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농사 (텃밭농사 정리)

2024. 3. 8. 13:03농사

4월말에 고추모종을 심고 나서 동네사람들한테 여러 번 훈수를 들어야 했다.

제천은 강원도 기후라 5월 중순에도 서리가 내리는 데 고추는 일러도 5월 10일 이 후에 심는 것이라고.

5월 6일인가 정말 서리가 내렸지만 다행스럽게도 뿌리가 활착이 되고나서 인지 피해가 없었다.

그 동안 고추이랑에 난 잡초를 두 번 뽑아내고, 인분주를 세 차례 주었다.

6월 말부터 먹을 만하게 열려 농막에서의 밥도둑을 고추가 전담하여 주었다.

5월 중순에 심은 열무는 벌레들의 공격을 그런대로 잘 견디어 주었다.

물론 목초액을 두 번 뿌려주어 벌레들을 쫓아주기도 했지만 온 몸이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좀 억세고 싱싱한 냄새가 마음에 꼭 든다.

 

이 번 밭에서의 5일간은 엄청난 집중호우로 고생을 좀 했다.

비 오는 날이 공치는 날이라는 노가다 노래의 가사가 무엇이드라?

비가 오면 빈대떡 부쳐 먹지 하면서 늘어지게 놀아버리자고 친구와 함께 히히 거렸는데 이게 웬일!

여기저기 도랑을 손 보고, 길이 패이지 않도록 도랑을 내고, 일주일 전에 심은 수수와 총각무 밭이 무사한지 살펴보고, 연못의 둑이 뚫리지 않나 하는 걱정에 한 시간에 두어 차례나 왔다 갔다 하고, 흙과 비에 젖은 옷 세탁하고 말리는 등 육신이 고달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요 며칠간은 농민에게 뼈아픈 나날이었다.

애써 가꾼 농작물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는 비, 우박 피해를 당한 농민의 슬픔을 생각지 못하고 조그만 육신의 고달픔을 고생이라고 치부한 내가 참으로 한심하다.

 

농사로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고생을 한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니고, 천기가 뒤를 받쳐 주어야하며, 나중에 가서는 가격 또한 농민의 편이 되어야 하니 참으로 농사가 어려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텃밭 수준의 농사를 비경제적으로 즐기는 나의 생각하는 수준이 부끄러웠다.

무 농약, 무 제초제, 무 화학비료로 가꾼 나의 노력의 과실이 나와 나의 이웃이 아닌 소비자에게 건너가 내가 용돈 이상의 돈을 벌어, 생활을 할 정도의 농사를 하여야 진정 농업인의 대열에 겨우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2005.7.15.)

 

빨간 고추를 두 번째로 거두었다.

첫 번째보다는 좀 더 많다. 세 관이 채 안 된다. 그래도 마음은 뿌듯하다.

고추밭은 풀이 많아 지금도 이따금씩 낫이나 예초기로 베어내지만 일주일 사이에 훌쩍 커버린다.

키 크라는 고추는 자라지 않고 풀만 신나게 자랐고 더위에 땀을 쏟아내지만, 담배나방으로 구멍 난 고추는 그리 많지 않고 다른 병이 없이 싱싱하여 마음이 편하다.

작년보다 수확량이 많고 고추 말리는 요령도 늘어 잘 하면 올 김장배추는 색깔 좋은 완전 유기농 고춧가루로 범벅을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한낮의 땡볕더위에 할 일도 없고 밖에서 일을 할 수도 없는지라 농막 안에서 선풍기 틀어놓고 물수건으로 고추를 하나하나 닦아내었다.

고추 다듬어보니 아내의 집안 살림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내의 주부로서의 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결론은 남편의 소득과 동일하다고 본다.

따라서 대통령과 영부인은 같은 소득이고, 사장과 사장부인도 같은 소득이며, 비렁뱅이 남편과 그의 부인도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부부는 같이 있어서 그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니 각각의 가치도 같이 보아야할 것이다.

