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가을이

2006. 10. 15. 00:46마음, 그리고 생각

 

텃밭의 한낮은 아직도 뜨겁다. 추석이 지나고 더위는 잊혀져가고 있지만, 아직도 황금들판의 곡식들이 내려 쪼이는 강렬한 햇빛을 반기고 있다.

오랫동안 가물어 고구마 밭의 흙이 부드럽지가 못하다. 게다가 급한 김에 쉽게 고구마모종을 심느라 평 이랑으로 두 줄로 심어놨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캐어내느라 고생을 한다. 호미로는 어림도 없어 쇠스랑으로 찍어내다 보니 찍힌 고구마가 비명을 지른다. 다시 삽을 들고 와 발에 힘을 주어 푹푹 박으며 흙을 들어내며 보물을 찾는다. 그런데 그도 쉽지가 않다.

그 놈들 고구마가 수직으로 깊게 박혀있고 하필이면 삽에 싹둑 잘리는 건 잘생기고 큰놈이라 내 성깔을 건들고 만다. 아마도 지금도 담배를 피운다면 핑계 낌에 고구마 한 이랑에 한 갑을 태워버렸음직하다.

혼자 고구마를 캐려니 능률이 오르지 않고, 베어지고 긁힌 고구마를 셋에 하나 꼴로 캐어내니 신경이 돋아 작업의 진행이 늦어져 세 시간 끙끙대고 한 가마도 못 캐었다. 고구마 세이랑 중 먼저 주에 한이랑, 이번에 한 이랑, 결국 한 이랑은 그대로 놔두었다. 아마도 서리가 내리고서야 다 캘 것 같다.

지난번에는 고구마 줄기를 다듬었는데 이번에는 훑어내어 밭에다 돌려주었다. 고구마 캔 이랑에 마늘을 심고 그 위에 뿌리니 그럴 듯하다. 먼저 쪽파심고 그 위에 예초기로 자른 잡초를 뒤덮어서 재미를 보았던 일이 있어 고구마 잎이 붙은 줄기로 잡초를 대신하였다.


텃밭의 밤은 추석 전과 다르다. 자다가 몸은 새우처럼 웅크려지고 이불을 뒤집어쓰게 된다. 추워서 깨어나고 깨어난 김에 밤하늘을 보려 농막 밖으로 나가게 된다. 별빛은 여름하고는 다르게 깜박이는 느낌이고 초롱초롱한 기운을 가진 별들이 무리지어 하늘을 장식하고 있다.

귀 기울여 보아도 소리가 없다. 농막 옆 개울도 흐르는 물이 적어 소리가 없다. 가재들도 집으로 기어들어 갔는지 서너 마리 이외엔 보이질 않는다.

농막 앞마당을 어슬렁거리다보니 한기를 느낀다. 서늘한 기운으로 초롱초롱하며 빛나는 별들이 무리지어 내 가슴 속을 파고든다. 잠시 여러 생각에 혼란스러웠던 나의 머리가 씻겨 내린다.

아직도 동이 트려면 두어 시간은 더 있어야한다. 아침을 맞이하여야 하는 텃밭이기에 다시 자리에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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