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6. 22:40ㆍ마음, 그리고 생각
나는 일년에 네 번 제사를 지낸다.
구정과 한가위에 그리고 부모님의 기제사 두 번 이다.
장손이 아닌 관계로 조부모님 이상의 기제사는 별도로 지내지 않고 있다.
형님이 일찍이 돌아가셨고 형님의 아들이 아직도 제사를 지낼 만큼 준비가 되질 않아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나는 제사를 좀 명랑하게 지낸다.
기본적인 틀은 벗어나질 않으나 신세대인 조카와 아들들이 짜증을 느끼지 않도록 제사를 이끈다.
기제사에는 부모님을 기리는 이야기와 어느 정도 엄숙한 형식을 취하나, 제사가 끝나고 음복을 하면서 아이들이 조부모에 대한 음덕을 느끼고 세상에 태어남에 관한 고마움과 즐거움을 갖도록 마누라와 함께 이끌며 노력을 한다.
우리 집 제사는 잔치를 하듯이 지낸다.
가능한 대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제사음식을 차린다.
사정이 좋지 않아 고민을 하며 적은 제사음식을 차린 적도 있으나 마누라는 언제나 마음을 다하여 성심성의껏 제사음식을 차린다.
제사를 지내면 자연스레 형제와 조카들이 모두 모여 친척관계를 확인하며 남보다 나은 정을 느끼게 된다.
제사조차도 지내지 않으면 형제들이, 그리고 조카들이 일년에 몇 번이나 만나고 이야기하고 정을 느낄까?
창피스런 이야기지만 나의 큰집 사촌형은 집안이 부자인데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이따금 지내기도 하는 눈치이나 작은 집 아들인 나를 제사에 나오라고 요청한 바도 없다. 그러니 집안에 사건이 있을 때에나 쑥스럽게 만나 눈만 껌벅이며 몇 마디하고는 헤어진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이웃사촌보다 더 나을 것도 없게 되었다.
나는 아들들이 내가 죽고 난 뒤에 제사를 지낼 것을 다짐을 받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놈들이 일년에 적어도 나처럼 형제와 조카들이 네 번은 만나서 친척임을 확인하고 서로의 애정을 느끼는 행사를 가지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한 마음은 마누라도 다름이 없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제사지내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제사지내기를 계속하면서 그러한 마음을 알아 가슴 속에 그 뜻을 간직하고 세상살이를 하길 바랄 뿐이다.
오늘 한가위 차례상을 상다리가 휘청거리게 차렸다.
마누라의 고생이 엄청 크다.
백수 남편 때문에 뒤 늦게 고생하며 생활비 벌랴 제사상 차리랴 하루도 몸 편하게 늘어질 날이 없다.
그래도 나와 마누라는 제사지내기에 정성을 바쳐 언제나 상다리가 휘어지는 상차리기와 제사 후의 잔치를 끊임없이 계속하여야 한다고 다짐을 한다.
나 같은 한량이 예쁜 마누라를 두어, 그래도 사람 노릇함에 부족함이 없다.
마누라에게 고마운 마음을 휘영청 밝은 한가위 보름달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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