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4. 18:00ㆍ삶의 잡동사니
북한산을 제일 많이 오르고 좋아하니 즐기는 명당자리가 몇 군데는 있다.
그 중 특히 내 몸을 맡기는 명당은 두 군데이다.
한 곳은 비봉에 있는 바위이고,
다른 한 곳은 구기계곡의 물속이다.
비봉에 올라 모조품 순수비를 지나쳐 네 발로 기어오르면 정상인데 문산, 김포, 분당, 상계를 휘익 돌아보고 나면 다른 이의 오름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 오래 머물 수가 없지만, 점프를 하고 옆 아래 바위로 내려와 흔들바위를 잠시타고 아래로 내려오면 거대한 물소 같은 바위가 나를 반긴다.
그 바위를 기어올라 콧잔등이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나 홀로 가부좌를 틀면 문수봉, 대남문, 보현봉과 이어진 사자능선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이를 바라보는 눈에 낀 지저분한 이물질이 사그라지고 북한산의 정기가 그대로 들어와 시원해짐을 느낀다.
이 자리는 혼자 올라 있어도 다른 이들의 산행즐거움에 방해되지 않는 곳이니 마냥 있어도 된다.
날이 좋아 기분이 내키면 십여 분을 자리 깔고 있어도 되니 참 좋은 명당이다.
웅장하고 시원스런 북한산의 산세를 즐기고 내려올 땐 마치 득도를 한 느낌이다.
그러니 명당이 아닐 수 없다.
하산 길에 구기동 관리소에 가까이 이르면 휘어진 길옆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엔 여름의 명당이 나를 반긴다.
아니, 때에 따라서는 봄이나 가을에도 명당으로 뽐낼 수 있는 곳인데 오래전부터 내겐 빼앗긴 명당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산행으로 얼굴에 번진 소금기를 씻어내고, 깜깜해진 하산 길에 보는 이가 없으면 이따금 팬티만 입고는 풍덩하며 몸을 맡기는 곳이다.
빠른 물살은 신나게 내 등을 스치며 속세를 잊게 해주던 곳인데 지금은 아쉽게도 즐길 수가 없다.
자연보호라는 굴레가 그러한 맛과 멋을 싹 빼앗아 갔다.
비누칠 하거나 밥 먹고 나서 기름기를 씻어내며 구기동 계곡물을 오염시키는 것도 아닌데 당국의 엄한 벌과금부과 조치가 원망스럽다.
그러한 조치가 잘못되었다고 반발하며 몇 번 입수를 하기도 했었지만 이 나이에 별나게 놀 필요까지야 있나하며 중단한 지 십 년이 넘었다.
하지만 이곳을 지날 때면 언제나 예전의 몸과 마음의 시원스런 씻김을 떠올린다.
추억을 도로 삼는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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