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이 늘어서

2009. 2. 21. 20:00삶의 잡동사니

 겨울 동안 게을러졌다.

텃밭을 떠나온 지 두 달이 넘었다.

매일 농땡이 친다고는 하여도 어김없이 땀을 흘리는 일을 하였는데 두 달이 넘도록 육체노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즐거운 텃밭노동은 운동과 마찬가지라 텃밭에선 낮 시간을 보내고는 자기 전에 스트레칭으로 몸 풀고 호흡을 가다듬으면 그것으로 단잠자기가 보장되고 아침이 개운하였다.

 요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로 두 달 넘게 살면서 운동을 게을리 한 탓에 허리띠의 구멍이 두 칸이나 밀렸다.

본시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 먹는 음식도 가리지 않았고, 마냥 늘어져도 잡히는 뱃살이 없었는데 올 겨울 두 달간은 너무나 편하게 빈둥거렸나보다.

뱃살이 잡힌다. 아니 두툼하게 잡힌다.


 마지막 추위가 지나간다.

이제 삼월이 되면 텃밭이 아무리 추워도 그리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낮 동안 비추는 햇볕과 봄바람에 얼음이 녹고, 얼은 땅이 살그머니 풀리기 시작한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텃밭에 슬슬 온기가 퍼져가는 때가 다가온 것이다.

 올 봄에는 무척이나 바쁠 것 같다.

닭장을 큼직하게 지을 것이니 몸이 고단할 것이다.

파이프조립하고, 닭장 망 붙이고, 문 만들어 붙인 다음에는 닭장 안에 닭이 비바람을 피해 쉴 아늑한 공간과 알 낳고 품을 수 있는 방을 따로 만들어 줄 것이다.

텃밭 고르기 이외에 삽질, 곡괭이질, 톱질, 대패질, 망치질 등으로 손바닥 거칠게 만들며 한 달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게을러지기 쉽다.

게으르고 육신이 편하면 긴장이 풀어져버려 오히려 몸의 상태가 나빠진다.

적당히 긴장을 하는 시간을 갖고, 땀 흘리며 움직이는 시간을 가져야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아진다.

그러면 뱃속도 편해지고 쓸데없고 볼품없는 불룩한 뱃살도 빠질 것이다.


 텃밭은 삼월 내내 밤이면 얼음이 어는 추운 곳이기는 하나 해가 있는 동안에는 다가오는 봄기운을 쫒아내지는 못한다.

오히려 낮 시간에 땀 빼며 일하기에는 알맞은 때가 되었다.

게으름 피며 몸무게 늘리던 취미농군이 슬슬 기동할 때가 다가온다.

두 칸 밀렸던 허리띠의 구멍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가 다가오는 것이다.


 텃밭에서의 봄철 입맛은 냉이와 쑥이 책임진다.

펄펄 끓는 구수한 멸치된장국물에 집어넣는 한 줌의 냉이는 봄철 최고의 반찬이다.

이따금 조그맣게 올라오는 쑥의 새싹을 한 움큼 거두어 국을 끓여먹으면 그 또한 일품이다.

텃밭에 널려있는 냉이와 쑥은 겨우내 뱃속에 거북하게 쌓였던 답답한 기름기를 싸악 씻어버리는 듯한 상큼한 계절의 맛을 진하게 느끼게 한다.

 가지도 않은 텃밭에서 냉이 캐고 쑥 뜯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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