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밭을 덮친 폭우

2023. 9. 19. 19:33농사

텃밭에 온 후로 일주일 내내 햇빛을 보지 못 하는 궂은 날의 연속이다.
비 덕분에 밭일을 하지 않아 몸은 편하지만 많은시간을 보낼 때도 많다.
김장용 배추와 무는 예상외로 잘 자라주고있어 딱히 더 돌봐줄 필요도 없으니 이따금 목초액과 막소주 소량 섞어준 물을 방충액으로 뿌려주어 벌레들을 쫒아내면 그만이다.
고구마 상태가 별로지만, 비가 그칠 때를 기다렸다가 극성스럽게 씨앗을 만들고 있는 바랭이를 뽑아내는 일 정도라 땀 뺄일도 없다.

그런데 엊그제 늦은 밤에 요란스런 빗소리에 깨고서는 밭고랑을 살피니 고랑에 찬 빗물이 가득하다.
지난 장마때보다 더 세찬 소나기가 내린 것이다.
어제는 농막 앞밭의 들깨가지가 부러지거나 쳐진 것들이 좀 있기에 정리를 해주고 묶어주고는 이제 비가 좀 그쳤으니 내일은 웃자라고 씨앗맺는 잡초들을 토벌해야겠다고 마음 먹고는  오랜만에 보이는 용두산쪽 해넘이를 보면서 일찌감치 서편에 뜬 초승달을 한동안 즐겨보았다.
마침 무더위에서 탈출하는 추석이 열흘정도 남은 때라 간간히 불어오는 송학산의 서늘한 바람이 곁들이니 기분 또한 상쾌함을 더하였다.


오늘 새벽에 동쪽의 들깨밭에 나가 이 녀석들은 참 싱싱하다며 어깨를 으쓱하면서 둘러보니 이게 웬일이냐!
늘어지고 잘라진 들깨줄기가 부지기수이다!
뿌리를 야물딱지게 흙속에 내리고 있어서인지 넘어진 것은 별로 없고 부러지고 늘어지고 손봐주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아침밥 간단히 하고는 바로 노끈을 적당히 잘라 허리춤에 걸고 부상당한 들깨들을 잘라내고 늘어진 들깨줄기를 묶어가며 두 시간을 보냈다.
들깨잎에 묻어있는 빗물에 온몸에 흐르는 땀에 입은 옷은 물범벅이 되고말았다.
치료를 받은 들깨들이 150여 놈들이니 올 들깨농사도 작년과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올해도 들기름과 들깨가루 완전자급을 이루지는 못할 것 같다.

부러진 들깨줄기에 붙어있는 들깨꽃들을 거두어서 튀김가루를 살짝 입혀 튀기면 들깨향이 입안 가득히 풍기는 맛있는 주전부리가 된다.
들깨꽃들이 떨어지는 즈음에는 들깨알들이 자리를 잡아가며 크게되니 일부러라도 들깨꽃대를 잘라 튀김을 해먹는 호사를 누리는데, 올해는 폭우덕분에 영글어가는 들깨알꽃튀김을 적당한 때에 즐기게 되었다.
한 바가지 분량은 얻을 것이니 미리 튀김옷 입혀 말려서 식구들 간식꺼리로 가져가야겠다.

극성스런 폭우도 이제 기운이 빠져 물러갈 것이다.
구름이 가시며 청명한 기운이 도는 맑고 파란하늘이 나타날 것이다.
추석으로 가는 하루하루가 상큼하고 청명하고 맑고 시원하고 풍성해져 가는 날이 될 것이다.
꿉꿉하고 더운날도 중추명월로 가는 디딤돌이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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