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텃밭장난

2021. 2. 2. 21:53삶의 잡동사니

 올 겨울은 아주 오랜만에 옛날같이 겨울답게 추운 날들이 있었다.

눈만 더 많이 내렸다면 어릴 때의 겨울추억을 떠올릴 만한데 몇 차례 눈이 내렸지만 추억의 설국을 바라보지는 못하였다.

최근 몇 년간의 겨울기후로는 그런대로 겨울다워 아마 올해는 자연재배로 하는 엉터리농사가 좀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사태가 1년이 넘도록 지속되는 상황에서 활발하게 나다닐 수가 없는 형편이라 집에서 지내는 때가 많으니 생활에서의 불편함도 더욱 늘었다.

이따금 아파트 뒤쪽 산을 두어 시간 다니긴 해도 올겨울에는 가장 좋아하는 북한산을 한 번도 가지를 못하여 갑갑한 기분이다.

책을 읽는다 해도 한꺼번에 많이 읽지를 못하고 피곤한 눈을 끔뻑이며 휴식을 취하여야 하며, 집안에서 아령과 철봉체조를 한다하여도 땀 뻘뻘 흘리며 운동하기가 예전 같지 쉽지 않아 조심스러우니 집에서 지내기가 고달파진다.

부부가 함께 나다녀봐야 장보기로 끝내는 게 대부분이니 아내 또한 답답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파트베란다에서 실내텃밭을 여러 해 시도해보았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기껏해야 텃밭에서 정식을 하는 고추모종을 키웠었고, 쌈으로 먹는 상추는 성장상태가 불량하여 작은 크기 몇 장 정도나 겨우 먹을 정도라 흡족한 수준하고는 아예 거리가 멀었다.

베란다의 페어글라스창문을 통과하는 햇빛의 양이 적어지고, 공기의 흐름이 좋지 않고, 화분의 토양에 문제가 있다고 보면 애초부터 양호한 재배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텃밭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공간이 많은 베란다에서 뭔가 화분에서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쪽파, 대파, 미나리를 가지고 장난을 해보았다.

  쪽파는 늦가을에 텃밭에서 가지고 온 것을 화분에 빼꼭하게 심어놓고 필요시마다 뽑아먹으니 지금은 반 정도 남아있다.

쪽파의 줄기는 커졌으나 가늘어졌고, 뿌리도 빈약해졌으나 조금씩 요리에 쓰기에는 마트에서 파는 쪽파보다는 양호하다.

 텃밭에서 가져온 토종대파는 다 먹고, 시장에서 산 대파를 화분에 적당히 심어놓고, 필요시마다 한두 개씩 잘라 쓰는데 쓸 만하다.

  미나리를 다듬고 난 후에 뿌리를 화분에 심고 물을 자주 주었더니 싱싱하고 예쁘게 자랐다.

생선매운탕 먹을 때 한 번 쓸 만큼 되니 돈 좀 벌은 기분이다.

  설날이 지나면 봄기운이 바로 천지를 덮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우주의 기운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으니 조만간 동토를 녹이는 봄바람이 텃밭을 스쳐갈 것이고, 겨우내 축적된 기운을 풀어낼 텃밭주인은 텃밭에서 봄빛을 맞고 올라오는 예쁜 새싹들을 바라보고 싶어 안달을 할 것이다.

텃밭일로서는 제일먼저 시작하는 칠성초 모종내기놀이를 위하여 운기조식을 하여야할 때가 다가오니 마음이 바빠진다.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부평의 변두리가 강추위를 밀어내는 겨울안개로 따듯해져가는 듯하다.

볼품없이 시커먼 아카시아나무에 달리는 연두색 새싹이 오래잖아 새봄을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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