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단상

2008. 6. 30. 00:55잡초,거름,멀칭,농약

 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잡초를 멀리할 수 없다.

잡초를 원수로 아는 사람들도 잡초를 없애기 위하여 제초제를 사용하거나 고된 작업을 하여야하고,

잡초를 농사에 이용하는 사람들은 잡초를 적절히 제어하기 위하여 잡초를 어루만진다.


 어느 밭에나 잡초는 끈질기게 자란다.

특히 건강한 토질을 유지하고있는 좋은 땅에서는 더욱 많은 잡초가 자라난다.

제아무리 지독한 제초제를 종류별로 줄기차게 퍼 부어도 한동안 지나면 잡초가 자라기 시작한다. 마당이나 밭에 잡초가 자라는 꼴을 보질 못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연중 제초제를 열댓 번은 뿌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다음 해에는 어김없이 잡초는 그 종류를 달리하며 황폐한 흙에서도 태어난다.

잡초가 아예없는 땅은  죽은 땅이다.


 잡초는 똑똑하다.

텃밭에서 자라는 작물과 비슷한 잡초들이 때를 같이하여 한꺼번에 발아되는 것을 관찰하노라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텃밭에 토마토, 옥수수, 콩, 들깨 등의 씨앗을 직파하여 심어본 초보농군은 처음 몇 해 동안은 발아되어 자라나는 초기의 잡초와 작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여 애를 먹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텃밭의 잡초는 주로 해를 걸러 가면서 나기도 하며, 텃밭을 점령하는 잡초들도 서로 간에 임무교대를 아주 잘한다.

환삼덩굴, 콩짜개 잎 같은 작은 잎을 뻗어가는 줄기에 잔뜩 달고 작물을 휘감아 죽이는 돌콩(?)과 같은 덩굴류,

텃밭의 흙바닥을 슬슬 기다가 갑자기 솟구치며 작물들을 덮어버리는 바랭이,

큰 키로 자라는 잡초가 보기 싫어 낫으로 툭툭 쳐가며 베어내고 돌아서면 어느 틈엔가 베어낸 줄기 밑에서 대여섯 개의 줄기가 한꺼번에 솟아 바로 번식을 위한 꽃을 피우는 망초, 명아주, 달마중 같은 키가 큰 놈들,

온 텃밭과 밭의 둑을 사그리 뒤덮으며 배꼽보다 높게 그리고 억세게 자라는 쑥,

고 놈의 쑥을 예초기로 싹싹 베어 평정을 하고나면 햇빛 보기기를 기다렸다가 무서운 속도로 흙바닥을 새로이 덮어가는 토끼풀,

한 여름에 쑥과 바랭이를 베고 뽑고 마음 턱 놓고 늘어지면 어느 틈엔가 질긴 뿌리를 한 자 넘게 흙 속에 깊이 박고 무서운 가시가 촘촘히 박힌 줄기로 키 큰 작물이 자라는 꼴을 못 보고 휘감아버리는 환삼덩굴,

옛날에 나물로 먹던 맛의 추억 때문에 농로바닥에 그대로 놔두었더니 주인이 자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조그맣던 잎을 어른 손바닥보다 크게 키우고 꽃대를 한 자 반이나 올려 씨앗을 퍼뜨리는 질경이,

꽃이 그런대로 특이하고 예뻐서 놔두었더니 기름진 텃밭을 엉망으로 만드는 닭의장풀,

쌉싸래한 어린잎이 텃밭의 밥맛을 돋운다고 그리고 무슨 약효가 있다고 하여 한쪽 귀퉁이에서 보살핌을 밭던 놈들이 홀씨를 사정없이 퍼뜨려, 이듬해에 요것들이 어떠한 영향을 텃밭에 미칠까 텃밭주인에게 걱정을 잔뜩 주는 씀바귀와 민들레 등이

텃밭을 전체로, 부분적으로, 교대로 점령해가며 나름대로 잡초의 일생을 살아간다.

 

 많은 프로농군들이 잡초를 원수로 알면서 완전히 장악하려고 애들을 쓰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잡초를 완전히 잡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비닐하우스같이 격리되고 밀폐된 공간에서야 가능하겠지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대지의 기운이 뒤덮는 산이나 들판을 일부를 구성하는 밭에서는 잡초를 완전하게 잡을 수가 없다.

 잡초는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니 잡초를 잡는 것은 잡초가 아닌 자연을 잡는 것이기에,

아마도 잡초를 완전히 잡았다고 만세 부르는 농군은 그 순간 자신의 밭이 완전히 죽어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잡초는 농사일에 많은 해를 끼치기도 하고, 많은 이익을 주기도 한다.

