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배추농사

2022. 9. 27. 15:12농사

 올해는 퇴비를 밑거름으로 주고 밭을 잘 고른 다음에 시장에서 산 배추모종 중 튼실한 놈만 골라서 30여개, 그리고 밭에 직파하여 기른 주황색 베타카로틴배추모종 20여개를 정식하였다.

추석 지내고 열흘 후에 텃밭에 오니 배추들이 벌레에 많이 먹혔으나 그런대로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 올해는 관리 좀 잘하면 김장꺼리로 충분하리라 생각하고 목초액, 막걸리, 냉장고에 오래전에 넣어두었던 우유를 섞어 만든 날벌레 방지액을 뿌려주었다.

다음날 오후에 둘러보니 배추 세 개가 뽑혔고, 잎이 잘린 배추 다섯 개가 보이는 게 분명 고라니 짓이다.

노루망을 둘러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서늘해진 갈바람을 즐기는 데에 시간을 보내고는 해가 저물어 노루망 설치하는 일을 다음으로 미루었다.

 남쪽의 태풍이 지난 뒤의 제천의 하늘색은 참 파랗고, 구름은 멋지고 탐스런 모양이다.

게다가 어쩌다 휘익 지나가는 강한 바람이라야 웃자란 들깨들도 겁내는 정도는 아니며, 25미터 높이의 미루나무는 크게 휘청거리지 않으면서 바람의 리듬에 따라 떨구는 잎들을 멀리멀리 날려버리면서 흔들거리는 춤을 즐기는 듯하다.

오늘 새벽은 기온이 섭씨10도라 농막에 닌방을 켰다.

아침 먹고, 커피 내려 마시고, 선선한 오전에 일찌감치 배추들 돌봐야겠다고 노루망을 찾으니 따로 보관해 둔 것이 없는지라 차선책으로 활대와 한랭사를 가지고 배추밭에 갔다.

 아~~~!

고라니 주둥이를 피한 배추들이 열두어 개이고 나머지는 새로 속잎이 나오는 부근까지 싹싹 잘라먹혔다!

전날에 일을 미루지 말고 늦게라도 대강 둘러쳐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참 크기 시작해야할 때에 뽑히거나 밑둥 조금 남기고 싹 먹어치웠으니 참!

늦장대응이 한심한 것이지만 그래도 살 녀석들이라도 보호해주어야 맘이 편하니 한랭사로 꼼꼼하게 막아주었다.

올해 김장도 적은 양의 텃밭배추 김치는 나 혼자 입으로, 절임배추 사서 담그는 김치는 마누라와 아들네의 입으로 가는 웃기는 김장이 될 것 같다.

(`2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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