 

남자가 고추바구니 들고 아파트 공터를 찾아다니며 고추를 말릴 수도 없어 생각해 낸 것이 고추 숨을 죽인 후에 실에 꿰어 베란다 난간에 걸치는 수법이다.

굵은 바늘과 질긴 실로 고추의 꼭지를 알맞게 꿰어 한 팔정도로 길게 만들어 난간에 걸친다.

비가와도 밖으로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고 동네 아줌마나 할머니들의 요상한 눈길을 피할 수 있어서 좋다.

더구나 먼지도 안 묻고 깔끔하게 잘 마른다.

텃밭생활 삼년 만에 살림에도 이력이 붙었다.

삼년 더 하다가는 마누라 대신 집안 살림을 전적으로 하게 되는 건 아닐까?

(2005.8.27)

 

초보농군은 여러 가지로 모자라고 아는 게 별로 없어 항상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러다 보면 좌절하기도 하고, 분기탱천하여 별스런 방법을 동원하여 실행하여 보기도 하나 결국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현명한 방법을 공부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가 싶다.

나의 경우 고추농사만 하여도 참 바보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추 이랑을 좀 여유 있게 만들었으면 때때로 거름을 주거나, 잡초를 베어내거나, 고추를 딸 때에 한결 편하게 할 수 있을 터인데 올 여름 내내 옹색한 작업을 하였다.

욕심을 내어 고추 묘를 많이 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경험도 별로 없이 꼴에 유기농 한답시고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무농약,무화학비료,무제초제,무비닐멀칭하여 땅심으로 고추를 재배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에 봉착하여 애를 먹었다.

올해는 목초액 두 번만 뿌리고 일체의 살균 살충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런대도 고추가 잘 자라서 병충해를 기특하게 이겨내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빨간 고추를 수확하여 말리는 과정에서 큰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벌레 먹거나 병든 고추를 가려서 땄는데도 거의 20여% 정도가 고추 속에 곰팡이가 피거나, 병반이 나타난 속을 따보면 희거나 푸른 곰팡이류가 끼어있어 아주 실망스런 결과를 가져왔다.

고추 숨죽이기를 하고 건조장에서 말려야 하는데, 그러한 시설이 없어 빨간 고추 서너 관에 온 집안이 난리이다.

있는 대로 바구니를 동원하여 아파트 베란다에서 햇빛 쏘이고 저녁에는 거실로 모셔와 선풍기 바람을 밤새도록 불어준다.

온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 깨끗하고 맛깔스런 고추를 만들어 가는 와중에 불량품이 자꾸 생기니 화가 좀 난다.

 

내년에는 고추건조장을 밭에다 만들어야겠다.

힘든 고추농사이지만 내년 김장용 고춧가루는 내가 만든 귀족 고춧가루로 자급하여 볼 참이다.

한 편 생각해보면 좀 한심하다.

내가 거둔 고추를 판다고 할 때 시중의 고추보다 두 세배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까?

어림없다.

규격미달로 상품가치 또한 없다고 천대받지나 않으면 좋을 것이다.

(2005.9.8.)

 

고추농사 3년차에 여러 가지로 고추말리는 방법을 시도하여보았다.

마음 흡족하게 잘 말라서 기가 막힌 맛을 보기도 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빨간 고추가 반 이상 못쓰게 되어 버리기도 하였다.

고추를 말리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고추를 사서 말리는 사람이나 고추를 재배하여 말리는 사람들만큼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며 제각기 자기들의 방법이 최고라고 주장한다.

 

처음부터 오로지 햇볕에 말리는 방법,

고추의 숨을 죽이고 나서 햇볕에 말리는 방법,

바람(해풍, 열풍, 자연풍 등)을 이용하는 방법,

처음부터 끝까지 그늘에서 말리는 방법,

그늘에서 말린 뒤에 햇볕에서 말리는 방법,

고추를 가위로 배를 갈라 말리는 방법,

냉동이나 저온상태에서 건조시키는 방법 등

그 방법의 개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으며, 그러한 방법들은 지역, 고추의 종류(고추의 과육의 두께에 따라), 먹는 사람들의 취향(매운 맛을 없애고 단맛을 살리는 방법 등), 날씨의 변화(빨간 고추를 따거나 샀는데 비가 오거나 흐리고 습기가 차는 경우 등), 마른 고추의 출하시기선택, 고추건조와 관련된 인건비를 고려한 경제성 등에 따라서 선택되어진다.

