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에 에어컨을 달다

2018. 6. 17. 22:32농막

 텃밭생활을 오래전부터 해오면서도 이상하게도 무더운 더위를 극기훈련 삼아 선풍기 하나로 지내왔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텃밭생활을 하려고 마음먹고 텃밭의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여 나름대로 거의 완벽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는데, 아내의 입장은 그게 아니올시다.”이다.

70에 접어든 나이에 뭐 도통하느라 무더위에 염병하면서 도 닦을 일 있냐고 핀잔이 대단했다.

 말인즉슨 예전처럼 체력 좋고 젊은 나이라면 그것도 좋겠다마는 집 나가서 고생하는 것도 모자라 염천지하에 하루에 옷을 세 네 번씩 갈아입으며 호미질 하는 거 못 봐주겠다는 것이다.


 급기야 귀여운 손자 녀석과 함께 텃밭에 알량한 감자알 캐러가기 전에 에어컨을 설치하라는 압박을 해대니 어쩔 수 없이 7평형 벽걸이 에어컨을 농막에 설치하였다.

농막이 집에서 사용하던 고물을 잔뜩 집합한 장소인지라 에어컨도 고물을 달까했지만 열효율 따지고, 소음 따지고, 낫살 품격 따지고, 에어컨 하나라도 고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고 나서는 열심히 알맞은 상품과 가격을 면밀히 조사하고는 난방겸용이 되는 놈으로 찾아내서 설치를 하였다.

 당초에는 좀 소음이 있더라도 창문형으로 할까했지만 아내는 내가 또 목수일과 설치기사 일을 하다가 널브러지기라도 할까봐 결사반대를 해대니 황혼에 사소한 걸로 쓸데없이 부부싸움할 일이 아니라 아내의 요구대로 하였다.

내가 물건 사다가 설치를 하지 않고 돈 좀 들여 남 시키며 설치를 하니 편하긴 참 편하다!

 육신이 편해지는 걸 항시 경계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아내의 요구가 좀 못마땅하게 여겨지기도 하였지만, 이 나이에 집에서 따뜻한 밥 얻어먹는 호사를 제대로 누리려면 모름지기 아내의 말씀에 따를 수밖에 없을지니 어쩔 수 없다.


 낡은 농막이지만 쾌적한 농막 안에서 쉬엄쉬엄 땀을 식히면서 허리 펴가며 뒹굴고 있다 보니 내 농막이 바로 천국 같은 팬션급 농막이 아닌가!

몸 피곤하게 일하면서 텃밭을 하는 데서 탈피하여 즐기면서 건강 다지는 농사일로 텃밭생활을 하겠다고 했지만, 생활하기 편하게 에어컨까지 달고 보니 앞으로가 좀 걱정이 된다.

 가는 김에 TV까지 갔다가 놓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며 생각해보니 나의 텃밭생활이 나의 자연친화적 농사에 역행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그러나 텃밭생활을 도 닦듯이 하겠다는 마음을 유지하면서 TV는 절대로 안 된다고 속으로 다짐을 하고나니 앞으로의 내 텃밭생활의 기준점이 설정된 기분이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모든 것을 단순하게 줄여나가는 생활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야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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