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 추워서

2008. 2. 15. 00:18마음, 그리고 생각

 

 작년 성탄절 이후로 텃밭에 가보지를 못하였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좀 추운 날이 많이 계속되고, 텃밭에서 딱히 하여야 할 일이 없는 바이니 엄동설한에 텃밭에 가서 떨며 지낼 일이 없다. 더구나 요즈음 텃밭은 매일 영하 15도 내외로 춥다.

작년 말 텃밭에 상수도를 들일 때 농막을 치장, 보수하면서 마무리를 다 하지 못한 관계로 아직도 페인트칠 등 손 댈 것이 있으나, 굳이 이 추운 겨울철에 일 할 이유가 없어 추위가 물러나는 삼월 초까지 미루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육신을 느긋하게 어루만지고 있는 중이다.

텃밭 농한기에 땀 흘릴 일 없고 시간이 많으니 집짓는 책을 이것저것 뒤적이고, 어떤 때는 하루종일 천정 쳐다보며 머리를 굴리는 게 일이다.

텃밭에 집터를 이리저리 옮겨보고,

기초공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행해 보고,

땅 다지고, 주초도 놓아보고,

굵은 목재를 비닐 덮은 일간에 잔뜩 쌓아놓고 마름질, 먹매김, 바심질에 정신이 없고,

황토벽돌 쌓느라고 허리가 뻐근하고,

육중하고 쭉 빠진 대들보를 넋 빠지게 쳐다보기도 하며,

멋들어진 대공 위에 일자로 탄탄하게 잘 빠진 마룻대를 올려보고,

서까래의 높낮음을 이리저리 조정해 가며, 마무리 잘된 연등반자의 운치를 맛보기도 한다.


 삽질, 호미질, 낫질을 하지 않아 육신은 편한 반면,

텃밭을 디자인하며 세 칸 흙집 짓느라고 머리가 복잡해서인지 잠을 무지 잘 잔다. 원래 잠을 잘 자는 체질이지만 요즘은 잠자는 시간도 늘어서 잠 잘 못자는 아내의 눈총도 받는다.

 아직도 노란 호박고구마를 거의 매일 깎아 먹고, 구워 먹고,

텃밭에서 거둔 금배추로 담근 김장김치를 배부르게 잘 먹어서인지 몸무게가 텃밭에서 지낼 때보다 한 관은 늘었다.


 이제 두어 주 지나면 봄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올 봄에는 작년 봄 보다 좀 게으르게 농사를 하고, 심는 작물도 좀 줄여 보려고 한다.

그래도 맨손으로 농사를 하니 놀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고, 손바닥에 굳은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지 허겁지겁 텃밭에서 이리저리 뛰지를 않고 느긋하게 농사를 하겠다는 뜻이다.

아마농군이 욕심 부리고 농사지어 보았자 남에게 농작물 팔아 돈 벌 것도 아니고,

설혹 농사에 극성을 부려 보았자 소출을 많이 얻는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어서 느긋하게 농사하고 얻는 대로 먹겠다는 이야기이다.


 지내고보니 세월이 금방 지난다.

벌써 텃밭농사 오년 차가 되었다.

올해에는 고추, 김장용 배추와 무를 완전하게 자급할 예정이다.

제 멋대로 자연농법 텃밭농사 오년이 되고서야 겨우 고추, 배추, 무, 감자, 고구마를 완전히 자급할 자신이 생겼다.

정신없이 씨 뿌리고 잡초 베어내며 땀 빼고 나서 별 볼일 없는 농사성과에 허탈해하던 지난날에 비추어 볼 때 취미농군으로서는 대단한 발전이다.


 두어 달 편하게 놀아 늘어난 허리와 몸무게가 유지될 날도 얼마 남지를 않았다.

초봄이 되면, 텃밭에서 돌아다니는 나의 발걸음 소리에 몸무게는 다시금 한 관이 빠지리라.

 

* 설날 아침 두녀석이 피더니 지금은 모두 다 활짝 피어 은은한 향을 풍기고 있다.

 

 

'마음, 그리고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자가 되고 싶은 의사  (0) 2008.06.03
아내의 선물  (0) 2008.05.02
사람 사는 거  (0) 2007.11.22
유자차 만들기  (0) 2007.11.21
며느리의 항아리  (0) 2007.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