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들이길

2018. 1. 10. 15:19삶의 잡동사니


  점심약속으로 사십여 년 전부터 다니던 대련집을 찾았다.

예나 다름없는 분위기가 유지되어서인지 여전히 정겨운 모습이고 아주머니들의 서비스가 변함없다.

나와 같은 노땅들이 즐겨 찾는 집이라 그런지 둘러보니 내 또래가 많다.

역시나 했는데, 고교와 대학 동창생 한 녀석을 만났다.

 오늘의 유사는 봐주고 있는 손녀가 갑자기 열이 높아 참석을 못하는 바람에 다섯이서 막걸리를 마시며 안주로 파전, 낚지볶음, 황태찜으로 안주를 했고 식사는 예전 맛인 국수로 마무리했다.

모임 갖는 이들이 70고개라 이야기 꺼리도 서글프게도 나이에 걸맞게 바뀌었고, 금년 들어 귀들도 어두워졌는지 목소리가 전보다 커졌으며, 남 들으라고 연신 이야기를 계속한다.

세월을 어쩔 수 없는가보다.


 모임 후에 시내구경 겸 시청역까지 걸어보고 싶어 대련집에서 종각, 롯데백화점, 명동입구, 신세계백화점, 한국은행, 조선호텔, 플라자호텔, 시청역으로 코스를 잡고 걸어 다니니, 부천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시간 사이를 활용한  알맞은 걷기운동을 덤으로 얻은 격이다.

 걷는 도중에 소변을 보느라 일부러 명품화장실을 찾아 이동하면서 아이쇼핑을 하고 싶어 신세계백화점에 들렀다.

회현지하상가에서 신세계백화점으로 들어가니 매장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고 색다르다.

                  * 회현지하상가에 붙은 신세걔백화점출입구


* 한국은행쪽에서 본 신세계백화점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없고 쾌적하고 조용한데 매장은 명품시계와 핸드백 등으로 한정되어있다.

층별 안내를 보니 모두가 의류명품들을 파는 명품매장이다.

어쩌다 다니는 사람은 명품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부자이거나 명품에 필이 꽂혀서 돈 없어도 카드를 긁어대는 미친사람들 뿐이니 복잡스럽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먼지하나 떨어져있지 않은 호사스러운 매장통로를 촌티 나지 않게 폼 잡으며 명품화장실을 찾아 용변을 귀족같이 보고나서 따스한 물로 손 씻고 질 좋은 종이타올로 마무리하며 닦아내니 좀 미안한 감도 있구먼!

~ , 예전에 신세계백화점의 주요고객으로 매출을 꽤나 올려줬으니 그 정도야!

                 * 서울중앙우체국

                 * 조선호텔 앞쪽의 소공로에 접한 작은 건물.

                   보증금 5억원, 월세 6천만원!!! 저길 들어가 뭘하면 돈을 벌까?


 몇 년 사이에 거대한 빌딩들이 많이 늘어 나를 촌사람처럼 만들고 걸어 다니는 주변을 이리저리 바라다보고 올려보게 만들었다.

한국은행을 지나 지하도로 시청역까지 걸어가는 동안은 단순한 색감과 밝은 전등불빛이 예전만 못하여 발걸음이 피곤하였다.

1호선 역 구내로 들어가 전철을 기다리는데 웬 노숙자가 구내벤치에 쭈그리고 있다.

다가가서 보니 노숙자가 아니다.

                 * 진정한 여행고수다! 나도 저 양반처럼 함 놀아볼까?


온통 시꺼먼 옷과 구두에 손수래짐보따리까지 가지고 있기에 언뜻 멀리서 보기에

노숙자였지 내 구두보다 좋고 반짝거리는 털구두를 신고있고, 게다가 LG노트북까지 켜고 한국의 도로, 풍경, 관광지, 문화 등을 검색하고 있었다.

구내벤치 바로 옆에는 전기와 인터넷연결 콘센트가 있었다.

이런 제길! 난 내 나라의 편의시설을 나보다 나이 많은 외국인 여행객 만큼도 모르고 살아왔구나!  아니, 좋은 말로 하면 관심이 없었다고나 핑게를 대어볼까?

아마도 저 양반은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나보다도 더 많이 여행하고 또, 외국여행의 참맛을 느꼈을 것이다.


 열차에 타니 웬 나 같은 논내들이 그리 많은지!

논내는 노약자석 앞에 서있지를 않는다!

논내가 논내에게 자리양보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내는 노약자석이 아닌 곳의 젊은이 앞으로 가서 기웃거린다.

그렇다고 젊은 놈이 논내에게 자리를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을 심신이 피곤하게 살아가는 젊은 놈들이 집에 가서도 피곤하지 않도록 모처럼 잡은 자리를 지키느라 핸드폰 속으로 눈을 집어넣거나 머리를 내려놓고 잠을 자거나 자는 척하며 내릴 역에 전철이 정지하고 나서야 일어선다.

 논내들이 왜 그렇게 많을까?

각자가 전철을 타야 할 일들이 많을까?

나의 경우엔 무료전철표를 쓸 일이 한 달에 이틀, 삼일 쯤 되는 것 같은데?

앞쪽 7자리에 5명이 논내고 뒤쪽 7자리에 또 5명이 논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서있는 사람들 11명중 나까지 논내가 5명이 논내다! 내 주위 25명 중 내 보기에 공짜표 논내가 15명이다!

이미 우리나라가 논내공화국이 되어서 그런가?

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전철에서 더위를 식히느라 전철타고 하루 종일 왕복하는 논내들이 많다고는 들었는데, 그렇다면 추운 겨울철엔 추워서 난방이 잘되는 전철을 타고 하루 종일 오가는 걸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논내들에게 무료전철권이 많이 발행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부천에 내려 친구와 약속한 비용이 싼 당구장으로 들어가니 당구대 10개를 시꺼먼 옷으로 무장한 오십 중반 이상의 사람들이 점령하고있다.

친구와 다섯 게임을 치고 당구장을 나오며 둘러보니 두개의 당구대를 젊은이가 겨우 차지하고 있다.

요즘엔 당구장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니 한결 목이 편하다.

 귀갓길 전철은 젊은이들이 더 많았다.

퇴근시간 이후라 그런가보다.

 일부러 논내가 앉아있는 노약자석 앞으로 가서 발꿈치 올렸다 내렸다 스트레칭하면서 오늘 하루를 뒤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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