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1. 29. 23:21ㆍ밭 만들기
올해 고구마와 호박 농사를 거의 전부 망쳐 버렸다.
올 봄에 텃밭 경계선을 따라 밭에 널려있는 큰 돌을 이용해 축대를 쌓고 희희낙락하며 이곳저곳에 여러 가지 농작물을 심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장마철을 보내면서 문제점이 나타났다. 더구나 집중호우 두어 차례를 맞고 나니 텃밭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호박구덩이는 쓸려나가 호박뿌리가 드러나고 고구마 밭은 계속 물에 잠겨 버렸다.
밭에 잡초가 번성하면서 토사는 휩쓸리지 않아 좀 좋아지긴 하였지만 그 이후로는 잡초와 몇 차례 싸움을 했다. 낫과 호미는 고추밭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호박과 콩 밭은 예초기를 동원하여 몇 차례 신나게 베어낸 이후로 결국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잡초님에게 인사를 올리고 말았다.
유기농 좋아하네! 예전 같이 담배를 피웠다면 하루 두어 갑은 연기로 사라졌을 터이다. 마을 촌로의 비웃음이 자구 눈앞을 어른거린다. “제초제 안주면 농사 못혀! 내가 좀 뿌려주랴?”
텃밭 땅속으로 흐르는 물을 잡고 수없이 많이 처박힌 큰 돌을 골라내어 밭을 밭 같게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작업하는 김에 집터를 제대로 만들기로 했다. 아니 밭의 배수로 작업은 사실 집터 고르기를 하기 위하여 하는 보조일이라고 볼 수 있다.
사흘 동안 배수로를 팠다. 당초에 설계한대로 되질 않고 좀 변형이 되었다. 땅속의 물이 나는 곳과 물 빠짐이 되는 위치를 다시 잡고, 어떤 곳은 암반층이 등장하여 이를 피해서 수로를 만드느라 변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깊게 판 곳은 여덟 자 깊이, 얕게 판 곳은 두 자 깊이.
위쪽 밭 배수로는 위쪽 연못으로, 아래쪽 밭 배수로는 아래쪽 연못으로 연결되며 각기 서쪽과 남쪽의 개울로 퇴수되도록 만들었다.
촌로가 보시며 또 혀를 차신다. 무얼 하려고 온 땅을 도려내고 돈을 들여 이상한 작업을 하느냐고 말이다.
농사지어서 언제 그 들인 돈을 찾겠는가? 씨잘 데 없는 일만 하고 있다고 손가락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텃밭의 흙이 농사를 제대로 지을 만 해야 되고, 집터를 제대로 잡아야 하며, 그에 따라 내 땅이 명당이 되도록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게 되므로 남 보기에 이상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측을 하여보니 배수로의 총 길이가 400여 미터이다. 샘물이 많이 흐르는 배수로는 이중으로 유공관을 설치할 요량으로 차떼기로 주문을 하였다.
4M짜리 150mm 플렛시블유공관 150개를 주문하여 아들과 함께 배수로에 설치를 하니 17개가 남았다. 컨박스 주위에 고급으로 도랑을 내고 남은 것은 나중에 쓸 요량으로 컨박스 위에 잘 모셔두었다.
텃밭의 돌을 한자 깊이로 고르는데 작업속도가 별로 빠르질 못하다. 큰 돌이 수시로 나오니 실제는 자반이나 두자 깊이로 땅고르기가 되기 때문이다.
골라낸 돌을 다시 배수로에 작은 돌, 큰 돌 순서로 집어넣어야 배수로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된다. 배수로에 작은 자갈을 넣으면 완벽하게 되겠지만 돌을 사서 넣으려면 무지하게 돈이 많이 든다. 차선으로 밭에서 공짜로 나오는 돌멩이를 이용하는 중이다. 크고 좋은 돌은 나중에 집 지을 때 쓰려고 한쪽에 쌓아놓을 것이다.
석발작업과 배수로 돌메우기를 끝내고 나면 지표에 흐르는 빗물의 길을 내는 일을 또 하여야 한다. 이 일은 내년 봄에 텃밭에 로타리를 치면서 이랑과 고랑을 내어 마무리할 것이다. 이 때는 텃밭의 설계를 모양 있게 한 후에 텃밭을 이십 여개의 작은 밭으로 나눌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