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4. 14:01ㆍ농사
어린 시절에 옥수수를 처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옥수수 알곡이 아니고, 옥수수가루로 풀떼기같이 만들은 죽을 성당에서 받아다 먹었던 여덟 살 즈음의 아련한 기억이 난다.
사변 이후 어려웠던 시절에 먹을 것들이 변변치 못했던 지라 생전 처음 먹어본 옥수수 죽은 맛이 희한 했었고, 달착지근한 맛은 혀끝을 감돌았으나 배가 고파서 맛이 있었지 어린 나이에는 쌀밥보다 맛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텃밭을 하면서 해마다 거르지 않고 옥수수를 심어왔다.
옥수수를 심는 때를 십 여일이나 2주 정도의 기간을 벌려 여러 차례 심기도 하면서 텃밭의 간식꺼리로 옥수수를 따는 기간을 늘려가기도 하였다.
계속하여 알이 까만 토종옥수수를 심었었는데 중도에 몇 년 텃밭을 닫는 바람에 종자를 잃고는 대학찰옥수수를 심었었고, 올해에는 농협 농자재마트에 갔을 때 제천찰옥수수란 지역토종 옥수수종자가 눈에 띠기에 뒤늦게 한 봉지를 사서 텃밭 여기저기에 심었다.
올해는 게으름으로 일찍 파종을 하지 못했고, 늦었으면 시장에서 옥수수모종을 사다가 심을 수도 있었지만 그 또한 실기를 하는 바람에 늦게 한 번만 파종을 한 것이다.
늦게 심었다고는 하지만 남들이 워낙 부지런을 떨어 옥수수 수확을 빨리 한 것이고, 남들이 옥수수를 맛있게 삶아 먹을 때에 부럽게 처다 본 것이지 게으름 핀 내가 딱히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많이 늦었지만 내 밭의 옥수수는 지금 한창 알곡을 키우고 있어 앞으로도 2주 이상의 간식꺼리를 제공해주게 될 테니 말이다.
삼십여 개의 크게 자란 옥수수가 텃밭 여기저기에 서있는 모습은 프로가 아닌 어설픈 소출을 이야기하지만, 보기에 따라 단순하게 보이기 쉬운 텃밭을 아늑한 운치와 낭만으로 변화를 주면서 치장할 수 있어 돌밭주인은 즐겨서 텃밭이랑 귀퉁이나 빈 공간을 옥수수들에게 내어준다.
백중이 지난 후 돌밭의 옥수수가 익어갈 때에는 송학산 위에서 불어내리는 저녁바람에 가을이 묻어 내리기에 아직도 뜨거운 기운을 품은 해가 용두산을 넘기 전에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 상쾌한 저녁바람을 맞이하는 준비를 한다.
잘 익은 옥수수를 한두 개 따서 냄비에 넣고 삶는 동안 샤워를 끝내고 알맞게 탱글탱글하고 톡톡 터지는 달착지근한 제천찰옥수수의 맛을 즐기는 일이 요즈음 텃밭생활의 행복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