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0. 21:50ㆍ농사
게으름으로 씨감자 파종이 늦어졌다.
이웃 프로가 남긴 씨감자 40여개를 얻어 4월12일에야 마른땅에 떨구었다.
고추나 고구마 등 모종을 정식할 때 말고는 씨앗을 떨굴 때에는 텃밭에 물주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잡초까지 목말라 널브러질 정도가 될 때에야 사철 마르지 않는 텃밭명물인 연못의 물을 배수펌프를 이용하여 공급한다.
작물은 농군에게 선택된 식물이고, 잡초는 버림을 받은 식물이다.
작물이 잡초보다 특별하게 약한 것이 아니며, 잡초라 해서 지독하게 끈질긴 생명력을 보유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해하면 잡초가 사는 환경이라면 선택되어 자라는 작물이 살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봐야한다.
씨감자 파종한지 3주가 지나도 보이지 않던 감자 싹이 이 번 비를 흠뻑 맞고서야 큼직한 잎을 잽싸게 올려놨다.
주변의 잡초와 덤불에 가려 구분도 안 되던 감자 싹이 삼일 째 내리는 단비의 축복을 받으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다.
감자 싹 주변에는 조그만 잡초들이 엄청나게 붙어있다.
텃밭에 널려있는 큰개불알꽃, 냉이, 꽃다지 등 눈에 익숙한 모양도 아니어서 자세히 살펴봐도 모르는 놈들이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낫호미로 긁어낼까하다가 조금 크게 자란 놈을 뽑아서 비벼 냄새를 맡아보니 영락없는 들깨향이다.
지난해에 옆의 들깨밭에서 들깨를 거두는 과정에서 텃밭주인이 뭔 짓을 했는지 감자밭에 들깨를 왕창 뿌려댄 모양이다.
이쯤 되면 감자밭의 들깨무리들은 잡초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들깨잡초를 일찌감치 얻게 되는 들깨모종으로 활용한다면 어찌 잡초대접을 할쏘냐?
좀 더 키워 감자에 해 되지 않도록 속아내어 모종으로 키워 고추밭 주변과 텃밭 귀퉁이 여기저기에 정식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되면 졸지에 잡초가 이른 들깨잎을 먹거리로 텃밭주인에게 주는 작물로 신분상승하는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씨감자보다 하루 뒤에 파종한 땅콩은 아직도 소식이 없다.
단비를 흡족하게 맞고도 한 달을 넘겨야만 성질 급한 놈이나 탈바가지를 밀어낼 듯싶다.
땅콩 녀석들은 힘이 장사여서 큼직한 껍데기를 머리에 쓴 채로 마른 흙과 잔돌을 밀치며 솟구치며 세상에 나오는 광경을 연출한다.
깊게 파종된 토란이 달포 만에 새싹 내밀듯이 느지막하지만 어김없이 어두운 땅속에서 햇빛을 보러 나올 것이다.
사과나무 열 그루를 심었어도 한심스럽게 사과 하나 제대로 따먹지 못하지만 텃밭 출입구에 또 세 그루를 더 심었었다.
거름과 병충해관리를 내팽겨 친 텃밭주인이 미워서 열매를 안 주기에, 미니사과는 어떨까 해서 더 심어본 것이다.
요놈들도 열매를 안주면 꽃으로나 즐기려고 한다.
그런데 꽃 피는 꼴로 봐선 오골계 알만한 사과라도 꽤나 따먹을 것 같은 기분이다.
올해 부쩍 벌 나비들 보기가 힘들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어서, 수분된 게 좀 있을 터이니 한 바가지는 딸 수 있겠지!
바로 농막 옆이라 목초액 자주 뿌려주는 건 일이 아니니 기대해볼만하다.
(`2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