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31. 19:40ㆍ닭장
텃밭에 열네 평 되는 닭장 지을 터를 지난 12월 초에 다듬었다.
요즘은 닭장의 모양과 부속물(훼, 자동사료공급기, 자동물공급기, 닭 둥지, 목욕장, 닭장 속의 작은 연못 등)을 구상하느라고 머리가 바쁘다.
닭은 기본적으로 쾌적한 자연의 상태에서 길러져야한다는 생각이므로 닭장은 넓고 높게 지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텃밭을 비울 때가 많으니 주인이 없어도 닭들이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이 없도록 부속물을 제대로 만들고 기능이 유지되도록 만들 것이다.
텃밭에 닭을 길러 닭 잡아먹겠다는 건 아니고, 건강하게 사는 닭의 모양을 보며 즐기고 달걀이나 좀 얻으려는 생각이다.
토종닭(청리닭이나 연산오계를 생각 중) 열댓 마리이면 족할 것이다.
토종닭을 자연 상태에 가깝게 기르면, 게다가 이따금 닭장에서 나가 돌아다니게 한다면 텃밭과 뒷산에서 무진장 얻어먹는 벌레, 푸성귀, 산야초의 열매로 건강하게 자랄 것임에 틀림없다.
그 녀석들이 이삼 일에 하나씩 낳는 달걀은 진짜 좋은 달걀일 것이다.
닭이 번식을 많이 하여 어쩔 수 없이 마릿수를 제한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굳이 기르는 닭을 잡을 일이 없을 것이다.
닭을 기르는 것 자체도 재미있을 것이다.
닭이 수명을 다 할 때까지 길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텃밭에서 닭을 기르려고 닭장을 짓고 있는 것을 눈치 챈 이는 벌써 촌 토종닭 먹겠다고 침을 흘린다.
그러나 텃밭에서 기르는 토종닭은 정말로 특별한 경우 이외엔 절대로 식용대상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요즘 닭은 참으로 불행하게 산다.
병아리 신세를 면하고 나면 주둥이를 잡혀 부리를 잘리고, 밤낮을 구별 못하게 불을 켜놓아 억지로 먹게 한다.
먹이는 사료는 항생제, 방부제, 산란촉진제, 성장촉진제 등 인간이 강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에 의하여 조제된 것이다.
흙도 만질 수 없는 촘촘하고 답답한 닭장에서, 탁 트여진 맑은 하늘을 구경조차 해 보지 못하고 좁은 닭장에서 헐떡거리면서 사는 닭들은 제 명에 살지도 못한 채 강제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길러진다.
고기로 팔릴 닭은 알을 깨고 나온 지 45일 내외면 생을 마감하고, 알을 낳는 닭은 기껏해야 1~2년을 살면서 품지도 못하는 알을 낳다가 산란율이 떨어지면 퇴출되어 헐값에 팔려나간다.
닭의 수명이 25년이 넘는 데, 인간들이 닭을 너무 일찍 죽여 버리고 있는 것이다.
양계장의 닭들은 아마 알을 품을 줄도 모를 것이다.
젖소나 애완용강아지가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출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듯이 닭도 얼마 가지 않아 번식하는 본능을 잃어버리지 않을까한다.
낳은 알을 품기는커녕 만지지도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가 빼앗겨버리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닭 공장에서 길러지는 닭은 닭답지 않게 되니 집에서 닭을 기르지 않는다면 닭다운 닭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직접 닭을 길러보아야 닭다운 닭을 제대로 볼 것 같다
제대로 닭다운 닭을 기르고, 자연 상태의 살아있는 달걀을 맛보고자 올 봄엔 닭을 텃밭에서 기르려한다.
텃밭의 뒷산이 깊어 닭을 해치는 삵이나 족제비 같은 산짐승들이 많아 허술하게 닭장을 지면 헛일이다.
쥐들이 닭장에 들어가서 판치면 사료를 도둑맞으니 제대로 방비를 해야 한다.
며칠씩 텃밭이 비게 될 것이니 먹이와 물을 자동 공급하는 방안도 찾아야한다.
혹독한 겨울철의 추위와 한여름에 맹위를 떨치는 더위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한다. 그렇다고 그러한 대책은 인위적인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구상하고 있는 닭장과 닭을 위한 시설 등을 기르려는 마릿수와 생산되어질 수 있는 달걀에 대비해보면 분명 아주 비경제적인 닭 기르기이다.
텃밭농사를 오년 넘게 해오듯이 닭 기르기를 할 것이니 올해부턴 취미농군의 지갑이 더욱 얇아질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닭 기르기 초반부터 실패를 하여 몇 번이고 닭 모이통을 차버릴지도 모른다.
시행착오를 몇 번이고 계속하여 범한다면 텃밭에서 죽어간 병아리들의 비석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텃밭에서 호미질 다섯 해를 하다보니 이상하게 눈이 다른 데로 돌아간다.
엉터리농사를 하면서 고추와 고구마에 가던 눈길이 날라 다니는 닭에게도 옮겨갈 준비를 하는 엉터리농군을 보는 아내의 눈이 그리 곱지 않다.
그래도 올가을에 신선하게 살아있는 귀한 달걀을 손에 몇 개 쥐어주면 분명 행복한 웃음을 던질 것이다.
달걀하나의 생산원가가 얼마인지 계산이나 해봤냐는 아내의 질책을 날려버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요즘은 닭장을 설계하느라 머리 속이 바쁘다.
닭 공부를 하느라 눈이 아플 지경이다.
가을걷이하고 마늘 심은 후로 텃밭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머리 속에는 황량하게 눈 쌓인 텃밭이 아닌 또 다른 텃밭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닭 기르기도 분명 텃밭농사의 한 부분일 것이다.
이래저래 취미농군의 텃밭은 계속 바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