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나들이

2021. 11. 20. 19:16삶의 잡동사니

 옛 직장친구들 둘과 셋이서 점심만남을 하는 김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전시작품을 둘러보고 삼청공원, 가회동, 계동을 돌아다니며 눈요기와 다리운동을 맘에 들게 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자주 둘러보는 미술관이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전시품의 다양성이 나의 사고, 사상, 지식, 취향, 예술 감각 등의 수준을 벗어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기에 호불호가 극명하여 어느 때는 넋을 빼고 감상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한심하거나 비천한 느낌을 거짓 없이 토해내기도 한다.

내 수준과 취향을 맞추어서 만 관람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다름이 있는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접해보는 장점이 크기에 아무 때나 기회가 닿는 대로 편하게 드나드는 곳이다.

그 주변에 경복궁, 덕수궁, 인사동, 북촌마을, 삼청공원 등 둘러 볼거리가 많아 더욱 좋은 곳이다.

 삼청공원 가는 길에 오래전부터 즐겨 다니던 수제비집과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에 들러 점심을 하고 차를 마셨다.

수제비집의 옛날 맛을 많이 벗어남은 줄서서 기다리기, 식당안의 협소한 식탁과 부산함, 내 입맛의 변화 등이 이유일까?

그래도 녹두전에 동동주 한 잔은 아직도 친구들과 정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으나, 밀려들어 짜증나는 손님들과 식당 안의 부산함으로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은 예전에 십여 년 넘게 자주 다니던 찻집이다.

금융연수원에 강의하러 다니던 기간 동안 강의가 있는 날마다 들어가서 차를 마셨으니 아마도 내 인생에서 제일 많이 찾은 찻집이 아닐까한다.

예전의 아주머니가 아직도 직접 가게를 운영한다 해서 찾았으나 저녁때에 출근한다 하여 만나지를 못하였다.

차를 가게에서 직접 다려 만들고 맛 또한 변함없이 진하고 좋았다.

예전에 낮 동안 내내 자리를 지키던 아주머니는 심성이 곱고 아름다운 분이셨다.

첫 번째로 잘하는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미소를 지으며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왜 굳이 두 번째로 잘한다고 하느냐면 그렇게 하면 첫 번째로 잘하는 거와 다를 바 없지 않으냐고 하였다.

그 고운 아주머니는 지금 82세이다.

40여년을 팥죽과 차를 팔아오면서 12억 원을 기부를 한 선행으로 코오롱우정선행상을 받으셨다!

 

 차를 마시고 난 뒤에 찾은 삼청공원의 단풍은 아직도 여전히 곱다.

북한산의 남쪽자락이라 느지막한 때에도 색이 고와 많은 이들이 찾는다.

도심에서 가까워 접근이 쉬운 곳에 명산 북한산에 이어지는 멋진 공원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럼에도 많은 서울시민들이 그러한 축복을 모르고 찾지는 않는다는 건 참으로 이상하다.

단풍을 즐기다보니 단풍 속에 묻힌 친구들을 잠시 생각에 잠겨 바라보게 된다.

윗머리가 빛나는 모습이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는구나!

 북촌마을은 북한산이 북쪽의 겨울바람을 막아주고, 남향이고, 남산과 한강을 굽어보는 지세를 갖기에 풍수상 아주 좋은 곳으로 인식되어왔을 터다.

그래서 아직도 조선시대 왕족들과 고급관리와 양반들이 살던 기와집의 풍취를 느낄 수 있는 기와집들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북촌마을 가는 김에 옛날에 증조부와 조부가 사시 던 장소이며 내 본적지인 계동13번지를 찾았다.

전에 찾았을 때와 달리 빌라의 일부를 개조하여 계동13번지라는 카페가 들어섰다.

내 본적지가 커피냄새 풍기는 카페가 되었다니.....

다음엔 필히 커피 맛 좀 봐야겠다.

계동 길은 예전과 변함없이 아담하고 정겨운 분위기이었으나 관광객이 줄어서인지 한산한 느낌마저 든다.

친구들과 헤어져 운현궁을 지나면서 길바닥에 널린 플라다나스 나뭇잎을 사각사각 밟으면서 낙엽 태우는 냄새를 그리며 걸으니 이내 탑골공원에 다다랐다.

공원 안을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하릴없이 앉아서 시간 때우는 모습들을 보기가 싫어 그냥 지나치며 종각역으로 향했다.

예전의 종로거리가 아닌 한산한 종로거리를 지나니 바스러지며 뒹구는 낙엽처럼 쓸쓸하고 허전한 거리의 풍경이 안됐다는 느낌이다.

내가 종로거리를 기억하는 고등학생시절인 1965년 이후로 종각역 구간 길거리의 상점이 이십 여 군데나 빈 것은 요즘이 처음 아닐까?

하여튼 관철동, 명동, 무교동, 공평동 등 종각주변에서 이십여 년을 월급쟁이로 들락거린 동안 종로의 쓸쓸함과 스산함을 요즘처럼 강하게 느끼기는 처음이다.

코로나사태의 심각성이 그야말로 그 만큼 심각하다.

 전철을 타고 집을 향하다보니 발이 좀 불편함을 느꼈다.

오늘 같은 날은 구두대신 운동화를 신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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