 

쾌청하고 좋은 날 오로지 햇볕에서 말려야 최고의 마른고추가 만들어 진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날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외의 방법을 동원하느라고 부산을 떨게 된다. 그러고 나서도 자기가 생산해낸 고추가 태양초임을 강조한다.

마른고추의 꼭지가 무슨 색이 좋은 것이라고도 많이들 이야기한다.

태양초가 최고라는 사람들은 노란색이어야 진짜 태양초라고 하며, 바람초가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은 푸르른 색이어야 최고품이라고 주장한다.

진짜 태양초의 꼭지가 노란색이라고 굳게 믿는 주부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열풍으로 건조하는 고추의 꼭지를 비법을 동원하여 노랗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방법으로 고추를 말리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인가?

절대적으로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위에 언급한바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환경과 맛을 따지는 사람의 취향과 어떠한 필요에 따라서 방법이 선택되어지기 때문이다.

고추말리는 방법과 과정을 따지기 보다는 어떤 상태의 마른고추를 고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마른고추가 좋은 것인지를 살펴보자.

* 열풍기로 말려서 만든 고추는 맛과 색도에서 열등하다.

고추 꼭지의 색깔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 빨간색이 나더라도 희거나 검거나 색이 변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무리 햇볕에서 끝까지

말렸다하여도 좋은 게 아니다.

* 흰 곰팡이나 검은 곰팡이가 핀 고추는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건 좋지 않다.

* 투명한 빨간색(과육이 두꺼운 고추는 어느 정도 검붉은 색이 돈다)으로 윤기가 흘러야

좋은 것이다.

* 고추의 냄새가 적당히 맵고 단맛이 나야 좋은 것이다.

* 고추가 깨끗이 처리된 것이어야 한다.

최소한 위에 나열한 기준으로 고추를 고르면 좋은 고추를 고르는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프로들도 진짜 태양초와 열풍건조 후 비닐하우스에서 말린 고추를 눈으로는 쉽사리 구별하질 못한다.

만져보고, 꼭지 보고, 끝부분을 보고 법석을 떨어도 제대로 맞추질 못한다.

주부들이 시장에서 마른고추를 살 때는 눈과 입을 동원하여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좋은 고추를 사는 방법이다.

귀찮아도 고추담은 자루를 뒤적여보고 고추를 잘라보고 맛을 보는 수고를 하여야 좋은 고추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잘 익은 빨간 고추를 마련하여(이왕이면 손수 재배하여 얻어낸 고추로) 정성들여 말리고 깨끗하게 가공하는 것이 아닐까?

(2006.9.2.)

 

작년에는 고추밭에 지주대를 박고 고추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줄을 묶었었다.

그런데 고추가 자라면서 줄을 더 묶으려 했었지만 게으름으로 그냥 지나갔고, 밑에 부실하게 묶은 것만으로도 고추가 하나도 쓰러지지 않고 잘 자라 주었다.

화학비료를 주지 않고 거름을 조금 주어서인지 고추는 내 가슴팍을 넘겨 자라지 않았고 고추도 작게 열리니 웬만한 비바람에도 끄떡하지 않고 튼튼하게 버텨준 것 같다.

올해는 아예 고추 지주대를 한 개도 박지 않았다.

올해는 작년보다 적게 180여 포기의 고추를 심었다.

풋고추를 두 차례 따내었으며, 고추가 계속하여 달리며 점차 커지고 있다.

고추이랑에 잡초만 정리해주고 지주대는 박지 않아 이미 시작된 장마로 걱정이 슬슬 커진다. 그래도 올해는 아예 지주대 없는 고추밭을 고수해 볼 참이다.

