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9. 17:32ㆍ삶의 잡동사니
오늘은 새벽부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입동 지나 날이 추워지면서 겨울바람이 불어대니 아파트에 노란 빛을 선사하던 은행나무가 추위에 떨며 노란 잎을 떨구고 있다.
주차장의 멋없는 아스팔트가 노란 낙엽으로 늦가을의 운치를 풍기고 있는 걸 보다가 텃밭에서 가지고 온 들깨자루가 생각났다.
올해 들깨농사는 모종관리단계부터 게으름 피는 바람에 예상보다 흉작이다.
작년에 진한 향이 풍기는 들기름을 8병이나 얻고도 금년한해동안 먹을 들깨가루를 충분히 얻었었다.
올해는 욕심을 내어 들깨모종을 1,000개 이상 심겠다고 야심차게 들깨모종밭을 만든 것까지는 좋았었다.
그러나 제때에 모종을 정식하지 못하고 웃자란 들깨모종을 뒤늦게 정식하는 바람에 500여 개의 모종을 심었고, 그나마 관리부실로 1/3이나 죽게 만들고 들깨보다 큰 잡초 또한 다스리지 못하였다.
그러하니 텃밭의 들깨들은 주인의 게으름으로 올여름을 고생께나 하며 보내면서 발버둥 치면서 열매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기상이변에 따른 일찍 불어 닥친 한파로 이른 서리와 함께 얼음이 어는 강추위가 며칠 계속되는 바람에 힘들게 자란 들깨들이 때 이르게 얼며 마르며 갈변하면서 들깻잎을 떨구고는 어쩔 줄 모르면서 텃밭주인을 애타게 찾았었다.
뒤늦게 정신 차린 텃밭주인은 전지가위로 들깨알 놀라 떨어지지 않도록 살살 잘라내어 비닐하우스 안에 쌓아두었었다.
아무리 자연재배를 한다고는 하지만, 작물들을 풀밭 속에 방치하며 강하게 재배한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열리면 따고 얻지 못하면 사서 먹는다는 제 멋대로의 농사를 하는 텃밭주인이지만 억센 풀들 속에 개판으로 심어놓고 “자알 살 거라!” 한마디 던진, 거름도 제대로 주지 않은 텃밭주인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아파트 베란다에 며칠 방치했던 들깨자루를 풀고 거름망으로 흙가루와 빈 껍질 등을 고르고 알곡을 챙기고 나니 겨우 6.6Kg이다.
그냥 놔두어 벌레 생겨 귀한 들기름 짜 먹을까봐 서둘러 아내와 기름집을 찾았다.
한 시간 후에 챙겨온 들기름은 소주병 크기의 기름병 7개와 작은 병 하나!
들깨가루를 만들지 않고도 작년보다 기름병 두 개가 부족한 결과물이다.
아내가 “아들 두 녀석에게 한 병씩 주고 아껴먹어야 겨우 내년까지 가겠네.”하며 푸념을 하고는 나보고 점심을 하란다.
아내가 요즘 들어 정말로 지~~인~~짜 반찬을 만들거나 밥상을 차리기가 싫다고 하는 때가 많다.
그럴 때에는 내가 냉장고를 뒤져 찬거리를 꺼내놓고 비비든 볶든 튀기든 지지든 뭔가를 만들어 낸다.
평생을 남편위해 먹거리를 만들어왔는데, 아무리 내가 솜씨가 모자란다하여도 아내를 위한 음식 한 끼를 못 만들 수 있겠냐!
찬장을 찾아보니 라면보다 훨씬 비싼 고급짜장면 봉지 두 개가 있다.
대파, 당근, 되는대로 청경채, 파프리카 등을 잘게 썰어서 팬에다 올리브오일을 조금 두르고 살짝 튀기면서 냄비에는 면과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넣고 같이 충분히 끓였다.
익은 돼지고기를 건져내어 팬에 넣고 짜장면봉지에 들은 액상짜장도 넣어 살짝 한 번 더 볶아낸 후에 그릇에 건져낸 면 위에 적당히 얹으면 보기 좋고 맛 좋은 짜장면 완성이다!
웬만한 중화식당 짜장면보다 고급이고 맛이 좋다!
짜장면 위에 고춧가루 조금 뿌려주면 입맛을 확 땅기게 만든다!
아내가 오늘 점심은 아~~주 행복한 한 끼였다는 말 한마디로 앞으로 일주일동안 따슨밥 먹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겠구나하며 미소를 지어본다.
이게 요즘 나의 소소한 행복이려니!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보니 만추로 가는 고운 색들이 손 흔들며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