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선물

2008. 5. 2. 23:21마음, 그리고 생각

 골프를 치기 시작한지 15 년이 된다.

골프를 치고 나서 4 년 만에 첫 이글과 함께 78타로 최초의 싱글을 기록하였다.

최고 기록은 4년 전의 77타이다.

그 이후로는 계속 내리막이다.

이븐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많이 있었으나 백수가 되면서 욕심을 버렸다.

백수가 된 처지에 골프에 취할 수 없는 지라 지금은 골프연습도 하지 않고, 예전의 골프친구들과의 라운딩도 슬슬 피해가며 사는 처지이다.

 골프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해도 참 재미있는 운동이다.

멋진 골프장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골프를 즐기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골프를 즐기는 데에 너무나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골프를 사치성운동으로 규정하여 엄청나게 무지막지한 세금을 때린다.

제주도에 가서 골프를 치는 비용으로 일본에 가서 대접받으며 골프를 칠 수 있으니 우리나라의 행정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객관적 입장에서 볼 때에 골프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졸부나 소위 끗발 있는 인간들이 즐기는 사치성오락 쯤으로 여겨지지만, 요즘은 많은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각 지방마다 골프장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회원제가 아닌 퍼블릭도 꽤나 많이 생기고 있으며, 지방의 중소도시에서도 골프연습장의 높은 그물망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그만큼 대중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4월말이 아내와 내가 결혼한 지 31주년이었다.

며칠 전에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 텃밭으로 갔다.

그리고 생각 끝에 귀가하면서 흑장미 31송이를 안개꽃으로 둘러쳐서 샀다.

아내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고 난 뒤 식탁에 올려진 꽃다발을 보고 얼굴이 확 펴지는 것을 보고야 모자란 남편이 마음을 좀 놓았다.

뒤 늦게 아내를 고생시키는 못된 백수남편의 입장에서 언제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돈 안나오고 오히려 돈 까먹는 텃밭생활을 하면서, 아내의 노력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니 백수남편은 언제나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아내와 함께 있는데 택배가 왔다.

커다란 상자가 와서 아들이 뭘 구매했나보다 했는데 아내는 백수남편 것이라 하며 실실 웃는다.

뜯어보니 골프가방세트이다.

골프를 접어가고 있는 마당에 웬 캐디백과 보스톤백이냐?

지금 쓰고 있는 골프가방세트도 흠 없이 고급으로 좋은 놈이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계속 쓸 수 있는 것인데 그 비싼 걸 선물하다니 아내가 좀 돌아버린 건 아닌가 하고 쳐다본다.

아마도 아내는 내가 골프하러 갈 때에 동반자들에게 폼 좀 잡고 돈 좀 있는 척 내지 표 좀 나라고, 즉 자존심 좀 세우라고 비싼 걸 사주었나 보다.

아니, 그 보다는 백수남편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백수남편이 좋아하는 골프 관련 용품을 사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멋진 골프가방이 생겼다고 골프를 칠 일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텃밭에서 마음 닦으며 사는 백수가 골프칠 일을 늘리며 만들 것도 없다.

그러나 과거의 인연으로, 백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피할 수 없어서 한 달에 한두 번 골프장에 갈 수 밖에 없지만 아내가 준 골프가방은 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골프를 완전히 접는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가 사준 멋진 골프가방은 나의 골프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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