태풍이 고추밭을 지나가지 않는다면 고추가 잘 버텨 주리라 믿는다.

웃자라지 않고 알맞게 큰 고추가 뿌리를 땅에 잘 내려 튼실하게 자라고 있으니 문제가 없을 듯하다.

그래도 큰 비바람이 지나고 나면 몇 녀석은 쓰러질 것이다.

그 때는 재빨리 세우고 뿌리 쪽에 흙을 덮어 돌봐줄 생각이다.

취미로 텃밭농사를 즐기는 엉터리 농군의 마음이다.

(2007.6.28.)

 

꽈리 고추는 올해 처음으로 심어보았다.

크기가 유난히 작아 이상하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심은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별로 자라질 못하고 있는 녀석들이 많다.

잡초를 처음부터 잘 다스린 곳에 심은 꽈리 고추는 그런대로 잘 자라고 고춧대가 휘청거릴 정도로 고추를 많이 달고 있는 데, 고추밭 만들기 힘들어 풀을 확실히 잡지 못하고 적당히 쑤셔 넣은 꽈리 고추는 잡초가 두 배나 크니 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

고구마밭의 잡초 다스리기는 뒷전으로 미루고 꽈리 고추를 덮고 있는 잡초를 토벌을 하였다.

한 뼘 조금 넘는 작은 꽈리 고추이지만 명색이 고추라고 두어 개 씩의 고추를 달고 있는 것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지주에 줄을 걸어주지도 못한 터라 고추달린 모양이 쓰러질 정도로 무겁게 달고 있는 고추를 모두 따주었다.

처음 밭을 만들 때에 얼렁뚱땅하지 않았다면 꽈리고추도 편하고 주인도 편하였을 텐데 나중에 풀 뽑느라고 고생을 했다.

(2008.7.13)

 

고추농사 5년차인데 올 고추농사가 그 중 최상급이다.

통상 사용하는 유기질비료인 농협퇴비를 한 포대도 뿌리지 않았는데도 땅심이 좋아진 밭에 인분주와 잡초퇴비로 적절히 영양을 공급하여서인지 현재까지는 고추작황이 엄청 양호하다.

올 초에 쑥대밭을 일구어 만든 고추이랑의 싱싱한 고추들이 주인의 입 끝을 위로 올리게 만들었다.

잡초와 함께 살고 있는 고추포기에서 싱싱하고 큰 고추들이 달려있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어설픈 내가 여느 프로농군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듯 착각하게 된다.

누가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 비닐멀칭 등을 하나도 만지지 않고 이렇게 멋진 고추농사 지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며 큰소리 한번 쳐본다.

올해는 텃밭에 비닐하우스도 제대로 갖추어져있고, 고추말리는 깔개와 희나리를 막아줄 덮개도 준비를 하였으니 천하제일 태양초는 맡아 놓은 당상이다!

올 김장은 엉터리자연농법 태양초가 책임을 질 것이다!

 

그러나 농사하면서 건방진 마음을 갖는다는 건 언제라도 실수하고 농사를 망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농사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얻은 결론이다.

씨앗뿌리고 모종을 심으면서부터 소출을 얻을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텃밭의 애들을 어루만지며 돌보아야 제대로 웃을 수 있다.

지금 아무리 고추농사가 잘 되었다 하여도 예쁘게 잘 말린 고추를 집에 가지고 올 때까지는 많은 난관이 남아있다.

그리고 텃밭에서 기른 배추, 무, 쪽파들과 함께 김치를 담가 화려한 고추의 색깔과 맛을 풍김으로써 주인의 입맛에 맞는 김장작품이 나올 때에야 진정한 텃밭농사의 멋을 부리는 것이 된다고 할 것이다.

 

고추농사는 요즘이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이다.

프로들은 요즘이 초비상이다.

