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내음

2022. 3. 29. 22:35삶의 잡동사니

 남녘은 산수유, 매실, 벚꽃 등이 만발하며 따듯한 봄날이지만 여기 제천 텃밭은 아직도 움츠리는 초봄 날씨다.

오늘 아침엔 영하 5도이다.

밖의 수도꼭지가 얼어붙어 물이 안 나온다.

8시쯤엔 영상이 될 거고 낮 기온이 13도라니 물 못 쓴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다.

요즘 한낮의 기온이 15도 내외를 가리키니 낮은 물론 밤중에도 난방 때문에 애를 억을 일 없어 잠자리가 그런대로 편하다.

밭의 흙은 이틀 전의 많은 강수량으로 깊숙하게 물기를 머금어 삽질하기에도 아주 부드러워 조그만 밭고르기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봄비와 함께 훈풍이 스며든 밭은 잡초들의 부산한 기상으로 싱싱한 녹색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으며 급한 녀석들은 초봄 꽃이랍시고 작고 앙증맞은 꽃들을 나보라고 소리치며 피우고 있다.

작은놈들이라 다가가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 꽃들이지만 살펴서 크게 보면 아주 예쁜 꽃들이다.

내 텃밭의 첫 꽃은 꽃다지이다.

아담하고 예쁜 방석 모양의 잎에서 갑자기 꽃대가 올라와 좁쌀 크기의 앙증맞은 꽃들을 열댓 개의 무리로 피워댄다.

 이름도 이상한 큰개불알꽃은 두 번째로 피는 예쁜 꽃이다.

무리 지어 자라고 꽃도 한꺼번에 펴대기에 쭈그리고 앉아서 감탄의 눈길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개불알꽃은 개 불알을 닮은 꽃 모양으로 볼 수도 있지만, 텃밭의 큰개불알꽃은 암만 크게 봐주어도 쥐눈이콩 알인데 크지도 않고 모양도 닮은 걸 모르겠다.

 돌 축대 아래 햇볕 좋은 곳에 성질 급하게 올라서 핀 쇠뜨기 꽃이 하나 있다.

이상한 모양의 꽃은 만개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봐줘도 예쁜 걸 모르겠다.

생명력이 엄청 강한 놈으로 많은 잡초들과 마찬가지로 내 텃밭에 해를 끼치지 않고, 뿌리를 흙속으로 1M 쯤 깊숙이 내려 영양분을 끌어내어 밭을 좋게 만든다기에 애써 토벌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잡초이다.

 텃밭의 토종 야생화는 아니지만 연못가에 심은 작은 수선화가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키 큰 붓꽃이 있는 자리 앞쪽으로 심어보았는데 붓꽃이 자라기 훨씬 이전에 재빨리 연못가를 따스하게 장식하는 일을 하는 모양이 기특하다.

구근을 별도로 관리해주지 않아도 다음 해에 꽃을 잘 피워주니 게으른 정원사가 신경 쓰지 않고 키우기 딱 좋다.

올해는 개체수를 더 늘릴 예정이다.

 작년 초겨울에 심어놓은 마늘이 모양 좋게 올라왔다.

이 정도의 성장이면 네 접 마늘농사는 100점이다.

같은 시기에 모종 한 판을 사서 심은 자색양파는 거의 전멸이다.

보온비닐을 덮어놓은 것이 부실하여 세찬 겨울바람에 벗겨져서 대부분 얼어 죽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겨울 되기 전에 양파

모종을 일찌감치 심어 뿌리가 튼튼하게 내리게 하고 보온비닐도 두꺼운 것으로 덮어주어야겠다.

 토종 대파는 겨우내 혹한으로 시든 잎을 떨쳐내고 파란 새싹을 기운차게 내밀 준비를 하는 중이다.

봄 새싹 국에 같이 넣어 끓여 먹으려 했지만 아직은 먹기에 일러서 쪽파를 캐어 대신하였다.

 매실은 이제야 움트기 시작한다.

좀 늦었지만 어제와 오늘 웃자란 가지를 잘라내고 잔가지를 솎아내느라 오랜만에 손아귀와 어깨가 아프도록 일하였다.

작년과 다르게 익은 매실을 충분하게 따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딱새, 쇠박새, 곤줄박이 같은 산새들과 친하고 싶어 개수대 옆쪽에 나무로 만든 새 먹이통을 만들어 놓았는데 오라는 작고 귀여운 놈들이 아닌 시 꺼무레한 큰 녀석 두 마리가 먹이통을 독차지한다.

크기가 한 뼘 반이 넘는 놈들로 직박구리의 한 종류로 보인다.

내 눈치를 보며 먹이그릇 주위를 맴돌다가 내가 해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지 과감하게 먹이통에 올라타서 포식을 한다.

친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니 당분간 먹이공급을 말아야겠다.

 이제는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해질녘부터 이른 아침까지는 싸늘하게 춥지만 이미 텃밭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봄기운이 앙탈을 부려봤자다.

게으른 농사하는 텃밭주인이 숨 가쁘게 일할 것이 아니고, 겨우내 퇴적해있던 묵은 먼지와 때를 털어내고 벗겨내기 좋은 계절이니 봄을 즐길 일을 찾기에 골몰한다.

 

 연못에 방랑과 자유에 도가 튼 멋스런 씨앗 하나가 둥지를 틀려고 낙하를 했다.

어디를 떠돌아다니다가 뒤늦게 텃밭을 찾아왔을까?

바람타고 구름타고 백리 길을 헤매다가 이제야 맘에 드는 돌밭정원의 연못을 찾아왔을까?

살짝 건져 올려 쥐똥나무 울타리 아래쪽에 가볍게 심어줄까 하다가 자유로운 영혼이 실리는 생명체를 스스로 만들게 놔두는 게 순리라고 생각을 하였다.

아마 박주가리 씨앗이 아닐까?

텃밭에 봄기운이 퍼지니 그 생동감이 내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기분이다.

쑥, 냉이, 꽃다지, 개망초, 민들레, 쪽파 등에 된장만 풀어서...

 

('2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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