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1. 10:56ㆍ돌밭의 뜰
개수대 옆에 자리한 오미자가 파이프터널 한쪽을 완전히 덮고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엊그제 농막과 비닐하우스를 오갈 때 내 코엔 아주 멋들어지게 상큼한 향내가 이따금 스쳐갔다.
웬 향인가하고 꽃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바로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감고 살며시 맡아보니 바로 그 향이다.
내 코에는 난향, 아니 보춘화 잔뜩 피어있는 안면도 야산을 걸을 때 봄바람에 실려 오는 춘란 향과 같은 미미하면서도 때로는 존재감을 세게 나타내는 향이랄까?

올해는 지난해보다 네댓 배는 꽃이 많이 피었고, 거름도 충분히 주었으니 낙과되는 일 없이 빨간 오미자가 알알이 주렁주렁 달릴 것이다.
텃밭작물들이 생각대로 잘 되는 건 아니라도 오미자가 자라고 모양 잡는 걸 보아서는 좀 욕심을 내도되겠지!

오미자는 꽃을 한 나무에서 두 가지로 피운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것이다.
오미자 꽃의 매력적인 향은 수꽃에서 날까?
아니면 암꽃에서 날까?
암만 생각해보아도 암수 두 꽃에서 모두 날 것으로 생각된다.


벌 나비들이 수꽃의 향에 이끌려 수꽃으로 들어갔다가 꽃가루를 묻히고 나오면 암꽃 향에 끌려서 들어가 꿀을 먹으며 다리에 묻은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묻혀 수정되게 만들어야 결실이 되기 때문이다.
다르게 보더라도, 암꽃과 수꽃을 선후관계 없이 벌 나비가 방문하더라도 교차되는 방문으로 수정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도 벌 나비가 청량한 향에 이끌려 수꽃을 방문하여 뭐 먹을 게 없나하고 휘젓다가 공탕을 하고는 나갈 때에 다리에 꽃가루를 잔뜩 묻히고, 암꽃의 맛있는 꿀 냄새에 이끌려 들어가서는 정신없이 꿀을 빨아대며 다리에 붙어있는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떨어뜨릴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들락거리는 벌 나비 맘대로 향이든 맛이든 그 놈들 마음대로 드나들 테니 텃밭주인이 쓸데없이 따질 일이 아니로구나!
어린아이 같은 생각으로 텃밭소설을 쓰다가 오미자 향에 끌려 암 수꽃을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