할 만큼의 양의 반도 못되는 한심한 소출을 얻었으니 창피한 마음이 엉터리농부의 가슴에 가득하다.

배추의 몰골이 형편없는지라 상품가치 또한 없기에 남에게 주지도 못하는 정도이다.

 그래도 어쩌랴!

얼은 배춧잎을 떼어내고 깨끗하게 다듬어 놓으니 맛은 있어 보인다.

한 놈을 반 갈라보니 속이 깨끗하고 그런대로 실하다.

고갱이를 씹어보니 향긋하고 달콤하게 입안에서 번지는 배추 맛이 매우 좋다.

작년과 달리 배추속이 벌레천국이 아니라 집에 가져가도 아내로부터 한소리 들을 것 같지는 않으니 그런대로 안심이 된다.

 

 

 

 


 대파와 쪽파가 다행히 얼지 않고 있어 모두 거두니 두 삼태기나 된다.

갓은 크게 자라지 않아 모양은 없어도 풍기는 향이 진하고 좋아 모두 챙겼다.

뒤늦게 뿌린 상추는 추위에 자라지 못해 어린 싹에 불과하지만 되는대로 솎아서 다듬으니 상추쌈 몇 번은 먹을 만하다.

 

 


 텃밭의 애들을 모두 거두고 텅 빈 텃밭을 이리 저리 돌아다녀본다.

고춧대에 달린 빨간 고추는 왜 미리 챙기지 않았냐고 텃밭주인을 나무라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썩어가는 토마토도 원망스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수대 옆에 놓인 함지박에 가득 찬 물은 땡땡한 얼음으로 이미 변하였다.

 비닐하우스의 문을 모두 내려 닫으며 올 겨울을 잘 버텨주라고 보살핀다.

호미며 낫이며 농기구들을 가지런히 정리해본다.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수도를 막고, 화장실 변기 속의 물도 모두 빼내고, 온수기에 차있는 물도 모두 빼낸다.

농막 안도 한 번 더 청소를 하고, 냉장고도 모두 비웠다.


 아마도 올 한 겨울에도 두어 번 어김없이 텃밭을 찾을 것이다.

딱히 텃밭에서 할 일은 없을 것이지만 봄부터 초겨울까지 텃밭에서 지낸 정을 못 잊어 삭막해진 텃밭을 어루만지러 텃밭을 찾을 것이다.

 텃밭은 이제 화려한 주변의 단풍까지도 모두 떨어버리고 점차 회갈색의 휴면으로 돌입해간다.

텃밭주인도 한겨울의 추위를 못 견디고 텃밭을 떠나는 시절이 되었다.

아니, 지금은 텃밭에서 더 지내려도 지내지 못하니 자꾸 텃밭을 돌아다니며 흙을 만지작 거려본다.

 내년에는 완전한 주말농장으로 변할 텃밭을 어루만지며 추위에 떠는 텃밭을 위로해본다.

텃밭에서 며칠씩이고 지내지는 못하지만,

매주 주말마다 찾지는 못하겠지만,

내년에도 어김없이 풀이 무성하면서도 고추, 고구마, 부추, 배추, 무, 당근, 녹두, 감자, 야콘, 옥수수, 토마토, 아욱, 호박, 수세미, 땅콩, 상추, 쑥갓, 대파, 쪽파들이 튼튼하게 자라는 텃밭이 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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