요즈음은 무더위와 장맛비, 비구름과 강한 햇빛이 번갈아가며 프로들을 한시도 마음 놓지 못하도록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텃밭농사라고 다를 바가 없다.

농약 없이 농사한다고 하여 노는 것이 아니다.

죽을 녀석 죽고, 살 녀석은 살아라하며 농사한다고 그냥 내버려두고 돌보지 않으면 살아남아 주인에게 먹을거리 넘겨줄 녀석은 한 녀석도 없을 것이다.

덜 익은 고추를 거두어 잘게 썰어 냉동에 넣고, 막판에 달려있는 풋고추를 거두어 절임을 하고, 누렇게 변하기 전 고춧잎을 훑어내어 나물거리로 만들 때까지 고추에게 쏟는 정성은 프로농군이나 취미농군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방법은 다를 지라도 말이다!

(2008.8.3)

고추말리는 방법은 말리는 사람들 수효만큼이나 가지가지이다.

저마다 태양초를 만드는 비법들을 가지고 있으나, 예전부터 최고의 작품은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가 시골집 마당에서 하루 종일 정성들여 보살피며 말린 투명하게 빨간 고추이리라.

벌레 먹은 것과 희나리가 생긴 것도 모두 골라낸 깨끗한 고추만을 선별하여 곱게 빻은 고춧가루는 할머니 최대의 자랑거리로 귀하게 반찬의 원료로 대접 받는다.

 

요새 어디 그런 태양초와 고춧가루 있을까?

건조기술의 발달로 고추를 숙성시키고, 적절한 온도로 찌고, 열풍이나 냉풍으로 말리는 등 방법을 동원하여 소비자가 요청하는 대로 만들어 공급을 하는 세상이다.

고추농사 네 번을 전기요, 선풍기, 제습기 등을 동원하고, 아파트 마당에 햇볕 잘 드는 곳을 찾아다니며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한심한 짓을 하였어도 만족스럽게 태양초를 제대로 만든 적이 없다.

텃밭에서 잘 익은 고추를 따다가 정성스레 말려도 최상품은 4할도 못 건지는 초라한 결과를 얻을 뿐이었다.

대규모 고추농사로 공급되는 화건이나 반양건이 할머니의 손끝 정성으로 말린 진짜 태양초보다 영양학적이나 미각적으로 비교하여 못하다는 걸 증명한 연구결과를 본 적도 없다.

그러나 고추농사랍시고 나름대로 자연농법을 구사하며 얻은 귀한 빨간 고추는 가능하면 재래의 방법과 정성으로 말려야 영양도 풍부하고 입맛도 도는 귀한 고춧가루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고생을 하여왔다.

올해는 고춧가루를 완전 자급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백여 포기가 넘는 고추를 심고 정성들여 가꾸고 있다.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 비닐멀칭 없이 잡초와 함께 키우는 고추라 생각만큼 많이 수확은 못하고 있으나, 텃밭농사 오년 차에 최대의 수확을 하여 고춧가루는 완전 자급을 할 듯하다.

종이상자로 고추말리는 바닥을 만들고 시중에서 파는 검은 그물망을 바닥에 깔고 잘 익은 고추를 따서 그 위에 펴 놓은 다음 흰 부직포로 덮어놓았다.

엿새 뒤에 텃밭에 가보니 비닐하우스 안에서 말린 고추가 그런대로 쓸 만하다.

고추를 한 번도 뒤집어 준 적이 없었는데도 희아리도 적게 생겼고 검게 변한 것도 없었다.

일일이 손보지 않고 얻은 결과로는 만족스럽다.

일차 시험 성공으로 이번에는 텃밭에서 일주일을 지내며 잘 익은 고추를 두어 관 따서 말려보았다.

날씨의 변화가 어떠한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으나 욕심 많은 취미농군이 택하는 방법으로는 그런대로 좋은 것 같다.

(2008. 8. 23)

 

추석이 지나니 고추가 익는 속도가 엄청 더디어졌다.

지난주에 빨간 고추를 따서 비닐하우스에서 말리는 것도 빨리 마르지 않는다.

