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9. 21:37ㆍ삶의 잡동사니
어쩌다 민어 맛이 들렸다.
그래서 지난 여름철 내내 민어회에 매운탕에 꽤나 먹었다.
그런데 누가 자반민어가 끝내준다고 했다.
그래서 자반민어 구하느라 귀농카페에도 올려보고 수소문을 하여 찾아보기도 했지만 구하지를 못하였다.
겨우 찾은 것이 전라도 신안에서 어물을 판매하는 홈페이지.
믿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진보고, 전화해보고, 다시 또 물어보고 해서 지난 추석에 자반민어 몇 마리 샀다.
두자 반 넘는 민어로 만든 것들이라 꽤나 비쌌지만 쓸 데가 있어 큰 맘 먹고 샀다.
지난 추석 전에는 무지 더웠다.
또 태풍이 지나면서 비가 오는 날도 많았다.
그리고 자반민어 만드는 이의 정성이 부족함이 더해서인지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받은 자반민어가 기어코 사건을 만들었다.
지난 추석 때 자반민어를 선물로 받은 이가 클레임을 걸었다.
자반민어의 맛이 갔단다.
자반민어가 곯았단다.
자반민어가 썩었단다.
자반민어가 맛 간 홍어보다 더 지독한 냄새가 나서 못 먹겠단다.
며칠 후 귀하신 분들에게서 돌려받은 맛 간 자반민어는 우리 집안을 온통 쾌쾌한 냄새로 꽉 채웠다.
자반민어 대금 백여만 원이 아까워서 마누라의 구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맛 간 자반민어를 이리저리 뒤적이고 또 뒤적였다.
살펴보니 물러서 상한 것 같은 부위가 있고,
다시 살펴보니 민어 살이 탱탱하게 잘 마른 부위도 있다.
장갑 끼고 가위들어 맛이 좋을 것 같은 살덩이 부분만을 추려내니 반관이 넘는다.
그리고 손바닥만한 민어대가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젖국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잘 마른 대가리, 등뼈, 꼬리를 수습하니 한 삼태기 족히 되었다.
매주 한 차례씩 찾아오는 토요일을 이용하여 맛 간 자반민어로 탕을 만들어 보았다.
이리저리 찾아본 비방들을 동원하여 자반민어찌개, 자반민어탕, 자반민어젖국을 만들어 보았다.
이따금 코가 뻥 뚫리는 홍어 찜에서 풍기는 냄새보다 더 진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내가 만든 요리는 최상의 작품이란 생각이 언제나 드는 지라 고린내 나는 냄새는 훌훌 불어 날리고 먹어보았다. 허! 그런데 맛은 기막히다.
밥 한 그릇 뚝딱했다.
고약한 냄새가 나 설사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뱃속은 참 편했다.
휴일에 집에 혼자 있을 땐 내 머리는 온통 맛 간 자반민어를 어떻게 하면 맛나게 요리해서 먹을 수 있을까하고 궁리를 한다.
어쩌다 자반민어요리를 조금 남겨두면 마누라가 맛을 슬쩍 본 후에 이내 밥공기를 찾는다.
버린 돈이 아까워서 억지로 맛 간 자반민어를 먹는다면서 밥 한 그릇을 쓱싹한다.
암만 생각해도 자반민어가 잘못 된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판매를 한 이에게 따졌다.
그 이가 교회 장로라서 그런지, 아니면 인품이 원래 좋은 전라도양반이라 그런지 몰라도 제대로 된 자반민어 하나 보내라고 한 말을 듣고 왕창 큰 놈으로 하나 또 보냈다.
마누라는 큰 스티로폼상자를 보고 또 냄새난다며 기겁을 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보니 제대로 된 자반민어 같았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을 요량으로 자반민어를 다듬는데 이런! 기가 막혀!
민어 살이 찢어져 있는 부분에 파리 애벌레 같은 허연 것들이 보인다.
이런 거 마누라가 보면 졸도할 것이다.
곯은 놈도 먹었는데 구더기 낀 놈 정도 못 먹겠냐싶어 비위는 잠시 버려두고 깨끗하게 다듬었다.
지난 번 것하고 더하니 앞으로도 일 년간은 자반민어요리 실컷 먹겠다.
신묘 년 구정 며칠 전에 신안 김 장로가 전화를 했다.
지난 번 자반민어 괜찮았냐고 말이다.
성질을 부려보았자 본전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아 좋은 말로 구더기가 좀 끼었지만 먹을 만 하다고 했다.
김 장로가 백배 사죄한다며 연신 죄송함을 연발했다.
그리고는 민어포와 어란을 보내주겠다 하니 주는 사람 민망하게 거절을 하지 못했다.
설에 선물로 받은 민어포와 어란은 그런대로 좋아 보인다.
그리고 더 얹어서 보낸 한 팔 만 한 말린 서대 두 마리는 꽤나 상품으로 보인다.
생각지도 않은 말린 서대요리를 또 해야 하니 난 마누라가 하지 못하는 민어나 이상한 서대 요리하는 복을 타고 났나보다.
며칠 전에 김 장로 전화를 받았다.
받은 거 다 맛있다고 하니 껄껄 웃는다.
그래도 어란은 뭐 그리 작으냐고 하니 맛보기로 보낸 것이라 큰 놈을 보내지 못했다한다.
이야기 끝에 최상품 어란 맛 좀 보자고 했다.
결과는 이십여 만원을 보내야 했다.
친해진 마당에 자잘하게 굴 수가 없어 최상품 어란 낙착!
에그! 자꾸 돈 쓸 일만 생기는구나!
오늘 어란 도착!
와! 무지 큰 놈이다.
두 쪽이니 한 쪽을 얇게 썰어 맛을 봤다.
좀 짜지만 맛이 오묘하다.
입 맛 까다로운 나나 내 모시는 조회장님 혀끝에 감칠 맛 있게 돌아 들 만 한 수준이다.
맛을 아는 건 좋지만 이래저래 주머니 만 비우게 생겼다.
지난 번 제사에 쓰고 남겨 놓은 문배주에 손이 슬쩍 간다.
어란 얇게 썰어 놓고 잣 몇 알 더하니 문배주 안주로 최상이다.
주량은 적으나 술맛은 가릴 줄 알아 술과 안주 마련에 피곤한 성격이지만 민어 어란이면 체면치례는 할 만하다.
호사스러움을 어쩌다 맛보면 사는 재미도 나겠거니 치부하며 민어해프닝은 허허대며 웃어버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어란 떨어지면 어찌할까?
에라! 모르겠다. 떨어질 때까지 맛이나 실컷 즐겨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