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텃밭풍경

2009. 11. 4. 00:03농사

 텃밭에 가본지 이 주일이 지났다.

일이 바빠 텃밭을 돌볼 겨를이 없어 미안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텃밭을 찾았다.

차가운 날씨에 접어들어서인지 잡초들도 기운을 쓰지 못하니 아끼는 작물들이 그런대로 준수하다.

 텃밭의 연못은 만추의 화려함과 쓸쓸함을 잔뜩 껴안고 청명한 하늘아래 가을의 색을 한껏 뽐내고 있지만 그를 보는 텃밭주인은 왠지 허전함을 미리 맛본다.

 

 

연못을 덮은 노랑어리연은 아직도 싱싱하고 노란 꽃들을 계속하여 피워대고 있어 조만간 쓸쓸함을 맞이할 연못을 막바지로 치장하고 있다.

 

 

 고추는 늦장을 부려대며 뒤늦게 풍성하게 풋고추를 달고 있고 익어가는 고추들은 더 이상 빨갛게 될 기미가 없다.

내일 모래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에 귀가 전에 서둘러 고추를 따본다.

이내 몇 소쿠리를 따고 보니 쭈그리고 노동한 탓으로 허리가 아파온다.

 

 

 

 석 달 전에 파종한 당근은 뿌리가 충분히 커졌고, 뽑아서 먹어보니 흙냄새와 함께 향긋한 싱싱함이 입안을 진동시킨다.

캐어낸 녀석들의 반은 제대로 크지를 못한 못난이들이다.

같은 땅에 심은 녀석들인데도 자라난 결과가 사뭇 다르니 사람들 사는 세계를 보는 듯하다.

 

 

 늦게 심은 토종 찰옥수수 몇 놈들이 있어 좋은 놈으로 씨앗을 챙기고 짬 내어 세 녀석을 푹 찌어 허기진 뱃속을 채워본다.

입안에 달라붙는 쫀득함이 토종의 맛을 깊게 느끼게 한다.

상품가치가 모자라는 작은 놈들이지만 텃밭에서 정성들여 가꾼 보람을 까만 아름다움과 쫀득하며 달콤한 맛으로 보답하니 다시금 종자를 챙기는 농심을 불러온다.

 

 

 여문지 오래인 녹두는 비를 맞아서인지 깍지가 터지지를 않아 그런대로 한 됫박  건졌다.

제사상에 올리기에는 충분치 못하나 어쩌랴! 모자라는 대로 적게 올려도 조상님들이 혼내지는 않으리라.

 

 

 무는 잘 자라 주어 맛이 달고 물기도 양호하다.

그러나 단단함에서 모자란다.

텃밭주인이 요구하는 수준에 모자라지만 영하의 날씨에 바람이 들까봐 서둘러 모두 뽑고, 무청도 거두니 이웃에 나누고도 남을 양이다.

 

 

 배추는 속이 든 녀석들이 몇 되지를 않고, 대부분 덜 자란 상태이다.

올해도 파종을 늦게 한 게으름으로 소출이 별로일 것이다.

그래도 이 주일 정도 더 자라고 햇볕을 쬐여 맛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에 좀 더 놔두기로 하였다.

해 저무는 때가 되어도 밭일이 끝나지를 못하니 허둥대다가 배추포기 묶는 정성을 빼먹어버렸다.

다음번 텃밭에 갈 때까지 얼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비닐하우스 안의 토마토는 아직도 달리고 익어가고 있다.

잘 익은 맛으로 목마름을 달래고 보니 파란 놈들만 쳐다본다.

비닐하우스 개폐기를 움직여 춥지 않게 하였으나 제대로 익기는 어려울 듯하다.

 

 

 텃밭 뒤편의 산은 그런대로 멋이 있다.

단순한 텃밭이기를 거부하며 치장된 단풍으로 텃밭주인의 눈을 즐겁게 하여준다.

군데군데 있는 뽕나무의 잎이 예쁜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고, 두충나무와 밤나무 잎도 색깔이 들었다.

언제나 푸른 소나무에 단풍이 섞인 모양 좋은 뒷산을 가진 텃밭은 분명 명당임에 틀림없다.

 

 

 주인이 오랫동안 비워둔 농막은 따뜻한 모양이 아니다.

차광막에 올라탄 호박의 잎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 있지만 그 모양이 풍성함과 싱싱함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한낮의 더위를 막아주는 역할을 다한 충직함으로 텃밭주인은 고마운 시선을 자꾸자꾸 보낸다.

 

 

'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텃밭농사를 다시 시작하며  (0) 2010.05.09
김장배추를 거두며  (0) 2009.11.15
김장배추 옮겨심기  (0) 2009.09.15
김장 밭 만들기   (0) 2009.09.02
풀 속의 보물  (0) 2009.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