그런데 익지도 못할 풋고추가 뒤늦게 엄청 많이 달리고 있다.

이번에 빨간 고추를 딴 양은 지난번의 반도 안 된다.

텃밭에 서리가 내리기전에 미리 고추를 익은 정도에 관계없이 따서 손질을 하려한다.

작년에는 늦장을 부리다가 서리를 맞히는 바람에 풋고추와 고추 잎을 모두 버렸다.

마지막으로 따는 풋고추와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고추를 가로로 얇게 썰어 페트병에 넣어 냉동을 시키면 다음해 풋고추가 나올 때까지 요긴하게 양념으로 쓸 수 있다.

그리고 시들기 전의 싱싱한 고춧잎을 훑으면 맛있는 나물로 된다.

고춧잎과 아주 작은 풋고추가 같이 섞이면 맛이 더욱 좋은 나물재료가 되어 입맛을 돋게 한다.

(2008.10.1.)

 

이럭저럭 고추농사 6년차이다.

여섯 해를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 비닐멀칭 등을 전혀 쓰지 않고 고추농사를 하였다면, 그리고도 탄저병이나 역병 등으로 고추가 병들지 않게 하였다면 텃밭농사꾼으로는 아마도 최고수급에 속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아니다.

올해 고추모종을 선택할 때부터 신경을 쓰고, 고추밭도 연작피해를 피하기 위해 고추밭 위치를 정하고, 잘 숙성된 인분주로 추가시비를 몇 차례 하였지만 수확량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고추품종은 크기가 좀 작은 것으로, 과육은 두껍지 않은 것으로,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그리고 적당히 맵고 맛이 좋은 것 등을 고려하여 선택하였기에 애당초 수확량에 비중을 두지 않았지만 두 번에 걸쳐 빨간 고추를 딴 보잘 것 없는 양으로 보아 아무래도 김장과 고추장 담기에는 많이 모자랄 것 같다.

 

올해는 마음먹고 각목으로 건조대를 만들고 위에는 검은색 건조망으로, 아래층에는 방충망으로 고정시켰다.

새로 따서 말리는 고추는 위에 널고 그 위에 부직포를 덮고, 먼저 따서 말린 고추는 덜 마른 경우 아래에 널면 그만이다.

통기가 잘 되어 불량고추 나오는 것이 줄게 되니 비닐하우스 안에서 고추 뒤집기에 게으른 텃밭농사꾼이 고추말리기하는 방법으로는 꽤나 좋다.

희나리의 발생도 줄이고, 마른 고추 너무 말려 검게 타지도 않게 되니 일주일을 비워두어도 걱정이 없다.

 

잘 익은 빨간 고추를 따내도 하루 이틀 지나면 어느 틈에 여기저기에 또 색깔 좋은 고추가 나타나서 손짓을 한다.

고추건조대 위의 고추도 마르는 상태가 틀리니 주인의 손길을 기다린다.

수시로 잘 익은 고추 따내고 말리는 고추를 정성스레 손보면 버리는 것 없이 거둘 수 있겠지만 텃밭을 자주 비워야하는 취미농군이 어느 정도 아까운 고추를 버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고추는 서리 내리는 때까지 계속 꽃피고 열매가 달리고 익는다.

프로농군들은 많아야 네 차례 정도 빨간 고추를 따내고 나면 경제성이 없어 고추밭을 버리지만 취미농군은 서리 내릴 때까지 계속해서 고추밭을 돌보게 된다.

여름철 시작부터 맵고 달콤한 풋고추의 싱싱함을 즐기고, 내려쬐는 땡볕 아래서도 빨간 고추 거두는 재미가 쏠쏠하며, 서리 내리기 직전까지 오랫동안 풋고추와 고춧잎이 텃밭 하는 이들의 입맛을 돋우기에 텃밭에서는 아마 고추농사 하는 즐거움이 제일 클 것이다.

