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 사는 법

2022. 2. 6. 22:17마음, 그리고 생각

 아내와 나는 남 보기에 살갑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질 않는다.

뭐 그렇다 해도 서로 인상 쓰며 원수로 알고 지내는 건 아니고, 아내는 내게 애교를 부릴 줄을 모르고 나는 아내에게 남사스럽게 애정표현을 해본 적이 없지만 그저 무난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만난 지 9년이 지나 결혼을 하였으니 43년 결혼생활을 합하면 52년간을 지내온 터라 눈빛 한 번 보면 척하면 삼천리이며 서로 말로 의사를 표현하는 바 없이 알아차리니 군소리가 필요 없는 것이다.

부부싸움은 거의 하지를 않는데, 그러나 일단 싸우면 내가 이겨야하는 나의 못된 성격으로 아내는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지내왔다.

그걸 내가 잘 알면서도 난 아내를 어루만지는 포용력을 보이지 못하고 아내가 항복 선언을 하고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대차게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내는 고집이 엄청 고집이 여자이지만, 나는 그보다 더 센 황소고집이라 서로 마찰이 있을 경우 대부분 아내가 알아서 미리 져주는 양보를 한다.

내가 미리 아내의 마음을 알아서 배려해야 옳은 것이란 걸 알지만 알면서도 이행을 못하는 소인배의 성격이라 어쩔 수 없나보다.

천성이 그런 걸 어쩌랴!

그러니 아내는 오십년을 넘도록 마음고생을 했으리라!

 

 내가 종심에 들어서고서야 철이 조금씩 들어가나 보다.

지금은 아내에 대한 감정이나 태도가 여러 가지로 아내를 배려하는 생각으로 인하여 달라져서인지 아내가 생전 하지 않던 내 자랑을 자매들 간에 은근히 늘어놓는 걸 알아채고는 이따금 피식거리며 웃기도 한다.

사실 어찌 보면 애처가나 경처가들 수준에 비추어보면 나의 아내에 대한 태도변화는 감히 화재의 대상에 끼지도 못할 정도이지만, 나의 달라짐이 내가 집에서 지내는 동안에 아주 맘 편하게 따뜻한 밥을 대접받는 걸 자연스럽게 만들었다고 볼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나는 늦게나마 평화로운 가정생활에 필요한 지혜와 행동을 나름대로 조금씩 터득해가는 수준이라고도 하겠다.

사실 요즘 나는 아내의 비위를 곧잘 맞추며 지낸다.

돈 좀 버는 월급쟁이생활에서 은퇴를 한지 6년이 지나고 소득이 없는 생활로 뻣뻣하던 고개가 숙여져서 그런지, 아니면 칠십 넘어 몇 해 지나며 인생살이의 요령이 남들처럼 제대로 생겨서 그런지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아내가 달라진 나를 눈을 곱게 뜨며 바라보는 모습을 자주 잡아낸다.

물론 지혜가 넘치는 아내가 손바닥이고 내가 그 안에서 노는 어린이쯤 되는 것이리라는 것도 알지만 나로서는 앞으로의 인생을 좀 더 나은 가정평화와 인간적인 삶을 위한 것으로 치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제야 정상적으로 제대로 된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들어선 것이 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부간에 뭐 우열과 득실을 따지며 생활을 하거나 사랑이 어떤 것이라고 남에게 자랑할 건더기가 있을까?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라고 듣다가 요즘엔 사랑은 그저 주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기특한 입장에서 더욱 나아갈 때에는 부부간의 사랑은 아예 이렇고 저렇다고 따질 것도 없는 것이리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부부의 연이 있는 자체가 사랑이 있는 것이며, 부부의 연이 끊어지면 사랑이 없는 것이니 평화로운 부부생활이 이어지는 한 남에게 자랑하는 사랑타령은 하지 말 일이다.

그러니 다른 부부가 살아가는 모양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사랑을 대입시켜 사랑의 농도를 가늠할 일도 아닐 것이다.

 

 참된 진리를 구하는 보살이 내가 나가 아닌 것을 모르고 나를 찾을 때에는 이미 보살이 아니라는 붓다의 아리송한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고개를 수없이 갸우뚱하며 금강경을 공부하는 요즘 티 없이 맑은 마음이 된 상태로 만들어가길 애써 노력하면서 나의 인생을 뒤돌아본다.

그리고 앞으로 살날을 어찌 살아갈까를 궁리해본다.

여태까지 바라보지 않았던 보살의 길을 다 늙어서 흉내 내며 걸어가 본들 이룰 수가 있을까?

아니지!

부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여도 나름 부처의 마음을 갖고 부처를 닮아가는 노년을 보내는 인생살이는 가능한 일일 것이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에 머물며 며칠 동안 쉽고도 무지하게 어려운 붓다의 말씀을 되뇐다.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남은 인생살이에서 욕심 버리고 깨끗하면 못 이룰 바 없을 것이다.

잘하면 보살의 길로 들어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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