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는 김에 북한산

2016. 12. 5. 22:49나들이

 저녁약속이 계동 안집에서 있으니 머리를 굴려본다.

전날 손자녀석하고 놀다보니 허리가 불편하고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걱정이니 마침 잘 되었다싶어 배낭을 꾸렸다.

보온병 하나, 과자와 초콜릿, 바람막이를 꾸리고 점심을 북한산 아래에서 할 요량으로 일찍 집을 나섰다.

 불광역에서 지하철을 버리고 바로 구기터널 쪽으로 붙으니 점심 먹기는 글렀다. 산 중턱에 잠간 쉬며 조금 요기를 하고 물을 마시니 요즘 아랫배가 조금 나온 김에 별도의 다이어트 산행이 따로 없다.

북한산 탕춘대능선을 내려가며 등산만 했지 오르며 한 적이 없어서인지 그 또한 새로운 맛이다.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승가봉, 문수봉, 보현봉 등을 탕춘대능선으로 여유 있게 오르며 바라보는 맛이 색다르게 느껴져 왜 진작 자주 하지 않았나하며 속으로 중얼거리며 카메라 샷타를 눌러댔다.



 탕춘대능선은 참 편한 길이다. 능선을 따라 잘 구축한 성벽은 높지 않으나 기막히게 잘 만들어져있고, 기름때 묻은 보수의 손길이 하나도 없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대남문에서 백운대로 이르는 성벽을 복원이랍시고 돌덩어리를 두부 자르듯이 잘라 성벽에 붙여 복원한 졸작하고는 비교될 수 없는 옛맛이 있고, 한동안 탕춘대능선 성벽 위에서 머리를 서쪽에 비스듬하게 두고 힘들게 쳐다보면 돌로 만든 성의 아름다움 보다는 성벽을 쌓아올린 조선민초들의 애환이 들끓는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의 아픔이 보이기도 한다.



 향로봉과 비봉을 돌아 사모바위에서 한동안 사방을 둘러보며 계절의 바뀜을 확인하고, 북한산의 청정함과 서울시내의 메스꺼움을 비교해보면서 아스라이 보이는 한강의 줄기와 서해바다 쪽에서 희끗희끗 보이는 반짝임을 바다로 알고 초점을 맞추어본다.

비봉의 육중한 어둠은 서편으로 넘어가는 해가 비봉 너머로 넘어가면서 드러나기 시작하는 데 영하의 바람이 불어오며 능선이 얼기 시작하고 야간산행준비를 하지 않아 늦게까지 즐기지를 못하고 스모그에 덮여가는 서울 시내와 롯데월드타워를 희미하게 사진에 담느라 애쓰다가 하산을 서둘렀다.



 승가사로 내려오며 오가는 등산객을 한 명도 만나지 않아 참으로 오랜만에 북한산에서 어둠에 젖어드는 호젓한 산행을 멋들어지게 오롯이 맛보는 행운을 가져보았다.



구기동서 효자동까지 마을버스로 어수선한 청와대 주변을 이동하고, 경찰들과 바쁜 시민들과 촛불을 들러 나오는 이들의 부산한 움직임들 속에서 어슬렁거리며 계동 안집까지 가는 동안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다섯 시간의 느림보 산행으로 아픈 허리와 다리 아픔은 완전히 사라지고 몸은 쾌청한데 머리는 어지럽다.

 서울 시내는 언제나 내 머리와는 맞지가 않는가보다.

때맞추어서 친구가 좋은 술을 가져와 모처럼 세 잔 술로 어지러운 머리를 깨끗하게 씻는 호사를 잠시 누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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