오월 초에 고추 심으면 칠월부터 상강을 넘겨 서리가 내릴 때까지 무려 네 달 동안 고추와 고춧잎을 즐길 수 있으니 고추에 필적하는 텃밭작물이 어디 있으랴?

 

정성들인 빨간 고추를 말리는 방법은 가지가지로 수도 없이 많다.

지역마다, 때마다 다양한 태양초 만들기 방법이 있으며 고추말리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고추말리기이나, 어느 방법이든 쉽사리 땀 흘리지 않고는 품질 좋은 태양초를 얻을 수 없다.

요즘의 마른 고추는 말이 태양초라 이름 붙여 파는 것이지 엄격히 말하면 태양초라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진정한 태양초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 손을 많이 거쳐야하기 때문에 더한 인건비만큼 값이 올라 소비자에게 팔리기가 매우 어려우니 당연한 결과이다.

방법이 어떠하든 텃밭을 하는 이들은 나름대로 태양초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정성을 쏟으면 맘에 드는 마른고추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으니 이왕이면 태양초 고춧가루를 만들어 텃밭 하는 만족지수를 더 올려볼 일이다.

(2009.9.2.)

 

텃밭에 자주 가지 못하니 텃밭은 온통 풀 천지이다.

텃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때에도 작물들이 풀들과 함께 자랐으니 한 달에 한 두 번 가는 텃밭이 오죽하랴!

농사로 돈벌이를 하지 않는 취미농사꾼의 입장에서 볼 때에 텃밭의 잡초들은 아주 좋은 즐길 거리가 될 수도 있다.

풀들을 호미로 뽑아내기도 하고 낫으로 베어내기도 한다. 그도 버티기 어려우면 예초기를 가동하며 텃밭을 돌보기도 한다.

작물들이 자라도록 잡초들을 제어하는 과정에서 취미농사꾼은 땀 흘리며 도시에서 축적된 노폐물을 시원스레 빼내기도 하며 적절한 조절을 하며 운동으로 활용하기도 하니 텃밭의 잡초들이 꼭 귀찮은 존재만은 아닌 것이다.

취미농사꾼의 입장에서는 텃밭의 잡초들은 텃밭농사를 망치게 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텃밭에 잡초들이 있음으로 해서 텃밭농사가 좋은 점도 많다고 본다.

텃밭에 비료, 농약, 제초제, 비닐멀칭을 하지 않는 게으른 취미농사꾼은 잡초들의 도움을 꽤나 많이 받는다.

잡초들이 텃밭에 있음으로 해서 텃밭의 흙은 부드러워지고 메마름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 도 한다.

매년 자라는 잡초들이 죽고 다시 자라고 베어지는 과정에서 척박했던 텃밭의 흙도 별도로 극성스럽게 퇴비를 만들어 주지 않아도 어느 정도 영양가를 포함한 좋은 부드러운 흙이 될 수 있으며, 지표면의 물기가 빨리 마르는 것을 막아주면서 뜨거운 열기를 차단하는 일도 하니 게으른 취미농사꾼은 적당히 인분주 만을 뿌려주면서 쉽사리 텃밭을 가꿀 수도 있는 것이다.

거름기가 부족하여 아무래도 보충을 해 주어야 할 형편이 되면 어쩌다 유박거름을 가볍게 뿌려주면 텃밭농사로 소출을 웬만큼 얻을 수 있다.

게으른 취미농사꾼은 예초기로 허리춤을 넘나드는 거친 잡초들을 베어낼 때도 베어낸 잡초들을 그대로 내깔겨둔다. 텃밭농사 초창기에는 유기농 한답시고 베어낸 잡초들을 한 군데에 모아 쌓아놓고 쌀겨, 인분주, 깻묵가루 등을 뿌리고 섞고 하면서 퇴비를 만들어 쓰기도 했지만 그 또한 귀찮은 일이라 하질 않는다.

텃밭에서 나오는 음식물찌꺼기도 거의 없지만, 있어도 텃밭에 뿌려버리면 그만이다.