그러한 이해의 양면은 잡초가 자연의 한 구성부분으로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잡초를 만지는 사람들이 그러한 양면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공부해야하는 구실을 주기도 한다.

잡초를 알고 잡초의 유익한 면들을 활용한다면 프로농군이든 취미농군이든 제대로 된 농사를 하는 지름길에 접어들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밭의 잡초는 분명 일거리를 많이 불러온다.

밭의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게 하려면 잡초를 뽑든지 베어내든지 하여야 하므로 농군의 노동을 많이 요구하니 미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밭의 잡초는 왕성하게 뻗어가는 뿌리로 딱딱한 밭의 흙을 부드럽게 만들기도 하며, 여러 가지 익충들의 서식처로 구실을 함으로써 작물에 해가되는 해충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안전하고 자연의 맛을 잔뜩 지닌 먹을거리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니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잡초에 둘러싸인 농작물은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여 제대로 자라지 못하기도 하지만, 적절히 잡초가 제어된 상태에서 자리를 잡은 농작물은 오히려 튼튼하게 자라고 병충해에도 강한 저항을 하며 오염되지 않은 질 좋은 결과물을 생산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잡초는 나쁜 것이 아니다.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 비닐멀칭을 멀리하는 나름대로의 자연농법으로 텃밭을 하는 취미농군들에게는 잡초는 텃밭의 아주 유익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단지 잡초를 적절하게 제어하면서 농사에 활용하는데 있어서 많은 시간과 땀을 투입하면서 공부를 해야하는 텃밭주인을 힘들게 하는 것이 큰 문제일 뿐이다.

 

 텃밭농사 한 오년 하다보니 잡초에 익숙해지고 잡초와 친해지기도 하였다.

그래도 이따금 텃밭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게으른 취미농군이 잡초를 뽑아내거나 자르는 것을 언제나 때를 맞추어 가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잡초를 좋아한다 하여도 모든 잡초들을 좋아할 수는 없다.

아무리 보아도 미운 놈들이 있다.

텃밭에서 밉고 골치 아픈 놈은 환삼덩굴, 돌콩(?), 줄기가 크고 억세고 씨앗에 가시가 둘이나 달려 옷에 사정없이 붙어대는 도깨비풀(?) 등이다.

 텃밭에서 제일 예쁜 잡초는 쑥이다.

많은 프로들이 원수처럼 대하지만 엉터리 취미농군은 쑥을 꽤나 좋아한다.

쑥을 캐어내면 밭의 흙이 보슬보슬하게 경운되어 있어 선호미나 쇠갈퀴로 몇 십 평 밭을 쉽사리 의도대로 만들 수 있다(쇠스랑을 휘둘러가면서 쑥 뿌리를 캐어내는 일이 큰일이지만!)

 무릎보다 크게 자라난 쑥들을 예초기로 쓱쓱 베어 고추밭에 멀칭을 하면 최고의 친환경적인 멀칭작품이 된다.

밭의 토질을 좋게 유지시키며 수 많은 익충들을 살게하면서 작물 아래쪽에서 자라는 잡초들의 성장을 적절하게 제어하기 때문에 엉터리 취미농군이 즐겨 쓰는 멀칭방법이다.


 장마 뒤에 크게 자란 텃밭의 잡초는 텃밭주인의 땀을 무지 빼앗는다.

잡초는 텃밭주인이 하루에 두세 번이나 목욕을 하도록 하게하는 문제아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놈들 덕분에 텃밭주인이 날씬하고 튼튼한 허리를 유지하니 어찌 나쁘게만 볼 수 있으랴!

 뜨거운 해가 내려쬐는 유월 이후 늦가을까지 텃밭의 잡초는 텃밭주인을 무척이나 괴롭히기도 한다.

그러나 땀을 빼는 텃밭주인은 텃밭농사의 진수를 맛보면서 귀한 소출을 얻어내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니 어찌 땀 빼기를 두려워하랴?


 엉터리 취미농군이 텃밭의 잡초들을 미워해가며 괴롭히다가 급기야 원수같이 여겨서 텃밭에 제초제를 뿌리는 날이 온다면 아마도 그 날이 텃밭농사를 그만두게 되는 날이 될 것이다.

 잡초와 싸워 이기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날이 아마도 엉터리 취미농군이 쇠스랑과 호선미를 팽개쳐버리고 텃밭을 폐쇄하는 날이 될 것이다.

 

 텃밭을 가꾸어가는 한 텃밭에는 반드시 잡초가 있어야 한다.

잡초 속에서 나오는 텃밭의 소출이 진정 자연의 맛이 배인 농작물이 아닐까?

텃밭의 잡초를 다스리면서 텃밭의 식구인 농작물이 튼실하게 자라도록 어루만질 때 텃밭을 하는 기쁨을 제대로 맛보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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