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6. 10:35ㆍ농사
올해는 확실하게 더운 날이 오래 지속되었고, 그러한 더위가 이상스러운 기후라는 걸 확실히 알려주었다.
상강이 지난 지 열흘이 넘었을 때에도 추위가 일찍 찾아드는 송학산 아래쪽의 텃밭에 서리한 번 내리질 않았었다.
이러한 이상기후는 많은 프로농군들의 농사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고, 결코 일반적인 방법으로 하는 농사에 도움이 되지를 않고 오히려 피해를 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올겨울은 예전에 비하여 더 춥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겨울이 늦게 오는 걸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요즈음의 기상예보도 매일매시간 바뀌는 게 다반사라 그에 의존하지 않는 버릇도 생기기도 한다.
텃밭에서 지내는 요즘 딱히 바쁘게 할 일이 없으니 몸이 근질거린다.
고구마를 캐고 난 밭을 평이랑 셋으로 만들어 밑거름을 예년과 달리 좀 많이 주고 고르게 다듬어 마늘밭으로 만들기로 하였다.
지금은 마늘농사를 마늘주아를 활용하여 대량으로 농사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보급이 되는 중이지만, 나는 텃밭에서 씨마늘을 파종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배추를 제외한 작물들이 결실 후 생을 마칠 늦가을이 되면 텃밭은 휑하게 바뀌고 쓸쓸해진다.
땅콩을 캐고 난 후 땅콩줄기들이 말라 삭아가고, 고구마를 수확한 뒤의 고구마줄기들은 고랑에서 말라가는 중이며, 텃밭주인의 예초기로 바짝 잘렸던 잡초들은 춥지 않은 날씨로 뒤늦게 싹들을 올리고 있으나 얼마 안 가서 얼어 죽을 것이다.
고구마를 캤던 밭이 흙의 부드러움을 유지하며 딱새나 곤줄박이들의 놀이터로 변해있을 때에는 선호미나 레기로 평탄하게 고르기가 쉬우니 오래도록 묶여놓았던 농협유기질퇴비를 충분하게 뿌린 뒤에 흙과 골고루 섞어준 다음 밭이랑을 3개로 만들어 씨마늘을 심을 간격을 맞추어 줄을 그어주었다.
사흘쯤 지난 후에 선호미로 줄을 그어가며 세 치 깊이로 파서 미리 준비하였던 씨마늘을 간격을 맞춰가며 심었다.
한 뼘 간격 줄 18개로 3이랑, 씨마늘 심는 간격은 10센티미터로 줄 당 9개씩을 심었으니(18*3*9=486) 500여 개의 마늘을 심은 셈이다.
발아실패와 성급한 마늘 맛보기로 줄어들 마늘을 감안하면 내년 마늘농사는 대략 4접을 얻게 된다.
씨마늘을 텃밭에 심어 육쪽마늘을 얻는 걸 내 기준으로 따져보면 생산성은 별로 크지 못하다.
씨마늘 한 개로 마늘 한통을 얻으니 육쪽마늘의 경우 기껏해야 5~7배의 마늘 알맹이를 얻는 셈이다.
땅콩 한 개를 심어 땅콩알 삼사십 개, 고추모종 한 개 심어 고추 오육십 개를 얻는 거에 비하면 텃밭 마늘농사는 미련스러운 농사에 해당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텃밭에 씨마늘을 심는 건 왜일까?
나는 텃밭에서 마늘농사를 하여 집에서 사용하는 마늘을 완전히 자급을 하지도 못하면서 씨마늘을 심는 건 내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텃밭이 겨울로 접어들어 황량해지기 전에 텃밭의 일거리는 들깨를 털거나 배추를 돌보거나 하는 일이라 쉬는 시간이 많아지니 텃밭생활은 자칫 게을러지게 되니, 근질거리는 팔다리를 풀어주기 위하여 농기구를 잡고 적당히 운동하는 텃밭마늘 심기는 적절한 짬을 이용하기에 알맞은 일이다.
둘째, 심은 씨마늘이 텃밭이 동토가 되기 전에 뿌리내림을 하고 3개월의 겨울을 보낸 다음, 봄소식과 함께 앙증맞은 새싹을 덤불사이로 내미는 모습을 보는 것은 텃밭생활로 느낄 수 있는 생명의 귀함과 신비스러움이다.
셋째, 마늘밭을 덮고 있는 덤불이 삭고 마늘이 두 뼘 정도 커질 때에는 마늘의 구근이 커지면서 이따금 텃밭주인의 별미사냥의 즐길 거리로 되니 마늘농사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넷째, 텃밭에서 얻는 마늘은 크기가 작으나 육 쪽을 넘기질 않고 알이 단단하고 맛이 좋아 시장에서 파는 통이 큰 마늘의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결국은 텃밭을 하며 가꾸고 얻는 소출이 사서 먹는 것에 비하여 상품성이나 영양이 좋지 않더라도 농사를 즐기는 나의 애착과 땀으로 얻어내는 즐거움이 빈약한 생산성까지도 도외시하는 것이다.
씨마늘을 심고 검불을 덮어주고 2주 정도 지났는데도 기온은 크게 내려가지를 않았다.
수능추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능을 보는 때에도 추위가 없고 오히려 기온이 높고 비가 내렸다.
그래도 12월 초순에 들면 텃밭은 얼을 것이다.
마늘밭에 얇은 비닐이라도 더 덮어주는 것이 검불의 흐트러짐을 방지하고 내년 봄에 마늘 싹이 트기에 좋을 것이라 멀칭용 비닐을 덮고 고정을 할 것이다.
올해의 배추농사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한심 수준이다.
병충해를 겨우 이겨내고 이제야 싱싱하지만, 속이 차지 않아 시장 배추의 1/6 크기나 되려나 모르겠다.
집안식구용이 아니라 내 혼자 먹는 배추김치 수준이다.
아직도 날이 춥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더 크도록 십이월 초까지 그대로 놔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