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9. 10. 13:10ㆍ잡초,거름,멀칭,농약
텃밭 남쪽의 둑은 아랫집 논과 경계를 이룬다.
두어길 아래에 논이 있어 둑이 좀 가파르고 장마철에 텃밭의 토사가 흘러내려 큰 돌을 경계에 쌓아 다듬었는데도 말썽을 부려 아예 텃밭지형을 고려하여 지하배수로를 만들고 연못을 보강하고 알맞게 도랑을 내니 말썽 많던 토사의 흘러내림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경계석 위로는 개나리를 300여주 심어 그 길이가 60여 미터가 되니 올 봄에는 노란 개나리울타리를 그려보며 웃음을 지으면서 즐겁게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개나리가 한 길이상 자라고 번지면 개나리 위쪽으로는 앵두를 심을까 어쩔까하며 알맞은 울타리용 나무를 고르느라 묘목책을 뒤지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쑥이 둑을 뒤덮었다. 그리고 텃밭도 뒤덮었다.
단오 전에 어린 쑥을, 그 것도 텃밭과 둑에 지천으로 널린 쑥을 맛있게 생긴 놈만을 골라가며 잔뜩 따기도 했는데 몇 바구니 따다보니 싫증이 나기도하고 이건 아니다 싶어 그만두었다. 장마 전에 그 앙증맞던 쑥이 허리춤까지 자랐다.
텃밭에 심은 매실과 벚나무 등 150여 그루를 쑥과 씀바귀, 이름모를 덩굴(요놈은 작은 콩잎 같은 잎이 무성하게 잔뜩 달리고 줄기가 나무줄기를 조이며 감고 올라가 완전히 덮어버린다) 등이 나무족속들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 웃기게도 푸성귀 등의 작물도 아닌 나무들이 굴복당한 모양이란! 아무리 묘목이라 하드라도 1 미터가 넘는 것이어서 초봄에 심어놓기만 하면 절로 자랄 줄 알았는데 영 그게 아니다. 그냥 놔두면 잡초가 나무를 뒤덮고 잡초줄기가 나무를 옥죄어 나무의 성장을 막고 나무가 아예 햇빛을 못 받아 죽을 것만 같다.
예초기를 가동하여 잡초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공들여 심은 매실과 벚나무를 몇 그루 싹둑 해버렸다. 그 뒤로는 힘이 더 들어도 나무 주변의 풀을 낫으로 일일이 베어내며 돌돌 말은 잡초줄기를 끊어내는 작업을 한다.
개나리는 작은 놈을 심어서 그런지 아예 보이질 않는다. 장마 전에 두 번이나 개나리묘목 주변의 쑥 등 잡초를 다스렸는데 장마가 끝나고 보니 둑이 온통 쑥대와 닭의장풀 등 잡초천국이고 개나리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60여 미터 길이의 경사진 둑을 따라 개나리를 살리려 쭈그리고 앉아 조심스레 낫질을 하였다. 땀을 흘리며 낫질을 하다보면 그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다가 쓰윽~ 에쿠! 빌어먹을 쌍!
이번에는 엄지의 손톱 옆을 베었다. 목장갑을 파고들며 소름끼치는 느낌이 금방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로 현실을 보게 된다. 쑥 잎을 씹어 상처위에 덥고 감싸 쥐고는 농막으로 달려간다.
소독하고 일단은 반창고로 단단히 붙여 지혈을 해본다. 다행이 병원에 가서 꿰매어야할 정도는 아니다.
한 달 사이에 벌써 세 번이나 낫으로 엄지와 검지의 손톱 밑을 베었다. 낫질을 벌써 4년이나 하는데 올해에 처음으로 베었고, 세 번이나 베었다.
일이 서툴러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지 기분이 나쁘다. 한 번 베이고 나면 기분도 언짢지만 텃밭생활에 지장이 막대하다. 실로 불편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번 베이면 낫은 팽개치고 다시 만지기도 싫다. 그러니 하던 작업은 중단되고, 밥하고 설거지하기도 불편하고, 목욕이나 빨래하는 경우는 더욱 더 불편하다.
잡생각을 하면 하는 일이 잘못되는 경우가 발생된다. 농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기구와 기계를 쓰는 일에는 언제나 위험이 뒤따른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요즈음 심사가 불편한 일이 연이어 발생되었고, 성질 돋은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텃밭에서 양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음을 상기해본다.
머리의 복잡하고 피곤함을 육체에서 흘러내리는 땀으로 씻어내려 하는 어리석음을 생각해보면서 사고의 원인은 스스로의 마음에 있었음을 바로 가려낸다.
텃밭생활은 즐김에 있어야하는데 삶에 있어서의 피곤과 좌절 등을 도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함은 매우 잘못된 것임을 다시금 알고 나니 다시 마음을 추스리게되고 이내 차분해진다.
취미농군은 텃밭에 오면 이미 상쾌함을 가져야한다. 설사 불유쾌한 마음을 가지고 텃밭에 왔다하여도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고요를 찾아야한다. 그래야 취미농군에게 진정한 텃밭의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다. 텃밭은 도량이 되어야한다.
육십여 평의 경사진 둑에서 베어낸 잡초를 연못 옆에 쌓아놓으니 대형승용차만한 퇴비더미가 되었다. 내년 고추밭 거름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잡초가 삭으면 한 지게가 한 줌이 된다고 하지만 인분주 듬뿍 뿌리고 텃밭 잡초 한 무더기 더하면 우리 집 먹을 고추는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거름이 될 것이다. 고추밭에 파는 비료나 거름을 일체 주지 않고 오직 텃밭에서 생산된 인분주와 잡초베어낸 것만을 덮어주었는데도 홍고추가 남아돈다. 끝까지 말려보아야 하겠지만 남는 고춧가루를 친구들에게 족히 세 근은 팔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내년에는 고추를 좀 줄여 심어도 될 것이다.
고추는 연작을 하면 병들고 실패할 확률이 많은 작물이라 매년 고추이랑을 바꾸어가며 기르고 있는데, 내년 봄에는 올해 감자 심었던 이랑에 이번에 만드는 잡초퇴비를 듬뿍 주고 중간크기의 고추품종을 선택하여 심을 예정이다(고추가 한 뼘이넘는 호고추류는 맛도 덜하고 취미농군이 건조기를 쓰지 않고 태양초를 만드는 데 엄청 애를 먹는다)
아마도 내년에는 텃밭개설이래 최고로 맛 좋은 풋고추와 고춧가루가 만들어질 것이다.