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21. 15:58ㆍ마음, 그리고 생각
요새는 아마도 사람같이 산다고나 할까요?
아침마다 마누라한테 커피원두 힘차게 갈아서 정성껏 드립합니다. 그리고 마누라가 좋아하는 농도로 다시 맞추어 올립니다. 흔한 커피집 보다는 맛이 좋지요!
마누라의 품평이 좋게 내려져야 제 커피 맛도 좋아집니다.
그리고 거실바닥이 지저분하면 눈치껏 청소기를 돌립니다.
그래도 남자랍시고 걸레질만큼은 안한답니다.
식사를 하고 싱크대에 빈 그릇 쌓여있는 꼴은 볼 수가 없어 마누라가 손에 물 묻히기 전에 잽싸게 설거지를 능수능란하게 해치우죠.
빨래 개키는 일도 이따금 하지요. 그런데 그 노무 빨래가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라 제 서툰 솜씨로는 영 엉망으로 개켜진단 말씀입니다. 그 것 또한 남자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주 마누라한테 항명을 한답니다.
장보기를 마누라와 함께 하는 건 기본.
아니, 마트에서는 마누라보단 제가 장보기의 고수이죠. 1+1 같은 것도 잘 챙기고 유효기일이나 유사제품 중에서 더 좋은 것 가려내기는 제가 훨씬 잘한답니다. 그런데 재래시장에서 장보기를 할 때에는 제가 마누라 뒤를 졸졸 뒤따르며 수행을 하지요.
요렇게 사는 게 칠십 줄에 들어가는 마당에 집에서 밥 잘 얻어먹고 사는 방법이자 가정평화를 이루는 인생길의 기본이라는 걸 슬슬 터득해 갑니다.
또, 요렇게 집에서 잘 하는 것이 제가 하는 여러 가지 일이나 짓거리를 마누라의 눈총에서 벗어나서 무난하게 즐기는 요령이라는 것이지요.
요새는 또,
지지난 달 말에 마누라가 최근 2년간 무지막지한 적자로 고생을 한 이후 구멍가게를 정리한지라, 슬픔에 빠져 스트레스에 눌려 심신이 말이 아닌 마누라의 컨디션을 해하지 않고 정신적 안정을 유지하게 하느라, 눈치 보느라 제 정신이 말이 아닙니다.
빚 안 지고 가게를 정리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마누라를 위로해보지만 십칠 년간 가게를 하고 난 뒤 남은 게 하나도 없다고 푸념하는 마누라의 얼굴을 보면 저도 가슴이 답답하고 짠하답니다.
인생길이 다 그런 거 아닌가요?
누구나 그런 거 아닌가요?
희로애락이 섞여 돌아가며 세상을 사는 게 인생인데 어찌 보면, 그리고 남 보기엔 별 일도 아닐 텐데 그냥 그렇게 지내는 게 답인 것 같습니다.
와중에,
요새 제 얼굴이 어떤가하고 거울을 봤습니다.
이게 내 얼굴 아니다하고 세수하고 헝클어진 머리 다듬고 다시 거울을 봤습니다.
그리곤 남의 얼굴 관상 보듯이 다시 바라봅니다. 좀 괜찮아졌습니다.ㅎㅎ
내친김에 거실 벽을 배경으로 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사진관처럼 조명발 없는 사진이지만 그런대로 좋네요.
그런대로 제 못된 성격이 쪼끔 드러난 얼굴이라 마음에 드는군요.
오늘 아침에 모 동우회카페에 들러 이곳저곳 들러보다가 동우회원얼굴익히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영 아니올씨다입니다.
십, 이십 년 전의 희미한 얼굴들이라 대부분이 요즘의 좀 삭은(?) 얼굴들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제 얼굴 한 번 올려봅니다. ㅎㅎㅎ 얼마나 삭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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