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29. 13:57ㆍ삶의 잡동사니
난을 키운 지 이십년이 넘었다.
난을 오래 키웠다고 난을 잘 기르는 것이 아니며 무슨 전문가쯤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도 아니나, 지난 세월 뒤돌아보니 세상이 두 번이 넘게 바뀌도록 난을 줄기차게 길렀으니 조금쯤은 난을 알만도 하다.
그간 용돈 아껴가며, 아내 모르게 꽤나 비싼 돈 주고 산 난들도 있었고, 한창 풍성하게 난을 기를 땐 좁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백이십 여분이 넘게 난을 기른 적도 있었다.
오년 전엔 강추위에 대비하여 에어컨 환풍기를 비닐로 둘러치는 걸 미루다가 아끼는 난을 거의 모두 동사시켜 다음 해 가을까지 죽어가는 모습을 속 쓰리게 바라보며 탄식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고 나서는 비싼 난은 의식적으로 외면하면서 가격이 싸면서도 좋아하는 난 위주로 사십여 분 정도를 심심풀이로 기르고 있다.
난이란 남으로부터 공짜로 받는 것 보다는 내가 돈을 주고 좋아하는 난을 사서 애지중지 기르는 것이 훨씬 애착이 더 간다. 그리고 그러한 녀석들이 새싹을 내거나 단아한 꽃을 피울 때는 황홀한 기분을 듬뿍 가지게 된다.
올 겨울은 아직도 별로 춥지가 않다. 그래도 실수를 하여 난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약해보이는 놈들은 거실로 들여다 놓았다.
살아있는 놈들이 거실에 생기를 뿜어대니 집안의 공기가 상큼함을 느낀다.
녀석들이 호강하는 게 아니라 녀석들이 주인을 호강시키는 것이다.
난을 기르고 난 기르기에 좀 미치면서 보너스를 뚝 잘라먹고, 아내에게 값이 얼마 안 되고 볼 품 없는 난을 산 것이라고 속이면서 산 난(옥금강)이 하나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 녀석은 지난번 동해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주인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이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두 촉이다.
그리고 크기만 좀 커졌지 지금까지 나에게 꽃을 보여준 적이 없다.
새로운 촉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도 들은 척을 안 한다.
예쁜 꽃 좀 보자고 해도 외면하며 살고 있다.
이십년을 정들고 살았는데 뭘 더 바라겠는가?
그냥 서로 속 편하게 살아야겠다.
오늘도 눈인사하며 이 녀석의 탄탄한 잎을 살짝 건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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