텃밭이 넓어 표 나지 않고, 버려진 음식물찌꺼기들은 지렁이의 좋은 먹이가 되니 오랫동안 썩어가는 걸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올해엔 텃밭에서 즐길 시간이 너무나도 없어 텃밭농사에 욕심을 내지 못하였다.

기껏 텃밭에 심은 것은 고추 150 여주, 호박고구마 세 단이 전부이다.

텃밭에서 저절로 자라는 들깨, 상추, 아욱, 그리고 심어놓고 방치되어 바랭이에 휩싸인 부추 등은 관리대상이 되질 못하고 기껏해야 텃밭에서 주인의 입맛을 돋우는 별식이 될 뿐이다.

고추밭에는 으레 고추지주대가 있다.

고추가 자라고 많은 고추가 열려 무거워지면 쓰러지기 때문에 지주대를 박고 고추가 쓰러지지 않도록 줄로 묶어 놓는다.

프로농군들이 기르는 고추는 거의 한 길이 넘는 종자도 많고, 거름을 많이 주니 종자가 어떻든 크게 자라며 많은 고추들이 달리게 되니 뿌리가 제대로 지탱하지를 못한다.

고추 아래에 잡초들이 아예 자라지 못하고, 대부분 검은 비닐로 멀칭을 하니 고추의 뿌리가 단단하게 흙 속에 묻히지를 못하는 듯하다.

잡초와 함께 자라는 고추는 뿌리가 땅에 깊게 박히기도 하지만 잡초뿌리와 서로 엉켜 튼튼하게 지탱하니 웬만한 비바람이 괴롭혀도 쓰러지지를 않는다.

잡초들 사이에서 자라는 고추라 흙 속의 영양분을 독식하지 못하니 고추의 크기가 작고, 고추의 크기 또한 작으니 고추의 뿌리가 충분히 고추의 흔들림을 이기고 지탱하는 것이다.

고추밭 두둑에 난 잡초들을 뽑아내면 고추뿌리가 지탱하는 힘이 줄어들어 비바람에 텃밭의 흙이 부드러워지고 고추가 이리저리 흔들리면 넘어지기가 쉽다.

고추밭 풀매기를 한 후 장맛비에 고추를 넘어지지 않게 하려면 지주대를 박고 줄을 매어줄 수밖에 없다.

고추를 정식할 때에 그 간격을 두 자 정도 띄우고 두둑에 자라는 잡초들을 뽑지 않고 적절히 제어하면 고추지주대가 고추를 고정하게 하지 않아도 고추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취미로 농사를 하는 이들은 텃밭농사에 시도해볼 만하다.

그 대신 게으른 취미농사꾼은 고추 수확을 크게 기대하지 말아야한다.

고추가 작고, 달리는 양도 적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텃밭주인 멋대로 텃밭의 작물을 돌보며 소출을 적당히 얻는 취미농사꾼이 즐겁게 선택할 수 있는 농사방법이 되리라 생각한다.

내년에는 텃밭 고추농사를 모두 고추지지대 없이 할 생각이다.

고추 아래 자라는 잡초들을 고추 크기의 중간을 넘지 않게 낫으로 베어주면 된다.

텃밭 고추농사 칠년 차에 한 번도 농약을 사용한 적이 없다.

제초제 또한 텃밭에 뿌려 본 적도 없으며, 화학비료 또한 준 적이 없다.

그 흔한 농협퇴비도 거의 쓰지 않는다.

더구나 비닐멀칭을 한 적도 없다.

그래도 게으른 취미농사꾼에겐 웃을 만큼의 소출이 있다.

취미텃밭농사를 남이 하는 대로 하면 재미가 반감된다. 이왕이면 게으른 텃밭주인의 취향에 맞추어 색다르게 텃밭농사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텃밭의 땅심이 좋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병충해를 방치할 배짱이 있고, 호미질, 낫질로 손바닥에 굳은살 생기는 걸 즐기는 취미농사꾼이라면 취할 만한 농사방법이리라.

(2010.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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